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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21일 야곱의 우물- 마태22,34-40묵상/ 눈먼 자들의 도시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21 조회수365 추천수4 반대(0) 신고
눈먼 자들의 도시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3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4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 5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주제 사라마구 (Jose Saramago)의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 에서 사람들은 갑자기 앞을 볼 수 없는 전염병에 걸리고 수용소에 격리됩니다. 이 소설은 권력과 폭력에 둘러싸여 무력하기 짝이 없는 개인과 사회를 은유적으로 백색 실명 상태에 빠진 눈먼 자들에 비유합니다. 이를 통해 현대 사회의 인간됨에 대해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인간성에 대한 긍정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현실도 「눈먼 자들의 도시」 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먹고 입고 더 성취할 것에 열중하는 세상, 이웃에 대해 냉담하고 미지근한 사회적 분위기와 그 이면에 감추어진 사람들의 두려움은 서로의 진실에 눈을 감게 하고, 온갖 부조리와 끊임없는 경쟁과 이기적인 삶으로 빚어진 혼돈의 세상을 살기 위해 억지 판단을 하게 합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 오늘 예수님은 ‘우리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 뚜렷이 보라.’ 고 초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눈의 들보를 빼내고 눈을 뜰 수 있을까요 ? 그것은 우리의 이중성을 극복하라는 초대일지도 모릅니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공동체와 민주화,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의 역사를 살아왔습니다. 그 시절 우리의 투쟁 대상은 뚜렷했습니다. 그래서 그 지난한 싸움은 역설적이게도 지금보다 더 쉬웠습니다. 지금은 대상화해 투쟁하던 시절과는 다른 세상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개인이 모여 시민의 힘으로 응집되어야 할 때입니다. 이는 자기 안의 이중성을 극복하라는 도전이며 초대이기도 합니다. 관행으로 묵인되는 사회적 모순과 타협하는 나의 모순은 겉으로 드러난 사회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의 진정성을 살려내는 일이야말로 이중성을 극복하는 일입니다.

터무니 없는 전쟁과 속임수와 폭력으로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현실 속에서 내 속의 들보를 빼내고 참으로 눈을 뜬다는 것은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의 말처럼 ‘위대한 개인’이 되는 것입니다. ‘천만 사람이 그르다 해도 옳은 것은 끝내 옳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온 세계 인구가 압도적 다수결로 신 (神) 이 없다 해도 신은 살아 있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주위 사람들이 모두 돈, 돈 하며 돌고 돌아 마침내 미쳐간다 해도 홀로 초연할 수 있는 사람’ (이현주 글,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 선집」 을 내면서 중에서)이 되는 것입니다.
남궁영미 수녀(성심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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