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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말의 무게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12 조회수722 추천수14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10 주간 토요일 - 말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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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성사를 듣다보면 재밌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많은 것은 자신의 죄보다는 다른 사람의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죄를 짓게 된 것이 자신의 탓보다는 다른 사람의 탓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아내는 남편을, 부모는 자녀를, 신자는 다른 신자들의 잘못을 먼저 말합니다. 그래서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워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것을 듣다보면 나중에는 서로 남들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누가 고부간인지, 누가 부부인지 내용으로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의 고백은 아주 단순 명료합니다. 엄마가 피시방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갔었다. 친구와 싸웠다. 물건을 훔쳤다. 성당을 빠졌다 등등입니다. 그들은 왜 피시방에 갔어야만 했는지, 왜 친구와 싸웠는지, 왜 물건을 훔쳤는지 등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기 때문에 죄라고 생각하고 고해를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무엇을 하였습니까? 핑계를 댔습니다. 하와는 뱀이 유혹해서 그랬다고 하고 아담은 하와가 유혹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고 하듯이 이유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성인들은 아예 핑계를 대지 말라고 합니다. 했으면 한 것이고 안 했으면 안 한 것입니다. 말이 복잡해지고 모호해지고 가벼워진다면 어쩌면 내 존재를 말에 싣고 있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용 없는 말들로만 가득 채워진 세상을 생각해 보십시오. 끔찍할 것입니다.

 

아이들처럼 단순하지 않으면 많은 말을 하지만 결국 한 마디도 안 하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말에도 무게가 있습니다.

학교를 가려면 바티칸을 항상 지나는데 그 곳에는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항상 지나다니고 가끔 돈도 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저를 따라오며 불쌍한 사정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뒤에 가장 많이 붙이는 말이 ‘Lo giuro!, lo giuro! ...’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맹세해~ 맹세해~’란 뜻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맹세는 너무 쉽게 하는 것이고 또 거짓말이라는 것을 몇 번 알았기 때문에 아무리 맹세한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돈을 더 주지는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돈을 더 받아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걸 알면서 어떤 때는 맹세한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돈 줄 테니 맹세는 그만 하세요~”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예수님도 이와 같은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맹세까지 한다는 말은 이미 자신의 말이 얼마나 가벼운지 스스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한 마디만 하면 다른 사람이 믿을 정도로 진실 되게 살았다면 그렇게 맹세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카락 하나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는 우리들이 맹세했다고 반드시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맹세 자체가 자신을 모르는 교만함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말을 하면서 “이건 진짠데~ ... 정말이야~”라고 자꾸 말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스스로 자신의 말에 자신이 없기 때문에 이번엔 꼭 믿어주어야 한다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붙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의 가벼움을 경계하라는 의미로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재판 받으실 때를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이상하리만치 아무 말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고소하는 이들은 갖은 범죄들을 만들어 내서 소란을 떱니다.

그들은 하늘을 두고 자신들이 하는 말이 진실이라고 맹세를 하겠지만 그들의 의견은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거짓 맹세는 다른 사람을 모함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이름을 죄에 이용하는 더 큰 죄가 있습니다.

그런 고소에도 예수님은 한 마디도 하시지 않습니다. 대사제는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냐고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그것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딱 한 마디 하십니다. 그들이 만들어내고 맹세했던 수많은 고소 내용들은 아무 힘이 없었지만 예수님의 이 한 마디에 그들 스스로 예수님께 사형을 내리기에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가끔 강론이 길어질 때가 있는데, 강론을 잘 준비해 오지 않아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라서 만족할 때까지 하려다가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핵심이 없으면 길어지는 것입니다. 말에 무게를 실읍시다. 단순하고 진실 되고 책임 질 수 있는 말을 하도록 합시다.

 

<< 짧은 묵상 >>

로마에 손님으로 와 계시는 저희 교구 신부님이 여기 갈맬 수녀원에 아는 수녀님이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운전기사로 오늘 그 신부님을 모시고 수녀원에 다녀왔습니다. 그 곳엔 한국말도 조금씩 잊어버려 가시는 한 한국 수녀님이 계십니다. 한국말을 외국말처럼 어눌하게 하시지만 모처럼만에 한국말을 하셔서 그런지 여간 즐거워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수녀님은 저에게도 로마에서 공부하는 동안 꼭 다시 오라고 몇 번이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선뜻 답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사실 친분도 없는데다 공부하면서 그렇게 방문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꼭 오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말은 “기회가 안 되면 오지 못할 것입니다.”와 같은 의미입니다. 괜히 기대를 하게 해 드리고 기다리게 해 드리고 싶지 않았고 더 큰 것은, 약속을 하여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부도수표’가 되게 하기는 싫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기업에서 부도수표를 발행했다면 그 신용도가 떨어져 그 기업은 곧 파산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은 나라도 마찬가지고 우리 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속을 가벼이 여기는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정치인들만큼 부도수표를 많이 내는 사람들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을 뽑아달라고 수많은 공약을 내지만 그것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공약한 것의 50%만 지켜도 정말 대단한 정치인입니다.

우리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맹세도 하지 말고 공약도 하지 맙시다.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내가 한 약속 중 단 하나도 지키게 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을 통해서도 겸손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그저 예, 해야 할 때는 ‘예‘ 하고 ’아니오‘ 해야 할 때는 ’아니오‘만 합니다. 말로써 무슨 이익을 얻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절대 부도수표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예! 했으면 죽기까지 ‘예‘였습니다. 우리도 그런 ‘말씀의 사람들’이 되도록 합시다.

 

 

 

< 아버지 뜻대로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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