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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마운 사람들 - 최강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16 조회수623 추천수7 반대(0) 신고
 

고마운 사람들

 

 http://www.catholic.or.kr/

 

 

    내가 살고 있는 이 곳 스자좡은 중국의 다른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중국 전역에 그렇게도 널리 산재해 있는 명승고적도 한 군데 없고, 화베이 평원의 한 가운데 위치한 연유로 빼어난 자연절경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하지만 한 가지, 무더운 여름 날씨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 바로 이곳 스자좡이다. 일기 예보를 들을 때마다 중국의 수십 개 주요 도시 중 한낮의 온도가 가장 높은 곳은 언제나 이 곳 스자좡인 것을 보면 여름 철 무더위만큼은 다른 곳에 뒤지지 않는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6월 말인데 한낮 온도는 벌써 섭씨 40도를 훌쩍 넘어가기 일쑤이고, 한밤중에도 내 방의 온도는 30도에 다다른다. 지금까지 여름 철 온도가 40도를 넘어가는 곳에서는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추위에는 무척 강하지만 더위에는 유독 취약한 편인 나로서는 이곳에서의 여름나기가 보통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다. 이곳의 여름 철 날씨사정이 이렇다보니, 이제 한국에서도 한낮의 더위가 33도를 넘어서면 군부대나 학교와 같은 공동체 시설에서는 ‘폭염휴식제 heat break’를 실시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고 입가에 웃음이 배시시 머금어 진다. 낮 기온이 33도 정도 되는 어느 날 이곳에 사는 한 중국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이 나서 그렇다. “아! 오늘은 되게 시원하네!”


    요 며칠 40도가 훌쩍 넘는 날씨가 계속되다보니 밤중에도 공기가 채 식혀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아침에 집을 나서자마자 이미 달아오른 공기가 후덥지근한 느낌과 함께 콧속을 파고드는데 그 느낌이 여간 낯설지가 않다. 중국어를 배우고 있는 허베이 사범대학까지는 걸어서 약 30 분 정도가 걸리는데 중간에 빨간 신호등에라도 걸리면 한참을 ‘아침 뙤약볕(?)’ 아래 서 있어야 한다. 학교에 다다를 때쯤이면 이미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데 전력 소모량이 많은 여름철에는 특히 정전이 잦아서 종종 강의실이 있는 6층까지 걸어 오르내려야 할 일이 생긴다.


    가까스로 오전 네 시간의 중국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태양빛은 얼마나 따가운지 그야말로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불가마 옆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그렇게 뜨거운 날인데도 길거리 노천 식당의 의자에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앉아 ‘우육면’과 같은 뜨거운 점심을 먹고 있는 것을 보면 입맛이 이미 천리 밖으로 달아나버린 나와 같은 사람의 입가에는 또 한 번 웃음이 배시시 머금어 진다. “어쩜 같은 사람들이 살아 온 환경에 따라 이리도 서로 다를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이곳 스자좡의 무더운 여름 풍경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더위에 유난히 약한 한 선교사제가 엄살을 부리면서 주변 사람들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무더위 속에서 만난 교통 경찰관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서이다. 이곳 스자좡은 지난봄부터 시내 곳곳의 주요 도로를 차단하고 고가도로 및 지하도로를 건설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우회도로를 확보해 놓는다거나, 교통량이 비교적 적은 야간에 공사를 한다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이 무조건 길을 딱 막아버린 채 공사를 진행하는 이곳 작업방식 때문에서인지 그야말로 아침, 저녁 출퇴근 시간대의 교통상황은 끔찍할 정도이다. 그래서 지난봄부터 주요 사거리마다 교통 경찰관들이 나와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데 내가 학교와 집을 오가는 길 중간에는 두 군데의 사거리에서 그들을 만날 수가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첫 번째 사거리에서 근무를 하는 경찰관은 항상 짜증이 잔뜩 나있는 얼굴로 삐딱하게 서서 운전자들을 향해 소리를 질러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길 옆의 나무 그늘에 가서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기 일쑤다. 이런 모습은 시내 곳곳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 사거리의 경찰관은 다르다. 그는 사십대 후반에서 오십 대 전반으로 보이는 사람인데 언제나 손바닥을 쫙 펴서 바지 재봉선에 수직으로 같다 붙이고 반듯하게 서서 절도 있는 동작으로 교통정리를 한다. 지난 번 비가 제법 많이 쏟아지던 날에도 차 안에서 그를 볼 수 있었는데 그는 비옷을 입은 채로 여전히 성실한 표정으로 똑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요즘 같이 40도를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그는 언제나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사거리의 중심에 반듯하게 서서 지난봄에 그랬던 모습 그대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오늘은 아침부터 태양이 뜨겁게 내려쬐었는데 그는 오늘도 역시 같은 모습으로 사방팔방을 연신 절도 있는 동작으로 돌아보면서 열심히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학교를 가다말고 길을 멈춰 서서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 정도로 자신의 임무에 빠져 있었다.


