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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골룸바의 일기
작성자조경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21 조회수416 추천수2 반대(0) 신고
"너도 딱 네가 한만큼만 받아봐라!"
이렇게 글로 써놓으니 잔인한 이야기로 들리지만,
살아가면서 누구나 쉽게 할수 있는 생각이기도 합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제 마음을 서운하게 하고, 화나게 하는 사람에게,
제 나름대로의 신앙인으로서 지켜야할 품위(?) 때문에,
대놓고 화를 내지는 못 하였지만 속으로,
"그래, 너도 딱 그만큼만 받아봐라!",
하고, 생각 해봤던 것이 솔직한 저의 고백입니다.
 
제 친구 중에, 저희 사무엘이 태어나서부터 참 예뻐해 주었던 친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마음이 늘 고마웠고, 언젠가 이 친구도 아이를 낳으면,
나도 똑같이 잘 해주어야지... 다짐도 많이 하게 했던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그 친구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아이를 낳고 나더니만, 세상에... 전혀 다른 사람이 된것입니다.
저희 사무엘이 그 친구 눈의 가시와 다를바가 없어졌던 것 입니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자기 아이에게 가까이 접근 이라도 할라치면,
무슨 벌레보듯 하는것 입니다.
아무리 순하고 착한 사무엘이라 해도 이제 겨우 세살 아기일 뿐인데,
가끔 투정부리는 모습만 그 친구에게 포착이라도 되면,
아직도 저러냐는둥, 이런것도 안 가르쳤냐는둥...
제게 잔소리 까지 늘어지니 제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였습니다.
 
그 친구가 아기를 낳고나서 부터는 모든 모임이 그 집에서 이루어 져야만 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그 친구 아기의 취침시간을 깨뜨리면,
안된다는 친구의 요구 때문이었습니다.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고, 아이에게 수면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지만,
그 친구의 이기적인 태도에 친구들끼리 모임이라도 한번 갖으려면,
모두 그집으로 불려가 아기가 방에서 자는 동안,
거실에 모여 모두 눈치보며 속삭임의 대화를 해야했습니다. 
 
딱! 여기까지는 저도 참았습니다.
너무 유난스럽지만, 그래도 첫아이 키우는 엄마심정 내가 이해해야지...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부터 저희 사무엘이,
그 집에만 들어서면 그 친구 눈치를 지나치게 살피는 것 이었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유심히 관찰을 하니,
물 한 모금을 마실때 마다 눈치를 살피고,
그집 아기 장난감 이라도 하나 만지려 하면,
어디서든 노려보고 있는 그 친구의 따가운 시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간 사무엘이 상했을 마음을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무엘과 그 집에가서 놀다 집으로 돌아왔는데,
도착 하자마자 걸려온 전화가,
자기 아이 장난감이 하나 없어졌는데,
사무엘이 가져간 것 같으니, 옷을 뒤져보라는것 이었습니다.
어떻게 그집 떠난지 십분도 안되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그런 경솔한 전화를 할 수가 있었는지,
저는 너무 속이 상해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사무엘은 너무 순해서,
장난감 가게에 데려가도 엄마가 사주는 것 이외에는,
눈앞에 펼쳐진 수많은 장난감들에 손도 대지 못하는 아이 입니다.
어디 가서 제것이 아닌 다른것에는 손도 댈줄 모르는 아이인데,
그렇게 단번에 이런 아이를 도둑으로 몰아치는 그 친구가,
너무 끔찍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때 바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 너도 아이 낳았으니 앞으로 네 아이 키우면서,
 꼭 너같은 사람 만나 똑같이 당해봐라!'
 
"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마태오 7:1~5)
 
이 말씀은 하느님과 사람간의 관계에서 해당 되는 말씀이기 보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 즉 이 세상의 인간관계 속에서,
적용되는 말씀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동안 만큼은,
하느님의 무한 자비와 사랑이 우리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자비와 사랑은, 우리가 하느님께 드리는 만큼 되돌려 받음의 관계가 아니라,
우리가 청하기만 하면 퍼주시는 무조건적인 자비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다르게 됩니다.
앞서 말씀 드렸던 제 친구와의 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그 친구의 그런 태도에 화가 났던 저는,
'너도 똑같이 당해 보라지!' 라는 생각을 품게 되었고,
그 다음으로는 저도 모르새 그집 아이가 달리 보이기 시작하였던것 이었습니다.
 
나도 엄마인데... 남의 아이에게 그러면 안된다 수도 없이 다짐을 해보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그 아이를 바라볼 수 없게 되어버린 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겉으로 제 마음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마음 속으로는 이미 그 아이의 흠을 잡고,
편견과 가시돋힌 눈으로 그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저도 그 친구와 다를바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던 것 입니다.
 
그 친구는 마음을 겉으로 드러냈을 뿐이고,
저는 마음을 속으로 숨기고 있을 뿐...
숨은 속마음 까지 보시는 주님 눈으로는 모두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있었던것 입니다.
 
내 눈에 들보를 끼고, 남의 티눈을 보자니 정상적으로 보일리 없는것 입니다.
맑고 건강한 눈이, 온전한 사물을 볼수 있듯이,
들보가 들어간 눈으로는 그 어떤 바르고 좋은것을 보아도,
제대로 볼수 없는것 입니다.
바로 그 친구가 제게 그러했고, 저또한 그 친구가 택하였던 옳지 못한 길을,
넘어서지 못하고, 결국 되걸음질 치고 있는것 입니다.
 
내가 심판하는 것 처럼 심판을 받고, 내가 되질하는 되로 받게되는 관계가,
곧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어둠 짙은 세상의 현실이 되어 버린것 입니다.
이것은 '악순환' 이라는 것인데,
있는 그대로 순환만 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괜찮습니다.
문제는, 한번 돌고 돌때마다 악의 크기가 점점 불어난다는것 입니다.
그렇게 셀수없는 순환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세상을 만들게된 것입니다.
 
이런 어둠의 뿌리를 뽑고자 하느님께서 결심하신 새로운 묘책이 있으십니다.
바로 '원수를 사랑하라' 입니다.
만일 제가 제 아들을 구박하는 그 친구를,
진심의 사랑으로, 이해하며 받아주었더라면,
이런 악순환을 겪지는 않았을것 입니다.
 
누가 그러라 하지도 않았는데 저희들끼리 주고받고,
심판하고, 심판 당하며 그 안에서 깊은 상처가 되고,
서로 슬픔과 아픔속에 부데끼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안타까운 그 마음을,
바로 오늘 복음말씀을 통해 드러내고 계시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원수를 사랑하기!' 보다, 앞서 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원수를 만들지 않기!' 입니다.
원수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의 눈에 들어가 있는 들보를 빼내는것 입니다.
완벽하게 잘 제거해 내었을때 비로소 우리는,
모든 것이 정상이고, 올바르며, 맑고, 깨끗한것만 보게 될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그 사랑의 눈을 비소로 갖게되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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