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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화 공존의 삶" - 7.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06 조회수376 추천수1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7.5 월요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1821-1846) 대축일

역대기 하24,18-22 로마5,1-5 마태10,17-22

 

 

 

 

 

 

"평화 공존의 삶"

 

 

 

성 김대건 옥중서간에 나오는 관장과의 문답내용이 감동적입니다.

 

“배교하여라. 네가 배교하지 않으면 때려죽이겠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나는 결코 천주를 배반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의 진리를 알려거든 들어보십시오.”

 

과연 배교하여 사느냐

배교하지 않고 순교의 죽음을 택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순교의 죽음을 택할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껍데기 신앙이, 가짜들이 활개 치는 세상에서

참 크나큰 믿음의 유혹이자 시련입니다.

그러나 성 김대건 안드레아는

단호히 하느님을 위해 순교의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옥중서간 후반부 주교님께 어머니를 부탁하는 구절에서도

성인의 지극한 효심을 엿볼수 있습니다.

 

“저는 감히 주교 각하께 저의 어머니 우루술라를 부탁드리옵니다.

  저의 어머니는 10년 동안 못 본 아들을 불과 며칠 동안 만나 보았을 뿐,

  또 다시 홀연 잃고 말았으니,

  각하께 간절히 바라건 데,

  슬픔에 잠긴 저의 어머니를 잘 위로하여 주십시오.”

 

아마 우리나라처럼 종교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며

오늘날 우리만큼 신앙생활, 수도생활 하기 좋은 때도 없을 것입니다.

이념전쟁, 종교전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수도공동체내에

좌파와 우파, 천주교인과 개신교인, 불교인,

무신론자들이 공존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십중팔구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 분열, 불화일 것입니다.

간혹 이념이나 종교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는 가정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게 심각한 상태는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이념이나 종교의 그 자리에 돈이 들어와

불화와 분열로 무너지는 가정들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공존의 평화를 깨는 이념, 종교, 돈은

또 하나의 우상일 뿐입니다.

오늘 복음은 그대로 종교전쟁 상태를 보여줍니다.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는 유대교와 새로 태어난 그리스도교와의 전쟁이요

열세의 전쟁 상태에 있는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충고와 격려와 위로의 말씀입니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할 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이어 가족 내의 극심한 분열 대립 현실을 예고하신 후

다음 같은 결론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시대의 조선왕조 역시

극심한 내우외환에 치열한 종교전쟁 상태에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기존의 유교 이념을 바탕으로 한 조선왕조와

새로 전래된 천주교와의 전쟁입니다.

결국 오해에 기인한 겁니다만

충효(忠孝)를 거역하는 것 같은 천주교의 교의에 위협을 느껴

체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본능의 표현이 처절한 천주교의 박해였습니다.

임금에 대한 충성 대신 하느님께 대한 충성을 강조하고,

또 조상 제사를 거부하는

천주교인들의 불효막심한 현실에

조건반사적 반응이 바로 2만 여명의 순교에 이른 박해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서방교회 역사 상 이단과의 끊임없는 전쟁도 이해가 됩니다.

박해 받던 교회가 기득권을 지니게 되자

교회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이단과의 박해 전쟁이요,

때로 과잉반응으로 얼마나 무죄한 이들의 피를 흘렸는지요.

1독서 역시 하느님의 집에 아세라 목상과 우상들로 채워져

이스라엘 백성들이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에 봉착하자

분연히 일어난 즈카리야 예언자입니다만

다음의 예언 후에 적대자들에 의해 살해됩니다.

 

“너희는 어찌하여 주님의 계명을 어기느냐?

  그렇게 해서는 너희가 잘 될리 없다.

  너희가 주님을 저버렸으니, 주님도 너희를 저버렸다.”

 

문제는 오늘 날의 우리들입니다.

외부의 박해는 사라져 참 신앙생활하기 좋은 때처럼 보입니다.

종교 간의 평화 공존이 잘 되는 나라요,

나라도 사회도 천주교를 신뢰하며 퍽이나 호의적입니다.

적은, 우상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안에 있습니다.

 안주와 나태와 타성에 젖은 이기적이고 세속화된 삶이,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허영과 교만의 삶이

바로 박해 못지않은 오늘 날 적입니다.

하여 우리 분도수도자들에게는

끝까지 자기 삶의 자리를 충실히 견디어 내는 정주서원,

끊임없는 자기쇄신의 수도승다운 생활 서원,

하느님 진리에 복종하는 순종 서원을 통한 깨어 있는 삶이 참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가운데

종파를 초월한 인류가족의 평화공존이 우선입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루카6,27ㄴ-28).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주님은 세계 인류가족의 평화공존을 위한 길을 제시해 주시니

바로 자비로운 삶입니다.

제 2독서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와 자비를 누립니다.

이런 참 평화가 깊어가면서 평화공존의 자비로운 삶이며

주님은 매일의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이런 평화와 자비를 선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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