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사람에게 용서하는 권한을 주신 하느님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01 조회수969 추천수14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13주간 목요일 - 사람에게 용서하는 권한을 주신 하느님

 


 

저는 용서가 얼마나 큰 위안을 주는지 저에게 세례를 받은 한 할머니에게서 잘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평생을 산부인과 의사로 살아오셨고, 박 대통령 때 산아제한을 할 때에는 하루에도 60명을 낙태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돈도 많이 벌었지만 그렇게 평생 나라의 묵시적인 허락을 통해 해왔던 수많은 살인은 그 할머니의 말년에 얼굴도 비뚤어지고 다리도 고장 나 걷지도 못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까지 만들었습니다. 어쩌면 양심의 가책 때문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본인이 느끼는 대로 하느님께 벌 받은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몸이 그렇게 되니 대인 기피증도 생기고, 그렇게 3년 동안 침대에만 누워 죽음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 층에 사는 한 자매의 말에 평생 쌓아왔던 마음의 부담을 털어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다 용서 해 주세요.”

이 말에 할머니는 희망을 다시 가지고 집에서 그 자매의 방문을 통해 교리를 배웠고 하느님의 자비도 배웠습니다. 신자들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의 집에 가서 세례를 주어야 할 것이라고 저에게 말했지만, 그 할머니는 세례 당일 당당히 성당에 걸어 나와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이후로 성경 신구약을 모두 필사하는 등 신앙생활을 매우 열심히 하셨습니다.

아마도 보속이 더 필요해서였는지 얼마 전엔 앞이 창창한 외동아들을 갑작스런 사고로 잃게 되었습니다. 그런 불행이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기도를 청하셨습니다.

성당에 잘 나오다가도 그런 불행을 당하면 하느님을 원망하고 믿음을 잃기도 하는데, 세례 받은 지도 얼마 되지 않는 분의 믿음이 참 대단해 보였습니다.

 

어떤 연구 결과에서 수없이 존재하는 정신치료보다도 사람에게 안정을 되찾아줄 수 있는 것이 바로 ‘고해성사’라고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정말 고해성사는 나를 짓누르고 있는 죄책감을 씻어주고 다시 시작하게 해 주는 커다란 은총의 성사입니다. 고해소에 들어온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고 다시 마음이 가벼워져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보면 사제의 마음도 함께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사제에게 정말 고해성사만큼 힘든 것도 없고, 또 그것만큼 보람 있는 것도 없습니다. 사제의 사죄경 한 마디에 곧 자살할 것만 같던 사람도 다시 용기를 얻고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다른 종교에서는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용서해 줄 수 있는가?”하며 고해성사를 부정합니다.

물론 사람이 사람을 용서해 줄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께 지은 죄를 사람이 어떻게 용서해 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만약 위에 예를 들었던 할머니가 하느님께 혼자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하고 용서받았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랬다면 순간순간 죄책감을 버리며 살 수는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스스로 하느님께 용서를 받을 수 없음을 압니다.’

저도 가끔은 기도 안에서 직접 하느님께 용서를 청해보지만, 고해성사 안에서 사제의 사죄경을 듣는 것만큼 확실하게 죄가 용서받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용서 받았다고 생각해도 그것이 단순히 나만의 착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너희가 용서해주면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교회에 맡겨진 이 성사에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혼자 하느님께 용서를 받았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하시는 예수님께, 율법학자들이 하는 말은 사실 맞는 말입니다.

“이 자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가?”

사람이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만큼이나, 스스로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것도 진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용서하는 권한을 베드로에게 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셨는데, 이는 당신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베드로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하늘나라가 아담과 하와의 죄로 닫힌 것처럼, 그 문을 다시 여는 권한은 죄를 용서하는 권한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기적을 보이시며 당신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보이는 교회를 통하여 직접 죄를 용서하게 하신 것입니다. 모든 성사가 바로 이렇게 보이지 않는 은총이 보이는 것들을 통해 우리에게 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세례 받을 때 물을 이용하거나, 이마에 기름을 바르는 행위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다만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고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지닌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이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미한 것처럼” 우리를 교회에 불러주신 하느님을 찬미해야겠습니다.

 

 

  

<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