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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모든 이의 모범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28 조회수833 추천수13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13주간 월요일 - 모든 이의 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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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철책선 비무장지대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기 때문에 동물과 식물의 천국입니다. 그 곳에서 채취할 수 있는 자연산 숫 두릅은 거의 20년 전에도 시장에서 하나에 500원 이상씩 하는 매우 귀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운전병이었기 때문에 주임원사님을 태우고 철책을 지나고 있는데 원사님이 갑자기 차를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밑에 아무도 따지 않은 두릅나무들이 몇 그루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신나서 그 곳으로 달려 내려가 두릅을 닥치는 대로 땄습니다.

그 때 위에서 군인 한 명이 우리를 보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우리가 내려와 있는 곳이 지뢰밭이라는 것입니다. 원사님은 “아무도 움직이지 마!”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꺼내서 땅에 천천히 찔러 넣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내 발자국만 밟고 따라와!”라고 하였습니다. 칼로 발 디딜 곳을 미리 확인을 하고 안전한 것이 확인 되면 거기만 밟으며 가는 것입니다. 한참을 걸려서야 우리는 지뢰밭을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 작은 사건은 주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해 주었습니다. 주님이 가신 길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께서 걸으신 바로 그 발자취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당신이 모범을 보여주시지 않은 어떤 것도 우리에게 강요하시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은 당신이 이미 모범으로 다 보여주신 것들입니다.

 

샌 프란시스코의 금문교라는 다리를 공사할 때의 일입니다. 다리가 너무나 높고 위험하므로 기술자들의 마음이 늘 불안했습니다. 일을 하다가 밑을 보게 되면 현기증이 일어나 불안과 공포심이 생겼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리도 부들부들 떨리고, 일의 능률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공사 도중에 다섯 명이나 다리 아래 바다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시 당국에서는 기술자들의 안전을 지켜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생각했습니다. 그 방법들 중의 하나가, 공사가 진행되는 아래쪽에다 철사로 만든 그물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공사장 아래쪽에 그물을 치고 나니까 신기하게도 그물 위에조차 떨어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물이 쳐져 있으므로 일하는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뒤부터 일도 잘 할 수 있었고, 다치는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물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고 일도 잘 됩니다. 우리에게 이 그물은 바로 예수님이시고 그 분이 보여주신 모범입니다. 그 분이 계시다는 것이, 또 그분의 발자취만 따라가면 안전하다는 것이, 우리 삶까지 더욱 안정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제자들에게 여러 가지를 주문하십니다. 어디든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율법학자에게는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라고 하시며 가난을 강조하십니다.

가난은 사랑해서 모두 주어버린 상태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성자를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렇게 가난해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에 당신의 피와 물까지 다 쏟으시며 우리에게 당신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가난입니다.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을 결심이 있으면 따르라는 것입니다.

또 아직도 인간적인 애정을 끊지 못하고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 달라는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나의 주님, 나의 주님, 왜 나를 버리셨나이까?”하시며 아버지께로부터 버림받은 고통으로 부르짖으십니다. 아버지가 왜 아들을 버리셨을까요? 이는 “남자는 제 부모를 떠나 여자와 한 몸이 되어야한다.”라는 말씀대로 교회와 한 몸이 되기 위해 성자께서 먼저 아버지를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즉, 성부와 성자께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서로의 애정을 잠시 포기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죽는 것을 기꺼이 지켜보십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아들이 당신이 주시는 생명이신 성령님을 통하여 교회와 한 몸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조차도 더 커지는 사랑을 위해서 서로의 애정을 포기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며 형제냐?”라고 하시며 심하게 대하시는 것도 그 안에 수많은 어머니들과 형제들을 품기 위해 애정을 봉헌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시지 않으셨다면 당신을 따르기 위해 부모나 형제를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도 실천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의 발자취만 따르면 안전하게 하느님나라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분이 산 그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죄송한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제가 두 달 동안 방학을 맞아서 자주 이동을 해야 할 처지에 있습니다. 그래서 묵상을 올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두 달 동안은 항상 고생하는 에스델 자매의 수고로 작년 묵상을 계속 올리게 될 것입니다. 저도 재충전 하여 9월부터 다시 묵상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넓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 ^

 

< 주님 닮은 당신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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