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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쟁과 평화" - 6.2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26 조회수295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6.26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애가2,2.10-15.19-19 마태8,5-17

 

 

 

 

 

"전쟁과 평화"

 

 

 

어제 평화신문에서 참 아름다운 기사를 보았습니다.

 

‘아홉 살 소녀 마음으로 그린 꽃밭에 탄성

  -네 딸을 수녀로 키운 90살 유중희 할머니 첫 전시회’ 라는 제하의

  평화가득한 분위기의 글이었습니다.

  수채화와 크레용으로 지난 2년 동안 그린 꽃 그림 17점이

  흡사 전시장을 꽃밭으로 만든 느낌이었다고 합니다.

  1921년생이시니 지금까지 민족의 대 수난기에 시련도 많았을 텐데

  어떻게 이렇게 곱고 아름답게 사시면서

  그 많은 연세에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꼭 그림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생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고 기도로 사신 할머니였다 합니다.

  유중희 할머니, 마치 세상 전쟁 중에 피어난 ‘평화의 꽃’같습니다.

 

전쟁과 평화,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구약성경은 온통 전쟁이야기이고

오늘 새벽 성무일도 독서 사무엘 상권도 다윗과 사울의 전쟁이야기입니다.

참 역설적인 게 누구나 원하는 평화인데 계속되는 전쟁입니다.

아마 인류역사상 전쟁이 없었던 적은 한 번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는 전쟁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에 이은

자연에 대한 경외심, 사람에 대한 경외심 상실로 초래된 전쟁입니다.

자연과의 경외심 상실로 인한 자연과의 전쟁과도 같은 무분별한 개발이요,

사람에 대한 경외심 상실로 인해

삶의 전쟁에서 무수히 망가져 가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의 무지와 탐욕으로 인해 자연이 파괴되고 병들어 갈수록

자연인 몸 역시 파괴되고 병들어가기 마련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입니다.

 

사람들 안에는 정도의 차이일 뿐

공격성, 잔인성, 폭력성으로 상징되는 짐승이 있기 마련이요

이래서 전쟁입니다.

최근의 월드컵 축구경기는 일정한 규칙 안에서 치열한 전쟁으로,

많은 이들은 이를 보면서 대리 만족을 하며

공격성, 잔인성, 폭력성을 해소합니다.

전쟁을 대체하는 스포츠 경기요

아마 이런 스포츠 경기가 없다면

어디선가 전쟁을 만들어 낼지도 모릅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바로 공동전례인 미사와 성무일도가

스포츠 경기 그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참 고맙게도 공동전례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의 이런 공격성, 잔인성, 폭력성의 수성(獸性)들을

무력화(無力化) 하면서 정화(淨化), 성화(聖化)시켜줍니다.

 

며칠 전 아산병원에 입원하여 절박한 처지에 있던 어느 암환자에게

병자성사를 주러 방문한 일이 생각납니다.

마치 전쟁터를 병원에 옮겨 놓은 듯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암과의 전쟁 중에 죽어가고 있는 지요.

그대로 병자의 몸이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투병 중인 많은 분들은 병과 죽음이 힘든 게 아니라

아픈 것이 참 견디기 힘들다 말합니다.

암과의 ‘전쟁’ 중에 병자성사를 통해

‘평화’의 주님을 모셔 들인 자매님의 얼굴이 참 맑고 평안해 보였습니다.

암 투병으로 만신창이가 된 심신은 흡사 1독서 애가의 장면 같습니다.

바빌론 제국에 의해 철저히 유린되어 완전히 초토화된 이스라엘,

갖가지 투병 중에 피폐해진 심신을 상징합니다.

 

“너의 예언자들이 네게 환시를 전하였지만,

  그것은 거짓과 사기였을 뿐,

  저들이 네 운명을 돌리려고 너의 죄악을 드러내지는 않으면서,

  네게 예언한 신탁은 거짓과 오도였을 뿐.”

 

하느님의 사람들인 예언자들의 직무유기의 죄가 참으로 큽니다.

거짓 예언자들의 오도로 인해 참화를 자초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절망의 한계 상황 안에서 붙잡을 수 유일한 구원의 끈은 하느님뿐입니다.

 

“주님께 소리 질러라.

  낮에도 밤에도 눈물을 시내처럼 흘러라.

  너는 휴식을 하지 말고 네 눈동자도 쉬지 마라.

  주님 면전에 네 마음을 물처럼 쏟아 놓아라.

  그분께 네 손을 들어 올려라.”

 

절망스런 전쟁 상황 중에도 끊임없이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하느님의 끈을 꼭 붙잡을 때 주님 주시는 위로와 치유, 평화와 희망입니다.

절망스런 투병의 상황 중에도 병자성사를 통해 선사되는 주님의 평화입니다.

세상이 전쟁을 상징한다면 수도원은 평화를 상징합니다.

하여 세상 전쟁에서 심신을 다친 이들이

주님의 치유와 평화를 찾아 ‘평화의 집’인 수도원과 피정 집을 찾습니다.

‘주님, 우리의 발걸음을 지켜주시어,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우리는 오늘 아침 성무일도 즈카리야 후렴을 노래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최고의 선물은,

우리 수도원이, 수도자들이 세상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주님의 평화입니다.

평화의 집인 수도원에 살고 있는 수도자들,

웬만해서는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이보다 안 어울리는 일도 없습니다.

저는 오늘 독서의 애가에서 ‘전쟁’을,

마태복음에서 주님의 ‘평화’를 묵상했습니다.

주님을 만날 때 치유와 구원의 평화입니다.

백인대장과 주님의 대화가 참 진지하고 절실합니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서 그를 고쳐주마.”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를 것입니다.”

 

백인대장의 겸손한 믿음에 감탄하신 주님의 말씀에 이은 치유선언입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

  … 가거라. 네가 믿음대로 될 것이다.”

 

겸손한 믿음에 치유의 평화로 응답하신 주님이십니다.

삶의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주님과 함께 할 때 치유와 위로, 구원과 희망의 평화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우리의 병고를 떠맡으시고 우리의 질병을 짊어지시며

우리를 당신의 평화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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