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골룸바의 일기
작성자조경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14 조회수366 추천수4 반대(0) 신고

지난 열흘 내리 저희집은 정원손질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숲속에 둘러 쌓여 있던 집이 매력적이라 생각되 좋다고 이사를 왔는데,
이게 살다보니 매력도 매력이지만,
한해가 다르게 자라나는 나무들로 골치가 지끈댔습니다.
가지를 쳐주고 조금씩 손질해 주는것도 한계가 있었던 것이지요.
사람키보다 몇배나 높은 울창한 나무들을,
저희 부부가 아무리 손질하려 노력해도 한계가 있었던것 입니다.

겨울이 찾아 오고, 집안으로 따사로운 햇살이 들어와야 하는데,
집 주변 무성한 나무들에 가려서,
마치 추운 날씨에 나무그늘 아래 생활하는것만 같았습니다.
'내 저것들을 올겨울에는 꼭 정리를 하리라!'
야무지게 마음을 먹고, 가장 높은 사다리를 장만했습니다.
남편 요셉을 앞세워 위험천만한 나무치기에 돌입을 하였던것 이지요.

그런데 일을 하는내내 사무엘이 화근이었습니다.
'위험하다. 저리가라. 비켜라. 가서 자전거 타고 놀고 있어라...'
아무리 타이르고, 달래봐도 막무가내 였습니다.
뭐 재미난 일이라도 생긴냥,
요리조리 잘도 쑤시고 다니는 통에,
가뜩이나 일이 많아 힘들어 말할 기운도 없던 저희 부부는,
급기야, '너 이러다 정말 혼난다!' 소리만 연발을 할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것은,
그렇게 괴롭히고 정신없게 하는 사무엘을,
집안에 들여놓지 않았다는것 입니다.
으름장을 놓아서 라도 집안에 머물게 할수도 있었고,
일하는 동안 어디 보내놓을수도 있었음에도,
입으로는, '너 때문에 힘들어~ 힘들어~' 하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였다는것 입니다.

저희들에게는 분명 힘들고 어려운 일거리 였지만,
아이에게는 오랜만에 생긴 신나는 놀이거리 였다는 것을,
이미 저희는 알고 있었던것 입니다.
신경이 예민해져 아이를 다그치던 중에도,
위험한것만 피해 아이에게 함께할수 있도록 계속 일거리를 주고 있었던것 입니다.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 아빠의 마음이었던것 이지요.

결과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사실 사무엘이 저희에게 도움이 된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세살 아이가 일을 아무리 잘해도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나요.
민폐가 따로 없지요.
그렇지만 지금 엄마, 아빠와 함께 하고 싶은 그 마음을 알기에,
곁에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주고, 그 시간을 함께 하였던것 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의 말씀 (10,5-7,13-16) 에서,
하느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은 아시리아 임금은,
당초 하느님께서 정하신 도구로서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교만의 어둠이 그를 덮어 버린것 입니다.
마치 자기가 이모든 일을 이루어낸것 처럼 착각을 하며,
기세가 등등하여 도를 넘는 생각과 행동으로 하느님께 맞서게 됩니다.
그러자 이사야를 통해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
 톱이 톱질하는 사람에게 으스댈 수 있느냐?
 마치 몽둥이가 저를 들어 올리는 사람을 휘두르고,
 막대가 나무도 아닌 사람을 들어 올리려는 것과 같지 않으냐?"

우리가 도끼라면, 도끼질 하는 사람은 하느님 이십니다.
우리가 톱이라면, 톱질을 하는 사람도 하느님 이십니다.
하느님께 모든 계획과 뜻이 있으시고,
우리에게는 그 쓰임을 받는 역할이 있을뿐 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를 '세속적' 으로 풀이한것 입니다.

여기에서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를 '영적' 으로 풀이해 보겠습니다.
도끼와 도끼질 하는 사람 사이에 '사랑' 이라는 것이 더해집니다.
톱과 톱질 하는 사람 사이에 '사랑' 이라는 것이 더해집니다.
이것이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 를 풀이하는 완전한 해답입니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사무엘을,
처음 부터 끝까지 데리고 함께 일 할수 있었던 것은,
사무엘과 저희 사이에 '사랑' 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제 스스로 뭔가 대단히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이번엔 내가 뭘 도와 줄까? 이걸 옮겨 줄까? 저걸 가져다 줄까?"
라며 내내 의기양양 했지만,
일을 진행하는데 있어 상당히 큰 불편함을 가져다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식구 내내 웃으며 일할수 있었던 것은,
저희들 사이에 서로가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사랑' 이 있었기에,
아이를 집안에 넣어 두지도, 밖으로 내돌리지도 않고,
저희안에 함께 머무를수 있게 하였던것 입니다.

사실 성당안에서 많은 일을 도맡하 하시는 분들중에,
스스로 하느님께 대단히 큰 도움을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신줄 압니다.
봉사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매주 미사에 나가고 기도를 하는일 조차도,
하느님께 뭔가를 해드리고 있다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것 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천지를 지어내시고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
필요하신 것이 무엇이며, 받으실 도움은 또한 무엇이겠습니까.
그것도 그분의 피조물인 우리 사람들에게 말입니다.

그분 하시는 일에 보탬은 고사하고, 브레이크 안걸면 다행인것이 맞을것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 품안으로 끌어 당기시며,
우리 각자에게 알맞은 일거리들을 맡겨 주시고,
우리에게 할일을 부여하고 계심은,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사랑' 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다소 그분 하시는 일에 걸리적 거리고, 불편함을 드리더라도,
그분 곁에서 알짱알짱 즐겁게 일하는 우리들을 보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느님께서 오로지 당신의 '뜻과 계획' 에만 집중을 하신채,
우리들에 대한 사랑을 둘째로 밀쳐내신다면,
어쩌면 하느님께서 우리 사람들을 당신의 일을 마치실때까지,
어디 어둠속에 몰아 넣어버리실 지도 모를일 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러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뜻과 계획이 다소 늦어지고, 차질이 생기더라도,
우리와 함께 발을 맞춰 천천히 그 일을 진행하고,
마침내 이루어 내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 이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마태오 11,25-27)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에게 이것을 감추시고...' 가, 아니라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 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롭다는' 말씀은 주님 보시기에 그런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여기고 말하는 '자칭' 인샘 입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스스로' 하느님께 큰 도움과 뭔가를 해드리며,
살아가고 있다 생각하고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고 계시는 것은,
분명 우리가 드리는 '도움의 손길' 은 아닐것 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이든간에 무조건적인 '믿음' '신뢰' 를 바탕으로,
하느님께서 시키시는 작은 '심부름' 을,
기쁜마음으로 해드리는 아주 작은 일이 아닐까요.

언제나 너무 '큰 그림' 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입니다.
특히 세상적인 일에는 너도나도 앞을 다투며 '큰 그림' 을 그리며 살아갑니다.
'10년후에는, 이렇게 살게 될거야!'
'아이들이 자라고 나면 큰인물이 되겠지!'
'조금만 안정이 되면 나도 떵떵 거리며 살아야지!' ...

저또한 그런 큰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중 하나 입니다.
언젠가 여느때 처럼 큰 그림을 그리며 세상적인 꿈을 꾸고 있을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딸아,
 네가 그릴수 있는 큰 그림은 오직 '하나' 뿐이다.
 '아버지의 나라' 라는 가장 큰 그림,
 그것 하나로 족하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