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그리운 용어들
작성자지요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11 조회수437 추천수19 반대(0) 신고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22)
   
 


                                                   그리운 용어들
 
 
 

얼마 전 태안군청 종합민원실에서 서울에서 오신 교우 한 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내 손에 들려져 있는 묵주 덕분에 쉽게 그 분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는데, 그 분의 세례명이 노렌조(라우렌시오)라는 말에 내 입에서 대뜸 “아, 구교우시군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구교우? 그 말을 해놓고 보니 갑자기 정다운 느낌이 피어올랐습니다.

이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많은 교회 용어들 중에 ‘파공(罷工)’이라는 말과 ‘찰고(擦考)’라는 말이 있습니다. 파공이라는 말은 ‘주일과 의무축일에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파공이라는 말에 ‘첨례(瞻禮)’라는 말이 붙어서 ‘파공첨례’라는 말이 많이 쓰였지요. 요즘에 파공이라는 말이 거의 쓰이지 않는 것은 그것의 현실성이 희박해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또 찰고라는 말이 거의 쓰이지 않는 것도 교리 공부는 있어도 교리 시험은 없는(있더라도 철저하지 않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사 1시간 전부터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을 ‘공복재(空腹齋)’라고 하는데, 옛날에는 ‘공심재(空心齋)’라고 했고, 미사 3시간 전부터 음식을 먹지 않으면서 그야말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비워야 했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공심재라는 말은 물론이고 공복재라는 말도 잘 쓰이지 않는데, 그것 역시 신앙생활의 편리주의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요즘에는 잘 쓰이지 않거나 거의 사라져 가는 교회 용어들을 그리워하고, 또 그 용어들의 뜻과 그 말들이 쓰이지 않는 배경들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면 문득 옛날 세례명들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요왕, 도마, 다두, 말구, 스더왕, 노렌조, 아오스딩, 안당, 분도, 분다, 도민고, 방지거, 알풍소, 말따, 가별 등등…. 그 옛날식 세례명을 가진 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조만간 그 옛날식 세례명들은 우리 교회공동체 안에서 모두 사라지게 되겠지요. 그것을 생각하면 묘한 아쉬움 속에서 그 옛날식 세례명을 가진 이들을 좀 더 애정의 눈으로 보게 됩니다.

그런데 나는 왜 우리 한국 교회의 옛날 용어들을 그리워하는 것일까요? 어쩌면 그 용어들이 내포하고 있는, 옛날 신자들이 생활화했던 철두철미함을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어쩌면 오늘의 내 신앙생활을 늘 점검하고자 하는 뜻일 수도 있겠고….

역시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말인 ‘궐(闕)하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내 신앙생활 중에 스스로 궐하는(깜빡 빠뜨리거나 부러 빼먹는) 것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피며….

                                                                                    지요하 (소설가․태안성당)  


*2010년 7월 11일/연중 제15주일 <대전주보> 제2038호 | 5면 

[출처] 그리운 용어들|작성자 나무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