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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 7.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07 조회수403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7.7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호세10,1-3.7-8.12 마태10,1-7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삶이 교과서라면 성경은 참고서입니다.

 

누구나 고유의 삶이라는 책을 잘 이해하고 살려면

가장 좋은 참고서 성경은 필수입니다.

 

유일한 최고의 스승인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경을 참고서로 하여

내 삶의 책을 이해하고 살아갈 때 정말 의미 충만한 행복한 삶입니다.

 

오늘 아침 성무일도 독서(2사무24장) 시

인구조사 후 즉시 가책을 느껴

뉘우치는 다윗의 모습이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제가 이런 짓으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당신 종의 죄를 없애주십시오.

  제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이어 다윗은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주님께 다시 기도합니다.

 

“제가 바로 죄를 지었습니다.

  제가 못된 짓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양들이야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러니 제발 당신 손으로 저와 제 아버지의 집안을 쳐 주십시오.”

 

이래서 다윗을 성군이라 합니다.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주님 앞에 무릎 꿇을 수 있는 겸손한 임금 다윗은

모든 지도자들의 귀감입니다.

주님의 인도 하에 성경을 참고서로 하여

자기 삶의 책을 늘 렉시오 디비나 한 결과,

늘 주님 앞에 깨어있는 삶을 살았던 다윗입니다.

 

다윗은 물론 예언자들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실로 ‘하느님의 마음’에 ‘하느님의 눈’을 지녔던

예수님이요 예언자들이었습니다.

빛 이면에 어둠의 그림자를 동시에 보는 하느님의 눈, 예언자의 눈입니다.

때로 뒤집어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 모두를 봐야

분별이 가능하고 균형과 조화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저의 짧은 생각에 무릎을 친 적이 있습니다.

남북한의 비교에서 들어난 긍정적인 면만 봤지

그 이면의 부정적인 면을 깡그리 잊었습니다.

우주에서 본 한반도에 대한 묘사입니다.

 

“남한의 주요도시들은 불빛이 밝아서

  어디가 광주고 어디가 대구이고 어디가 포항, 속초인지

  식별이 가능하지만

  북한은 강릉정도의 크기와 밝기의 불빛을 보여주는 평양을 제외하고는

  마치 고비사막처럼 온 나라가 캄캄하여 참 낙후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게 바로 남한의 긍정적인 면이고

부정적인 면은 얼마나 에너지 낭비, 자원 낭비가 큰 것인가 하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입니다.

너무 낙후한 북한도 문제지만

너무 에너지를 낭비하는 남한도 북한 못지않게 문제라는 자각이었습니다.

이어 얼마 전 예로 들었던 남북한의 국력 차이인 데,

인구는 북한의 두 배인데,

국민총생산은 북한의 40배,

전기생산은 북한의 35배,

철강생산 북한의 40배라는 긍정적인 사실이

동시에 얼마나 자원낭비가 큰 가하는 부정적 사실로 연결되었습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자원낭비로 국토는 망가져

마침내 지구의, 인류의 수명을 단축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보이는 긍정적 결과에 치중하다보면 부정적 결과를 간과할 수 있습니다.

하여 뒤집어 보는, 빛이 바로 어둠이라는 깨달음의 지혜가 절실합니다.

이래서 역시 양 극단의 조화와 균형이 필수입니다.

북한은 너무 낙후 했고 남한은 너무 지나쳤습니다.

북한 인구의 두 배라면

경제력은 한 10배 정도가 이상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양적인 결과에 집착하다보니

삶의 질은 날로 떨어지고 망가지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이런 현실을 직시하여 비판한 성경의 예언자들입니다.

 

 

하느님을 배반한, 하느님을 등진 사상누각의 경제가, 문명이

얼마나 위태한지 절감한 예언자 호세아였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들도 많이 만들고,

  땅이 좋아질수록 기념 기둥들도 좋게 만들었다.”

 

그대로 오늘날의 전시위주, 대형화 추세의

실속 없는 허영의 경향에 대한 비판 같습니다.

곧 이어 주님은 예언자 호세아를 통해 심판을 선언합니다.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하니, 이제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분께서 그 제단들을 부수시고, 그 기념 기둥들을 허물어 버리시리라.”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성전을 허물어 버려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 말씀하신

주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예수님은 결코 성전종교를 만드신 분이 아닙니다.

크고 화려한 성전은 예수님의 관심 밖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너희가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그러나 진실한 예배자들이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이를 찾으신다.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분명 보이는 장소로서의 성전이 상대화 되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느님을 떠난, 배반한 나라나 지도자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 지

호세아를 통해 잘 보여주십니다.

 

“사마리아는 망하리라.

  그 임금은 물 위에 뜬 나뭇가지 같으리라.

  이스라엘의 죄악인 아웬의 산당들은 무너지고,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그 제단들 위까지 올라가리라.”

 

하느님을 떠나 우상들을 섬길 때

폐허화되는 나라나 종교 지도자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느님을 떠나 우상들을 섬길 때 허영이요 교만이지만

하느님을 섬길 때 진실과 겸손입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지금이 구원의 때요 주님을 찾을 때입니다.

본질적 삶을, 하느님만을 추구해야 할 때입니다.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그분이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

 

나태와 권태, 안일로 묵혀 둔 내 현실을, 내 마음 밭을 갈아엎고 

정의를, 사랑을 뿌리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그분은 정의를 비처럼 내려 신의를 거두어들이게 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삶은 얼마나 간단명료한지요.

정말 부자는 좋은 건물도, 돈도 아닌 좋은 사람들을 지닌 이들입니다.

참 좋은 유산은, 선물은 재물도 땅도 아닌 주님의 권능이요 영성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분신이자 보물 같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권능과 영성을 아낌없이 선사하십니다.

위선과 거짓, 허영과 교만이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주게 하셨다.”

 

예수님의 유일한 관심사는

하늘나라와 병마에 시달리는 이들에 대한 구원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선교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선택과 집중의 원리입니다.

다른 민족들이나 사마리아인들에 앞서

우선 가까운 내 삶의 자리, 지금 여기에 집중하여

하늘나라를 선포하고 살라하십니다.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하고 선포하여라.”

 

오늘도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안에 내재한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시고

영육의 병과 약함을 치유해 주십니다.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갈아엎고

정의와 사랑을 뿌려주시어 진실과 신의, 겸손을 거두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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