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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13일 야곱의 우물- 루카 7,36-8.3 /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13 조회수355 추천수7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36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37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38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39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40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 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41“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42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 43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 하고 말씀하셨다. 44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아주었다.
45너는 나에게 입을 맞추지 않았지만,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46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47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8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49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 하고 말하였다. 50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8,1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2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3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저에게 부어주신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알아볼 수 있는 가난하고 겸손한 마음을 주소서.

독서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47절) 그 여인은 바리사이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았을까요 ? 복음 처음부터 두 사람의 모습을 되짚어 봅니다.
바리사이 한 사람이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집에 초대합니다. (36절)  그의 태도는 루카복음 19장에 나오는 자캐오의 태도와 대조를 이룹니다. 자캐오는 주님을 자신의 집에 모실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주님께서 그에게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19, 5)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는 자신이, 예수님한테서 무엇을 받아야하는 곤궁한 사람임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예수님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수 있고, 내 의로움으로 당당하게 하느님 앞에 설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 마땅하며, 오히려 예수님께 먹을 것을 드리고 자신한테는 모든 것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인간관계에서나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이런 태도를 보일 때가 없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순탄하게 흘러갈 때, 하느님의 사랑 없이도 나는 살아갈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온 “죄인인 여자” 는 (37절) 그와 반대되는 사람입니다. 이 여인은 그저 마음속으로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를 지은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공공연한 죄인이고, 자신이 하느님 앞에 나서기에 부당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자신을 예수님께서 용서해 주시고 받아주신다는 것을 알기에, 그만큼 큰 사랑을 받았음을 알기에 예수님께 자신이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드리려 합니다. 향유가 그 여인이 소유한 것이었다면, 눈물은 예수님께 대한 한없는 감사의 마음이었을 것이고 (회개는 이미 지난 일입니다.) , 머리카락은 사랑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 여인은 자신이 넘치도록 큰 사랑을 받았음을 알기에,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리는 행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담아 그분을 향한 사랑을 표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는 그 여인이 체험할 수 있는 그런 큰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여인의 행위가, 그리고 그 여인이 하는 대로 내맡기고 계신 예수님의 태도가 그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 죄인인 줄 알 터인데.” (39절) 언뜻 호세아 예언자가 생각납니다. 분명 그는 ‘예언자’ 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내가 자신을 배반한 것을 명백히 알았지만 아내를 다시 받아들입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너는 다시 가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간음을 저지르는 여자를 사랑해 주어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호세 3, 1ㄴ)  예언자는 죄인을 알아보고 멀리해야 한다는 것은 바리사이의 논리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언자이신 예수님께는 그런 원칙이 통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도 호세아에게 하신 하느님의 말씀에서 알아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호세아에게 간음한 아내를 다시 데려오라고 하신 다음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주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해주어라. 그들은 다른 신들에게 돌아서서 건포도 과자를 좋아하고 있다.” (호세 3, 1ㄷ)  하느님의 사랑이 그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것임을 이스라엘에게 보여주는 표징이 되기 위하여 호세아는 간음한 아내를 다시 데려옵니다. 마찬가지로 예언자이신 예수님이 그 여인을 내치지 않으신 것은, 당신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죄인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많은 죄를 용서받았음을 안 여인은, 그만큼 큰 사랑을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처음 물음으로 돌아갑니다. 과연 바리사이가 받은 사랑과 그 여인이 받은 사랑의 크기가 그렇게 달랐을까요. 어쩌면 받은 사랑을 헤아리는 잣대가 달랐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여인이 예수님께 보여드린 사랑은, 그 여인이 체험한 것과 같은 큰 사랑을 받는 체험이 있을 때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는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자신이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성찰
하느님께 받은 사랑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내 약함과 가난함을 아는 그만큼 커질 것입니다. 하느님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나의 모든 것이 그분 사랑으로 주어진 것임을 알 때, 나의 가난함을 하느님 앞에서 숨기지 않고 말없이 가만히 그분 앞에 갖다 놓을 때, “평안히 가거라.” (50절) 는 말씀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담겨 있는지를 알고 그분을 많이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받고 잘못이 덮여진 이 !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얼에 거짓이 없는 사람 ! (시편 32, 1 – 2)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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