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무연자비(無緣慈悲)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12 조회수566 추천수3 반대(0) 신고
그때에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 10:25-37)
 
착한 사마리아인에 대한 가장 오래된 해석이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Origen of Alexandria, 185-254) 교부의 해석이다.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고 있던 사람은 아담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낙원이고 예리코는 이 세상입니다. 강도들은 적대적인 세력을 말합니다.
사제는 율법입니다. 레위인들은 예언자들을 말합니다. 사마리아 인은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상처는 불복종을 말합니다. 그리고 노새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여관은 들어가려는 사람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교회를 말합니다. 두 데나리온은 하느님 아버지와 외 아들을 뜻합니다. 여관주인은 돌보는 것이 의무인 사제들을 뜻합니다. 사마리아인이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것은 구세주께서 재림하시는 것을 뜻합니다.”
오리겐은 성경의 우의적 해석(allegorical method)의 아버지로 불리는데 이 해석은 그 단적인 예이다. 때로는 억지 해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성경은 그 페이지에 죽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살아있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한다.
훨씬 더 이전의 사람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 of Alexandria, 150-215)도 사마리아인을 예수라고 생각했다.
이 이웃은 구세주가 아니고 누구겠습니까?
이 세상의 악의 세력 때문에 많은 상처를 입고, 두려워하고 수난을 받고, 화를 내고, 슬퍼하고 속임을 당하고 기만적인 쾌락에 빠져, 거의 죽어 누워있는 우리들에게 구세주가 아니면 누가 측은지심을 가졌겠습니까?
예수님만이 이런 상처를 치유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에서 ‘사랑’을 첫 째 계명으로 삼고 있듯이 불교에서도 ‘무연자비(無緣慈悲)’를 가장 강조하고 있다. 이는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실 때 군중들이 “어머니께서 와 계신다.”는 말씀을 드리자 예수님께서 물으셨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냐?”
혈연이나 가까운 사람만 사랑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너무나 이기적인 세상에 살면서 가족 외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이웃이 있겠는가? 예수님 시대에도 꼭 같았던 것 같다.
이렇게 살았기 때문에 가족이 원수가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가장 상처를 많이 주기 때문이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원수가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니까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기적으로 산 결과이다.
 
글래머(Glamour) 지에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브릿지(Bay Bridge) 요금소에서 뒤에 따라오는 여섯 대의 자동차 통행료를 지불하면서 “다음 여섯 대의 통행료를 함께 내겠다.”고 말한 한 숙녀의 이야기가 실렸다. 뒤에 따라온 사람이 통행료를 지불하려고 하자 요금 징수원이
“빨간 차를 탄 숙녀가 당신의 통행료를 이미 지불했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하고 말했다. 빨간 자동차를 탄 숙녀는 미국의 여류 작가 앤 허버트(Anne Herbert)의 글에 감명을 받았던 것이었다.
무연자비를 베풀고 무의식적으로 선한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앤 허버트는 ‘폭력이 난무하듯’ ‘무연자비’는 사회에 거대한 파도를 일으키게 된다고 믿었다.
 
글래머지는
모든 혁명과 마찬가지로 한 선한 행동은 서서히 사회 전체에 파급됩니다.”하고 말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