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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23 조회수902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6월 23일 연중 제12주간 수요일
 

 
By their fruits you will know them.
(Mt.7.20) 
  
제1독서 열왕 하권 22:8-13; 23:1-3
복음 마태오 7:15-20
 
 사제연수를 받으면서 많은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어제의 강의는 너무나 힘들더군요. 매년 연수중에 이렇게 강의를 통해 교육을 받지만 이번만큼 힘든 강의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피교육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딱딱한 의자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이 정말로 쉽지 않네요.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바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졸음입니다. 신부님께서 열성적으로 강의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졸고 있는 제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앞에서 길게 말씀하시는 신부님을 향해서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이제 좀 끝내죠?’

바로 그 순간, 제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성지에서 강론을 하고 성지 설명을 하는 저를 향해서, 사람들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즉, 나의 이야기에 힘들어했고, 속으로는 ‘빨리 좀 끝내지…….’라는 목소리를 얼마나 많이 외쳤을까요?

사실 제가 강론이나 성지 설명을 할 때 하품을 하시고 졸음을 못 참고 꾸벅꾸벅 조시는 분들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때마다 제 스스로는 ‘설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하면서 그 정도의 시간도 참지 못하는 순례객들을 원망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랍니다. 하지만 어제 절실히 느낀 것은 말하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듣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도 제대로 잘 듣지도 못하면서, 남에게는 제대로 들으라고 말하면서 온갖 책임을 부과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거짓 예언자를 조심하여라.”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그 ‘거짓예언자가 바로 나는 아닐까?’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도 사랑보다는 미움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 모습이 거짓예언자가 아니고 무엇일까요?

사실 우리들의 모습과 행동 하나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미치게 됩니다. 따라서 예언자란 소위 말하는 종교 지도자들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우리 모두를 향한 예수님의 말씀이며, 남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거짓예언자가 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거짓예언자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내 안에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거짓예언자가 있었습니다.

남의 허물을 바라보려고 하지 맙시다.



평안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중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궁금증이 많은 초등학교 3학년 귀여운 꼬마가 보채는 통에 무슨 얘기를 해 줄까 생각하다가 이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남자가 한여자를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을 만큼 사랑했단다. 그 남자는 결국 여자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그 순간 여자는 이런 쪽지를 남자에게 주었지.
"두마리의 말과 다섯마리의 소를 가지고 오면 결혼해 주겠어요."
 
그 남자는 곰곰히 생각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고 그것을 모르는 이상 여자를 행복하게 해 줄수 없다고 생각했지. 결국 그 남자는 50년이 흘러 할아버지가 됐고 그때까지도 그 여자만을 사랑했단다.
 
맑은눈으로 할아저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꼬마 녀석이 "피~!"라는 감탄사를 내뱉으면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할아버지~! 두마리의 말이랑 다섯마리 소면 '두말 말고 오소~' 아니예요!"
아이의 이 간단한 대답에 할아버지는 흐르는 눈물을 훔치셨다고 해요.
 
<<어린왕자>>라는 명작을 쓴 쌩떽쥐베리가 이런 말을 했지요.
 
"어른들은 보이는 그대로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아이들이 그것을 일일이 어른들에게 설명해야 한다는 것은 힘들고 피곤한 일이다."
 
정말로 그런것 같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자신이 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입니다. 하지만 아른들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혹시 이 안에 다른 뜻은 없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의심을 하곤 하지요. 그래서 불신이 생기게 되고 미움과 다툼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여기서 슬기롭고 똑똑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자신과 자기 이익 속에 갇혀서 살고 있으며 자신에게 유리한 기득권만을 도모하는 사람들이 과연 슬기로운 걸까요? 그래서 그들 안에 늘 불신과 미움, 다툼이 있다면 우리는 결코 그들을 슬기롭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철부지 같이 못난 사람은 자기가 못나고 철부지 같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늘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행동합니다.
 
나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요? 슬기롭고 똑똑한 사람입니까? 아니면 철부지 같이 못난 사람입니까? 슬기롭고 똑똑해서 마음속에 불신과 미움을 안고 살든지, 아니면 못난 모습 그대로 단순하고 평안한 삶을 살든지 그건 자기가 선택할 몫입니다. 또 못나고 철부지 같으면서도 슬기롭고 똑똑한 양 '척하며' 살든지 말입니다.
 
 
 
Fritz Krisler - Leibesl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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