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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과 정치인의 차이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27 조회수390 추천수13 반대(0) 신고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51-62)
 
알렉상드로 오귀스트 르드뤼롤랭(Alexandre-Auguste Ledru-Rollin, 1807-1874)은 프랑스의 정치가로 왕정(王政) 하에서 공화주의를 옹호하였다. 부르주아 층을 대표하는 급진주의자로 혁명 시에 임시정부의 내무 장관을 역임할 때였다. 어느 날 창문을 통하여 거리를 지나가는 군중을 보고 혼자 중얼거렸다. “나는 지도자야! 나는 군중을 따라가야 해!
말도 안 되는 말이다. 민주주의 나라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라고 지도자를 뽑지는 않는다. 영어 ‘minister(장관)’는 ‘봉사자, 하인, 종’을 뜻한다. 나를 이끌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의 이익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면 필경 그들 자신의 이익에 맞춰 나를 이용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데 나의 이익과 상충 될 때에 지도자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나를 설득하여 그들의 이익과 나의 이익을 절충하여 ‘공동이익’을 찾으려고 애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어 소수의 사람들의 공동이익만 만족시킬 때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애정을 갖고 봉사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한다.
그러나 진실함이 없이 설득하고 거짓말을 하고 아부하고 말을 둘러대기만 한다고 하여 모든 이익단체를 만족시킬 수가 없는 법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먹혀들어갈 때도 있다.
처칠이 말한 대로 민주주의 국가는 결점이 많지만 더 나은 제도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섬기러 왔지 섬김을 받으려고 이 세상에 오시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마태오 20:28; 마르코 10:45)
많은 정치인들도 이와 같이 말하지만 우리들은 그들이 그렇게 말할 때 그들의 두둑한 연봉, 연금, 목에 힘주는 모습과 봉사정신이 없는 것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의 높은 연봉을 시기하지 않는다.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부양할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가 지나치게 되면 맹렬히 비난한다. 우리는 마음속으로 그들도 “섬기러 왔지 섬김을 받으러 오시지 않았고 머리를 기댈 곳도 없는 분”과 비교하면서 괴로워하겠지 하고 자위(自慰)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이익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다. 그 때문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표를 구걸하시지 않기 때문에 진심으로 진리를 말씀하실 수 있었다. 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표하겠다고 말씀하시지도 않았으며 우리에게 아부할 필요도 느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당신 자신의 이익을 전혀 생각하시지 않으셨으므로 우리에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경제적인 이득을 말씀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시지도 않았기에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라.”는 말씀(마태오 22:21; 마르코 12:17; 루카 20:25)과 유산처리 문제(루카 12:13-14) 외에는 경제적인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두루뭉술하게 말씀하신 적도 없었으며 인정어린 말씀만 하셨다.
또 우주를 향하여 호소하셨다.
가장 인간적인 것은 가장 우주적인 것이라는 말은 독설(毒舌)이다.
헨리 뉴웬은 이 말을 정확히 이해했기 때문에 그의 글과 말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여러 번 했다. “우리는 사생활과 공생활을 분명히 구별하기를 좋아 합니다. 그리하여 ‘나의 사생활에서 하는 모든 일은 다른 사람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영성생활을 하려고 하는 사람은 가장 인간적인 것이 가장 우주적이고, 가장 숨겨진 것이 가장 공개적인 것이고, 가장 외로운 것이 가장 공동체적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은 단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서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내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외로움이 공동체에 대한 선물이며 자신이 하는 가장 은밀한 생각이 공동체 생활에 영향을 주는 까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장 깊은 곳을 다루고 계시므로 우리의 모든 삶을 다루고 계시는 셈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나를 따라라.”고 말씀할 권한을 갖고 계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춤을 가르쳐주시는 것도 아니며, 우리가 주님을 따를 때에만 인도하시는 척도 하시지 않으시며, 군중심리에 부화(附和)뇌동(雷同)하시지도 않으신다.
오로지 우리를 섬기러 왔다고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주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목숨까지 내어 놓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목숨까지 내어놓으시라고 말씀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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