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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이성과 신앙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02 조회수700 추천수15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 토마스 사도 축일 - 이성과 신앙


 

전에 ‘천사와 악마’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로마가 배경이기 때문에 그런 영화를 로마에서 보는 것은 더 실감나고 재미있었습니다.

‘다빈치 코드’를 쓴 작가가 쓴 것이라 교회에 반대되는 내용이 참 많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번 영화는 그리 심하지 않은 것 같아 보였습니다. 물론 신앙이 없는 한 과학자가 가톨릭교회를 구하게 되는 천사로 표현되고, 반대로 교회의 한 성직자를 교회를 해하려는 천사의 탈을 쓴 악마로 표현한 것은 신앙인들에게 약간의 거부감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도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다빈치 코드와 마찬가지로 과학의 발전이 종교의 오류를 밝혀내게 되어 종교를 무너뜨리거나 적어도 종교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대립되게 나오는 것은 과학과 신앙입니다.

교회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과학의 발전을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현대 과학은 종교의 허구성을 밝혀내려고 노력합니다. 이 영화도 과학을 신봉하는 이들이 과학으로 종교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한 명의 과학자가 막아낸다는 이야기입니다. 종교는 과학의 발달 앞에서 아무 힘도 없어 보입니다.

 

사실 우리 종교 역사 안에서도 과학과의 충돌은 끊임없이 있어왔습니다. 그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갈릴레이를 교회에서 단죄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천동설을 주장하였지만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하였고 주장을 굽히지 않자 그가 주장을 철회할 때까지 감금하였습니다. 그러자 갈릴레이는 결국 교회의 뜻에 수긍하고 교회도 그를 자유롭게 풀어줍니다.

그러나 이때는 교회가 권력의 중심에 있을 때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 가능하였습니다. 교회가 점점 힘을 잃어가자 과학은 매우 거센 반격을 해 옵니다. 특히 현대에 와서 다윈이 진화론을 내세우자 창조론을 주장하는 교회는 커다란 충격을 받습니다.

성경 신학 안에서도 과학에서 어긋나는 내용이 너무 많이 나오자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태양과 달이 넷째 날 창조되었는데 어떻게 하루, 이틀을 셀 수 있었는지, 또 동생을 죽인 카인이 아담의 유일한 자식으로 남게 되었는데 어떻게 다른 민족이 벌써 존재하여 그를 해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손을 써 주시는지, 하늘에서 만나가 40년 동안 내린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린지 등으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안에서 계속해서 모순되는 내용들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오늘 축일을 지내는 토마스 사도는 우리에게 과학적인 사고가 결국 신앙에 무릎 꿇게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토마사도의 그림이나 동상을 보면 보통 과학자나 건축가들이 사용하는 자를 들고 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전통에 의하면 토마스 사도는 기술자였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사도들 중에서도 가장 과학자에 가까운 정신으로 산 사람입니다.

물론 과학은 무엇이 증명 되어야만 진리로 받아들이는 성향이 있고, 믿음은 이성으로 증명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기에 서로 상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지독히 이성적이어서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하지 못하면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토마스 사도와 같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토마스 사도만이 그 사도단과 함께 있지 못하였습니다. 다른 사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고 해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자신의 손을 상처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이성으로 살아가는 과학자들에겐 어린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에겐 당신의 진리를 숨기시고, 철부지 어린이들에게 당신의 진리를 드러내 보이십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예수님께서는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하지 않으시고 토마 사도에게 나타나셨듯이 그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토마스 사도는 사도단과 떨어져 있었기에 혼자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볼 수 없었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사도단과 함께 있었기에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은 대단히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교회 안에 머물러 있으면 언젠가는 예수님께서 그들의 이성을 충족시켜주셔서 믿음을 갖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떠나 자신들끼리만 뭉치려고 하는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요즘의 신흥 운동들은 그 자체로서 위험한 시도를 하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 천주교 신자가 늘어가는 이유는 남자들 때문입니다. 주 오일 근무를 하게 되자 남자들도 시간이 생겨 종교를 가지려하는데 그래도 가장 그들의 이성을 충족시켜주는 종교가 가톨릭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어린이와 같이 단순한 사람이 갖게 되는 선물이지만 절대 비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처녀가 아이를 낳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며 믿음을 거부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물론 종교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지만, 지금은 인공수정으로 처녀도 임신하여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인간도 그 정도 하는데 하물며 하느님께 불가능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교회 안에 꾸준히 머물려고만 해 봅시다. 지금 이해하지 못하고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가르침들도 언젠가는 이해하게 되고 토마스 사도처럼,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하며 신앙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 눈 앞에 계신 주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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