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나의 아버지와 우리의 아버지----롤하이저 신부님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25 조회수407 추천수14 반대(0) 신고
 나의 아버지는 내가 한창 나이인 스무 세살의 신학생으로 인생에 대하여 배우고 있을 때 돌아가셨다. 누구나 어떤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더라도 슬프게 마련이지만 나의 경우 아버지의 진면목을 알아보기 시작할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더욱더 슬펐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여전히 고통 속에 지냈지만 더 이상 계시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나에게 주셔야할 것은 이미 다 주셨기 때문이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훌륭한 인품과 탤런트라는 은혜를 듬뿍 받았다.
비록 어리기는 했지만 나는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를 깨달았던 것이다.
내가 택한 인생진로는 아버지를 기쁘게 하였고 자랑스럽게 만들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의 하느님 목소리처럼 아버지께서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에게 기쁨을 주는 내 아들이다.”
이는 모든 아버지들이 아들에게 바라는 것이다.
비록 아버지께서는 나를 떠나셨지만 후손(後孫)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아버지의 인품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아버지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도덕적이었으며 당신을 속여서 자기 합리화를 하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구차한 변명을 하시는 적이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자주 우리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인정(人情)을 베풀었지만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것은 나에게 신성(神性)을 보여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하고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믿음을 갖고 바르게살기를 바라셨으므로 이를 거슬러서도 안 되며 핑계를 대면서 죄를 지어도 안 된다.
우리가 하느님 안에 산다면 그리하여 하느님의 가족이라면 이를 절대로 어겨서는 안 된다.
이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거의 언제나 깨어 계셨다. 화를 내시거나 우울해하시거나 침착함을 잃거나 방황하시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어머님의 내조로 항상 깨어 있으실 수 있게 됨으로써 때로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으나 우리의 가정을 안전한 피신처로 만드셨다.
자라면서 우리 집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폭풍우가 몰아치지 않는 따뜻하고 안전한 피신처로 느꼈다. 그리고 대가족이었지만 자식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과 관심은 변함이 없었으므로 나는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로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주님의 기도를 드릴 때마다 특정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아무런 저항감을 느끼지 못하였다.
아버지는 자식들뿐만 아니라 이웃까지 가족으로 생각하셨다.
아버지가 우리와 함께 게시지 않더라도 전혀 불안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까지 포함한 가족의 가장(家長)이셨기 때문에,
일하시지 않으면 교회에 계시거나 병원에 계시거나 학교 위원회에 계시거나 정치에 관여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께서는 나뿐만 아니라 형들과 누이들에게도 은혜를 베푸셨으며 야구를 무척 좋아하셨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시골의 야구팀을 맡아 지도하셨다.
이때만이 특별한 외출이었으며 거기서 영혼의 안식일을 지내셨다.
그러나 은총은 저절로 오지는 않는다. 아버지도 인간이셨고 인간은 가장 약할 때 가장 위대한 힘이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항상 깨어 계셨고 무척 과묵하셨으며 풍요로울 때에도 술을 마시지 않으셨다. 누구나 아버지가 춤을 추는 모습을 보거나, 주저하거나 변덕을 부리거나 자포자기하거나 허세를 부리거나 의로운 척하거나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는 전혀 그러시지 않으셨으며 항상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아버지를 본받아 사는 것에 무척 중압감을 갖고 살았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나 성장해서도 아버지께서 춤도 추시고 말씀도 좀 하시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하였다.
아버지를 본받는다는 것이 족쇄가 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영국의 시인이며 화가이자 판화 조각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시 <갓난아기의 슬픔(Infant Sorrow)>에 나오는 것처럼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고” 무척 애썼다.
바꾸어 말하면 아버지께서 단순하게 사시며 술도 마시며 사는, 아버지에게는 불가능한 일을 바랐던 것이었다. 그러나 깨어 계시지 않으셨다면 아무데서나 춤을 추셨을 지도 모른다.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슬퍼하기도 했지만 아버지께서 당신의 길을 가신데 대해 자부심을 갖기도 했고 존경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과묵함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금년 1월 5일이 되면서부터 나의 나이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많아졌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의 은총 속에 살면서 아버지를 존경한다. 내가 비록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지 못했을 때도 있었지만 또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 가고 있고, 춤추는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했었지만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은총에 감사할 뿐이다.
 
(주;
 
갓난아기의 슬픔(Infant Sorrow)
 
나의 어머니는 신음했다! 나의 아버지는 울었다.
나는 구름 속의 악마처럼
아무 도움도 없이, 알몸으로, 큰 소리로 울면서
위험천만한 이 세상으로 뛰어 들었다.
아빠의 손아귀에서 몸부림치며,
강보에 싸여 버둥거리며,
지쳐있으면서도 나는 생각했다.
언짢기는 했지만 그래도 엄마 품에 안겨 있는 것이 좋다고.
 
My mother groan'd! my father wept.
Into the dangerous world I leapt.
Helpless, naked, piping loud;
Like a fiend hid in a cloud.
Struggling in my father's hands,
Striving against my swaddling bands;
Bound and weary I thought best
To sulk upon my mother's breast.
 
블레이크는 ‘선악과(善惡果)’를 먹기 이전의 상태를 인간 영혼의 영원한 ‘천진난만한 상태(the State of Innocence)’라고 하고, 이것을 먹고 타락된 이후의 상태를 인간 영혼의 ‘경험의 상태(the State of Experience)’라고 불렀다. 타락한 경험 세계에서 태어난 갓난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고통과 슬픔을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항상 행복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의 원죄 때문이었다.
시에서 ‘아빠의 손아귀’와 ‘엄마의 품’은 순수 세계의 하느님의 사랑을 말한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