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보좌신부 때의 이야기입니다. 선배 신부님이 안부를 물었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 저는 별생각 없이 대답했습니다. “신부 생활이 생각보다 힘드네요.” 그런데 그 신부님이 정색을 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임기는 채워야 해.”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까짓 임기 채우는 것이 뭐 그리 힘들까 ?”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신부님의 말씀이 정말로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신부의 임기 중 전반부는 대체로 무난합니다. 신부나 신자가 서로 탐색전을 벌이는 기간이므로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후반부가 되면 그동안 벌려놓은 일도 있고, 관계가 깊이 형성되면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빨리 이 본당을 떠나 새로운 본당에서 새롭게 출발하고 싶은 유혹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첫 보좌 때의 선배 신부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이것을 유혹이라고 단정 짓고 죽이 됐건 밥이 됐건 임기만은 꼭 채우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극적이고 도피적이던 마음이 적극적으로 변하는 것을 체험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한 집에 머물러라 !” 신부만이 아니라 신자들도 같은 유혹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의욕을 가지고 어떤 단체 책임을 맡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유혹입니다. 무조건 임기는 채워야 합니다. 결혼은 임기가 없기에 더 어렵기는 하지만 ….
강신모 신부(의정부교구 화전마을 천주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