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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28 조회수845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6월 28일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Follow me,
and let the dead bury their dead." 
(Mt.8.22)
 
 
제1독서 아모스 2,6-10.13-16
복음 마태오 8,18-22
 
아마 어제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와 우루과이의 16강전 축구를 보느라 잠을 설치셨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선수들, 정말로 잘 뛰었는데 아쉽게도 1:2의 패배를 맛볼 수밖에 없었지요. 하지만 8강에 오르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정말로 최선을 다해 싸웠으며, 온 국민 모두가 이 축구를 통해 하나를 이룰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축구를 보며 이런 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1:2가 되고난 뒤, 경기 종료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우리 선수들의 몸놀림이 둔해지는 것입니다. 사실 1:1이 되기까지는 정말로 경기를 잘 이끌어왔지요. 분명히 우리가 이길 것이라는 확신까지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골을 허용한 뒤에는 최선을 다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상대방에게 별 커다란 압박이 되지 않는 것 같더군요. 그러면서 언젠가 들었던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선수는 경기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다.”

전문가 아닌 제가 이런 말을 하기는 그렇지만, 시간이 점점 없어지면서 느끼게 되는 초조함과 불안함이 경기 자체를 즐기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 아닐까요?

사실 이 원칙은 운동뿐만 아니라, 공부에도 그리고 일에도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즉, 어떤 것이든 그 안에서 즐겨야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지요. 이를 악물어 힘을 내는 것은 순간에 불과할 뿐입니다. 지속적인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신에 긴장을 풀고 힘을 쫙 빼는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이 바로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께 이러한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당연히 허락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는 것을 반대하십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당시 이스라엘의 장례 기간은 보통 1년 정도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시체가 완전히 썩어서 뼈만 남는 기간이 그 정도 걸리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장례를 치루고 오겠다는 것은 바로 지금이 아닌 1년 뒤에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기간이 3년 밖에 되지 않는 점을 기억할 때, 아버지의 장례 치루는 것을 반대하시며 무조건 따르라고 하신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더 큰 의미가 있음을 묵상하게 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이 세상일에 힘을 빼라는 의미입니다. 세상일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몸과 마음이 굳어져서 주님의 자리를 만들 수가 없고 그 결과 주님과 함께 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고통과 시련의 길을 힘들게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유혹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로움으로 나아가는 행복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행복으로 이끌어주시는 주님 부르심에 우리는 세상일에 힘을 쫙 빼고 자신 있게 그리고 기쁘게 응답해야 합니다.

“네. 여기에 제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입니다(법정).




 

달랑 한 줄(정혜신, ‘마음 미술관’ 중에서)

일부러 시나리오나 드라마 극본을 찾아 읽는 때가 있습니다. 영화나 연극을 직접 볼 때와는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어서입니다. 그 묘미는 괄호 안에 있는 지문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처럼 감각적인 지문은 상황을 실감 나게 하는 동시에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대하 사극에 출연한 한 중견 배우는 작가가 ‘치열하게 싸운다.’라는 지문 한 줄 써 놓으면 배우들은 반쯤 죽는다고 말합니다. 그 한 줄 때문에 백여 명이 밤새 진흙탕을 구른다는 거지요. 그런 게 지문의 힘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지문은 영화 ‘트로이’에서 전설의 전사 아킬레스가 거인과 일대일로 싸우는 장면을 지시한 대목입니다. 아킬레스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의 조각 같은 몸매보다 훨씬 매력적인 그 지문은 달랑 한 줄에 불과합니다.

“아킬레스, 신(神)처럼 싸운다.”

살다 보면 이처럼 간결하게, 명확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영혼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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