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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29일 야곱의 우물- 마태 16,13-19 묵상/ 천국의 열쇠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6-29 조회수428 추천수4 반대(0) 신고
천국의 열쇠

13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 하고 물으셨다. 14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 하고 물으시자, 16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18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열쇠’ 라는 말 속에는 뭔가 문제의 해결책, 정답이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열쇠만 있다면 삶의 모든 문제를 어렵지 않게 해결해 갈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는 단순하고 우직하고 벌컥 화도 잘 내고, 덤벙대며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맡기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눈빛을 상상해 보니 묘한 감동이 느껴집니다. 오래전에 읽은 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 가 떠오르는 이유와 같은 감동입니다. 주인공 치셤 신부의 삶을 통해 뚜렷이 기억하는 감동은 진정한 구원에 이르는 길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통찰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잘 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 앎이란 우리 머릿속 이해이거나 왜곡된 앎일 때가 많습니다.
구원에 대한 앎도 그렇습니다. 마치 구원이 우리의 행동에 달린 것처럼 때론 죄책감으로, 때론 비장함과 엄격함으로 자신을 몰아세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정의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정의를 우리의 행위라 한다면 사랑은 우리의 지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정의도 사랑의 한 부분이지만 종종 우리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하는 듯합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깊은 고백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지향을 보시며, 우리 구원은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에 기인한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우리도 치셤 신부처럼 “나는 내 인생의 평판을 하느님께 맡기겠소.” 라고 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우리는 명민하지도 너그럽지도 못한 때가 많습니다. 말이 행동에 앞서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무관심하며 편협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인간적 약점 가운데서도 천국의 열쇠를 받았듯 흔들리는 신앙의 여정 가운데서 우리도 천국의 열쇠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천국의 열쇠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남궁영미 수녀(성심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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