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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정의
작성자김열우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12 조회수694 추천수0 반대(0) 신고

하느님의 명령을 받은 요나는,

니느웨성이 40일 후면 무너지리라 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를 들은 니느웨성의 왕은,

백관들은 물론, 니느웨성의 모든 백성들, 심지어 짐승들까지 베옷을 입히고 재에 앉아 회개 하도록 선포하였습니다.

 

이를 보신 하느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시어,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들을 보고도 회개하지 않아 유황불로 멸망하였던 소돔, 고모라성과는 달리-

산위에 올라 니느웨성의 멸망을 지켜보려던 요나는, 자신의 선포대로 이루지 않음에 분한 마음이 들어, 하느님께서 그러실 줄 알았다 며 불평을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열풍에 괴로워하는 요나를 위하여 아주까리가 자라나 요나의 머리를 가리워주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룻만에 벌레가 와서 그 잎을 갉아 먹게 하시어, 아주까리는 바로 시들어 버렸습니다.

불평하는 요나에게 하느님께서는,

너는 이 아주까리가 자라는 데 아무 한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이에 자랐다가 밤 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와하느냐? 이 니느웨에는 앞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 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이 큰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용서와 사랑을 앞서지 않습니다.

 

수 많은 가족과 친족들을 잃고, 가산을 강탈 당하였습니다.

안타까움, 억울함, 울분이 가득 찼습니다.

그 무엇으로 억울하게 잃은 생명을 대신하며, 그 어떤 보상이 억울하게 당한 세월과 그 아픔을 치유할 수 있겠느냐? 는 생각뿐, 그 무엇도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일면, 그도 가운일 것이라, 하느님만이 그 모든 일들의 해결자가 되실 것이라 생각하여, 하느님의 의 뜻과 섭리에 맡기겠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만일 누가 나서, 그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며, 진실과 정의를 밝혀라 할 때,

해를 입힌 자가, 자식의 목에 흉기를 대며 위협하여, 만일 진실을 밝힌다면 아이를 죽이겠다고 위협한다면,

그에게는 자신의 아이를 살려내는 것 이상 진리와 정의는 더 없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진실과 정의인 것입니다.

 

아이 하나를 가지고, 서로 자신의 자식이라고 주장하며, 판결을 받으러 온 두 여인에게 아이를 반으로 나누어 주라 고 재판장(솔로몬)이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 황당한 판결에,

아이의 친 어머니에게 정의는 아이를 다만 살릴 수 있는 길 뿐이었습니다.

 

정의는 혹에서 백을 가리는 것일 수 만은 없다는 새로운 발견입니다.

또한, 세상은 완전히 흑이거나, 백일 수도, 무균 무때일수도, 한 발짝 물러서, 양보할 수밖에 없음도, 이해하게 됩니다.

광명과 어둠, 더위와 추위, 생명나무와 선악과,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죄악과 용서가 공존하도록 만드신 하느님의 창조 컨텥츠일지도..(?)

그리고 흑과 백을 완벽히 갈라놓으려는 시도는 사람의 미숙의 발로일지도…….(?)

7X77번의 용서는 도무지 사람의 정의에 대한 관념에 맞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사랑이며, 정의인 것입니다.

그 사랑은 사람이 보기에,

마치, 밑빠진 독에 물 붓기를 그치지 않는 어리석은(?) 짓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당신께서 창조하신 사람들이 죄악을 범하는 것이 매우 괴로우셨습니다.

계명과 법을 주셔서, 이를 지키는 자만이 살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법을 지키키보다, 더 악한 길을 모색하기에 바빴습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친히 당신께서 사람이 되셔서, 십자가의 사랑을 실현하여 보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정의의 실현을 감행하실 수 없으시기에, 그 수많은 죄악들이 방치되어 진 듯 보이기도 합니다.

7X77번의 용서가 차라리 당신의 정의이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정의는 사랑과 용서인 것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며, 정의보다 강합니다.

 

못 말릴 하느님의 사랑과 끝없는 용서때문에,

강자에게 당하는 약자와,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지키기 위해 입는 희생은 영원히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인지요?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였던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제물로 바쳤고,

인간을 사랑하였던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결국 그 사랑은 이사악 대신, 숫양이 마련되었고, 그리스도는 부활하셨습니다.

 

하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과 행복으로, 그 누구도 누려보지 못했던 신비하고 거룩한 것들로 채워주실 그 날의 보상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2010년 6월 12일 오후 1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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