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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27일 야곱의 우물- 루카9, 51-62/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27 조회수327 추천수4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51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2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53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54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 하고 물었다.
 
55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56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57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아버지의 뜻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를 제 마음에 심어주소서.

독서
오늘 복음 앞부분에서는 예수님이 당신 길을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51절) 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와 대비되어 57절 이하에서는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세 사람의 모습이 묘사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이들에게 본보기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루카복음의 맨 마지막 장면은 바로 예수님의 승천입니다. (24, 51) 이로써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행하신 사명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시대, 사도행전에서 보게 될 교회의 시대, 성령의 시대가 시작될 것입니다. 이러한 당신의 소명을 위해 그분은 ‘예루살렘’ 을 받아들이십니다. 예루살렘은 당신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장소지만, 또한 수난하시고 돌아가실 장소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보다 조금 앞에 나오는 거룩한 변모 장면에서 예수님은 이미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 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9, 31) 예수님은 그곳에 가신다면 장차 무슨 일을 맞을 지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을 굳히신’ 것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기 위한 고통이 수반되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에 더하여 사마리아 사람들도 그분을 냉대합니다. 이유는 바로 그분이 예루살렘에 가시기 때문에, 다시 말하면 수난을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수고와 희생을 받아들인다면, 사람들은 나를 지지하고 격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요 !
예수님께서 받으신 사형 선고가 떠오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그분을 죽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어서 그분을 죽였을까요 ? 어쩌면, 그분께 사형 선고를 내린 이들은 그분의 말씀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를 미적지근하게 살아가는 우리보다 더 잘 인식했는지도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정치범을 죽이는 사람들은 그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듣는 이들보다 그의 말을 더 잘 알아듣는 것입니다) .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거부를 포함하여 예루살렘을 향한 길을 온전히 받아들이십니다. 그 거부와 박해를 받는 것이 당신 사명의 일부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한마디로 아버지의 뜻을 이룬다는 그 한 가지를 위해 모든 것을 받아들이십니다.

이어서 그분을 따르는 세 사람이 나옵니다. 첫 번째 사람에게 예수님은 정처없는 당신의 삶을 말씀하십니다. 당신을 따르겠다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안정된 생활을 보장해 주지 않으십니다.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는 예수님의 말씀은 (58절)  아무 것도 기대하지 말고 철저한 가난과 복음 선포를 위한 전적인 자유를 받아들이라는 초대로 들립니다.
이어서 나오는 두 사람은 따름과 응답에 어떤 조건을 붙이려 합니다. 이들은 부르심에 따라나선 이들이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걸 수 없었고 이전에 그들이 지닌 관계인 가족에게 계속 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두 번째 사람에게 하신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는 말씀에서는 (60절)  하느님 나라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극단적으로 드러납니다.
마찬가지로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는 말씀은  (62절) 복음을 선포하라는 부르심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나 가족에게 해야 할 사랑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할 때는 그 부르심에 따르는 모든 요구, 치러야 할 희생과 고통까지 전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성찰
한 가지를 선택하려면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하는 법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계셨지만, 우리가 부르심에 응답할 때는 아직 그 응답이 어떤 포기를 요구할 것인지 명백히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응답이 무조건적인 것이라면 이어서 맞게 될 어려움과 반대와 희생, 그 모든 것은 이미 했던 응답 속에 포함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렵습니다. 그럴 때 “우리 믿음의 영도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분께서는 당신 앞에 놓인 기쁨을 내다보시면서, 부끄러움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견디어 내시어, 하느님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히브 12, 2) 예수님 당신께서 먼저 보여주신 삶, 이것이 그분을 따르려는 사람을 위한 거울이 됩니다.

기도
제가 받을 몫이며 제가 마실 잔이신 주님, 당신께서 저의 제비를 쥐고 계십니다. (시편 16, 5)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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