    땀을 비 오듯 쏟아내며 교통정리를 하고 서 있는 그의 곁을 수많은 보행자들이 빨간 신호등이 켜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렇지 않게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그 역시 빨간 신호등에 길을 건너는 수많은 보행자들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오로지 차량의 흐름에만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갑자기 그 경찰관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하긴 어디 그 경찰관 뿐이랴? 잘 살펴보면 이 세상은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참 고마운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지난봄부터 오늘까지 수개월 동안 주변의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상관없이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그를 지켜보았다. 지난 수개월 동안 스자좡의 다른 많은 교통 경찰관들을 볼 수 있었지만 그만큼 한결같은 모습으로 똑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무슨 일이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누구와 함께 하든지에 상관없이 자신이 부여받은 본질적인 임무를 묵묵히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의 속에는 필시 큰 힘이 감추어져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속에 큰 힘이 담겨 있지 않으면 조그만 바람에도 곧 출렁이기 시작하여 이내 뒤집혀 버리기 십상이다. 어떤 외적인 변화에도 아무런 동요 없이 고요한 가운데 자신의 본질적인 사명을 수행해 나갈 수 있는 힘! 하물며 그 사명이 하느님에게서 부여받은 말씀의 선포 사명이라면 더 말 할 필요가 어디 있으랴!


    나는 학교에 가다말고 뙤약볕 아래 서서 그 성실한 모습의 경찰관을 지켜보면서 지난 일 년 동안의 이 곳 생활을 기억해 내고 있었다. 그 기억 속의 나는 동료 사제 하나 없고, 함께 미사를 드릴 수 있는 신자도 한 명 없는 이 낯선 사거리에 서서 만족스러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화만 잔뜩 난 얼굴로 하느님과 세상과 주변 사람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분명 충분히 예견하고 있었고, 게다가 아주 작은 바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폭풍을 만난 것 심하게 출렁이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 시간 동안 그토록 심하게 출렁이고 있던 내 모습을 나는 지금 바라볼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다시 고요해 질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한결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그 경찰관을 지켜보면서 다른 한 편으로 나는 그렇게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어떤 조건 아래에서도 자신에게 맡겨진 본질적인 사명을 묵묵히 수행해 나가는 그 경찰관은 오늘 나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안겨 주는 스승이 되었다.


    그런 나의 스승에게 조용히 다가가서 시원한 음료수라도 건네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으나, 행여 그에게 누가 될세라 그러지도 못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학교로 가는 두 번째 사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관들을 볼 수가 있었는데 그들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운전자들, 보행자들에게 연신 큰소리를 쳐가며 삐딱하게 서 있었다.


 

    하느님의 은혜로 주님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이 순례의 목적, 이 삶의 이유가 어떠한 외적인 조건의 변화에도 출렁임 없이 그 본질을 향해 언제나 묵묵히 떠나가는 길이 될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주님! 제게 힘을 주소서!”

 

                  ▒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 신부 

                       

 

                 나는 행복합니다.(작시: 김수환 추기경.. 작곡, 노래: 테너 최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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