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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03 조회수820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7월 3일 성 토마스 사도 축일
 
 
 
 Unless I see the mark of the nails in his hands
and put my finger into the nailmarks
and put my hand into his side, I will not believe.
(Jn.20.25)
 
 
제1독서 에페소 2,19-22
복음 요한 20,24-29
 
과학 분야에 있어 큰 업적을 이루신 박사님께 어떤 형제님이 다가와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해야 박사님처럼 빨리 성공 할 수 있을까요? 제가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박사님보다 부족한 것도 그다지 많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박사님은 과학적인 진보를 이룰 뿐만 아니라, 큰 명예도 얻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지금 저는 별 다른 진전도 없이 시간만 흘러 너무나 답답합니다.”

그러자 그 박사님은 이 형제님께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언제든 밤 11시에 제 연구실로 전화를 해보세요. 그러면 그 성공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형제님께서는 그날 밤부터 며칠 동안 연구실로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성공의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늦은 시각에 항상 전화를 받는 분은 이 박사님이었거든요. 즉, 그는 항상 늦은 시각까지 연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쌓이고 쌓여 좋은 결과, 성공을 이룰 수가 있었음을 비로소 이 형제님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처음 이 형제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부분만을 보고서 마치 박사님이 운이 좋아서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남이 모르는 박사님의 노력은 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결국 중요한 것은 남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하기에 앞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노력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성 토마스 사도 축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사도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는 말 때문에 2,000년 동안 불신앙의 사도로 불리고 있지요. 주님 앞에서 억울하다고 따질 만도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단 한 번의 불신앙으로 2,000년 넘게 부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으니까요.

사실 이렇게 토마스 사도의 불신앙을 이야기하지만, 우리들의 불신앙이 이보다 더 크고 더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지금 모습은 과연 몇 천 년을 비판받아야 마땅할까요? 그러나 다행인 것은 나의 믿음 없음이 이 세상에 공개적으로 기록되지도 않고, 또 후손들에게 쉽게 전해지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지 주님께서만 기억하면서 우리들에게 또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섣부르게 판단하기 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하면서 지금 이 순간 주님의 뜻에 맞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토마스 사도는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라는 다른 제자들의 말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며 따지고 있지요. 이렇게 기다리지 못하고 섣부르게 판단할 때, 주님을 믿지 못하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 굳은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서두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순간에도 주님의 눈으로 보려고 노력하면서, 어떻게든 듣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마음이 내 안에 가득해질 때, 우리는 이렇게 주님을 고백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함께 가면 길이 생깁니다(신영복).




신용을 목숨처럼(‘좋은 생각’ 중에서)

1597년 한여름, 네덜란드 선장 빌렘 바렌츠는 선원들과 새로운 교역로를 찾기 위해 북극해에 들어갔다. 그들은 기대했다. 여름철이면 24시간 낮이 지속되는 ‘백야 현상’으로 얼지 않은 바다에서 아시아에 도달할 최단 항로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그러나 예상과 달리 배는 빙하에 갇히고 말았다. 선원들은 닻을 내리고 빙하에 올라 갑판으로 움막을 짓고 불을 지폈다. 얼마 안 가 식량이 떨어지자, 북극여우와 곰을 사냥해 허기를 달랬다. 그사이 무려 네 명이 죽었고, 배를 띄운 지 일주일 만에 쇠약해진 빌렘 바렌츠마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십여 일 뒤, 그곳을 지나던 러시아 상선에 구조된 선원은 열두 명이었다. 그들이 네덜란드로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감동했다. 위탁 화물인 옷과 식량, 약품이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선원들은 영하 40도의 혹독한 추위에 떨고, 괴혈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고객의 물건을 꿋꿋이 지켰다.

생명 못지않게 상도를 중요시한 그들의 모습은 많은 이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이후 네덜란드 상인은 신용을 목숨처럼 여긴다는 소문이 돌았고, 네덜란드는 유럽 해상 무역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번영의 꽃을 피웠다.


 
 
 
 
Daydream - Walking Wit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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