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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2010년 7월 5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02 조회수378 추천수5 반대(0) 신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2010년 7월 5일


마태 10, 17-22.


오늘은 한국인으로서 첫 사제가 된 김대건 신부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분은 열여섯의 어린 나이로 조국을 떠나 마카오로 파견되어 필립핀 등 외국을 전전하며 어렵게 공부하였습니다. 신부로 서품되고 귀국하여 8개월 동안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3개월의 옥고를 치른 후 한강변 새남터에서 참수(斬首) 순교하셨습니다. 겨우 스물여섯 살의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분이 집을 떠난 지 6년, 신부가 아직 되지 않고 스물두 살의 신학생일 때, 조선에 입국하기 위하여 중국의 요동 땅에 머문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조선에서 온 신자들로부터 자기 부모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그는 파리 외방선교회 본부로 보낸 보고서에 그 소식을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저의 부모는 많은 고난을 당하여 부친은 참수되었고, 모친은 의탁할 곳이 없는 비참한 몸으로 교우들 가운데 떠돌아다니고 있다 합니다.” 사실 그의 부친 김제준은 아들을 떠나보내고 3년 뒤, 아들을 해외로 보낸 죄 때문에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모친 우르술라는 이 집 저 집 떠돌며 살아야 했습니다.


김대건 신부가 체포되어 서울 포도청의 옥에 있을 때, 죽음을 기다리면서 당시 조선 교구의 교구장 페레올 주교에게 작별 인사 편지를 쓴 것이 있습니다. 그 편지 마지막에 자기 모친을 부탁하는 내용이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 우르술라를 주교님께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아들을 보지 못하다가 며칠 동안 한 차례 아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다시 아들과 헤어져 살아야 했습니다. 슬퍼하실 어머니를 부디 위로하여 주십시오. 주교님의 발아래 엎드려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그 시초부터 순교자들을 많이 배출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은 초기 교회에 있었던 박해와 순교에 대해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유대인이었고, 그들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다음에도 유대교 회당 집회에 참석하였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여 살아 계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교 회당에서 그들의 믿음에 대해 발언하였다가 매 맞고 쫓겨났습니다. 그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차차 유대교 공동체와 결별하고, 교회라는 독자적 신앙공동체를 만들어 독립하였습니다.


복음서들은 그 결별이 준 고통의 흔적들을 여기저기 감추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신앙인들이 ‘의회에 넘겨지고’, ‘회당에서 채찍질 당하며’,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울로 사도는 고린토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 “유대인들로부터 40대에서 하나가 모자라는 매를 다섯 차례나 맞았다.”(2고린 11,24)고 실토합니다. 그런 박해는 처음부터 적대감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가족의 혈연이 찢어지고 친지들의 따뜻함이 미움으로 바뀌는 아픔을 체험한 그리스도 신앙인들이었습니다. 한국의 순교자들도 같은 아픔을 겪었습니다. 순교자들은 신앙인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가문에서 파문당하고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하였습니다. 신앙인 한 사람이 발각되면, 그 가문 전체가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한 가정에서 신앙인이 체포되면 나머지 가족들은 노비(奴婢)로 전락하는 비극도 겪었습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박해를 받으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따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잡혀갔을 때에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는 말씀도 오늘 복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입을 빌려 복음은 말합니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예수님 안에 하느님의 영이 살아 계셨듯이, 신앙인들은 그들 안에도 아버지의 영이 살아 계셔서 말씀하신다고 믿었습니다.


초기 신앙인들은 그렇게 죽음을 각오한 이들이었습니다. 그것이 교회 초기의 팔레스티나에서도 그러하였고, 19세기 우리나라에서도 그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신앙은 죽음을 향한 길이 아닙니다. 신앙은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는 삶의 운동입니다. 그것은 죽기 위한 길이 아니라, 자비하신 하느님의 생명을 살기 위한 길입니다. 세상은 미워하고, 단죄하고, 벌주면서 그 질서를 유지합니다. 예수님 시대 유대교 기득권층도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성전 제사 의례에 충실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벌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이 자비하시다고 선포하며, 그분의 자비와 용서를 실천하여 그분의 자녀 되어 살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 시대 유대교의 믿음에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거되었고, 예수님에 대해 가르치던 제자들도 같은 운명을 겪었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18세기말입니다. 그 시대 조선 정부는 유교 사상을 국시(國是)로 하고 있었습니다. 효(孝)와 충(忠)을 지상(至上)의 가치로 한 국가질서였습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한 질서를 가르쳤습니다. 효와 충은 중요하지만, 이차적이었습니다. 이런 이념적 이질감에다, 사분오열되어 서로 다투던 그 시대 당파싸움이 가세하여, 조선 조정은 그리스도 신앙을 사악한 종교로 낙인찍었습니다. 그래서 순교한 이들의 수가 20,000명에 육박합니다. 순교까지는 하지 않아도 순교자의 가족이기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했던 생명들까지를 생각하면, 참 많은 분들이 희생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기본으로 한 우리의 삶입니다. 하느님은 아무도 희생시키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내어주고 쏟아서 다른 사람들을 더 풍요롭게, 더 자유롭게 살도록 하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를 희생하여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질서를 창립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교회 초기부터 신앙인들은 박해를 당하고 목숨을 잃으면서, 예수님이 여신 하느님 나라의 질서를 살았습니다. 순교는 자기가 심어진 곳에서 하느님의 생명을 살다가 당하는 불행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죽음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도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하느님의 생명을 산 사람은 하느님과 함께 살아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셔서 부활하셨다는 그리스도 신앙이 말하는 바입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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