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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비는 분별의 잣대" - 7.16,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16 조회수424 추천수18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7.16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이사38,1-6.21-22.7-8 마태12,1-8

 

 

 

 

 

 

"자비는 분별의 잣대"

 

 

 

새벽 성무일도 시 초대 송 후렴입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의 자비는 영원하시다.”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자비하신 하느님, 이게 바로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하여 하느님의 자비에 정통하신 주님은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말씀하십니다.

비단 사람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 까지 미치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이 자비가, 사람이, 생명이 잣대가 되어야 하는데

돈이 잣대가 되어버린 참 살벌한 세상입니다.

돈만 된다하면 하느님이, 사람이, 생명이 다치든 말든 상관치 않습니다.

무엇이 죄인가 식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아주 간단하고 쉽습니다.

 

자비를 거스르는 것, 바로 이게 죄입니다.

바로 이런 자비가 분별의 잣대입니다.

머리의 이성이 아닌 가슴의 자비에서 나오는 분별의 지혜입니다.

자비와 함께 가는 지혜입니다.

하여 자비로운 사람은 대부분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집안이 어려우면 현모양처가 생각나고

나라가 어려우면 어진 재상이 생각난다 합니다.

어진 재상의 역할은

그대로 어진 예언자, 어진 목자, 어진 장상의 역할 같습니다.

재상의 뜻풀이가 의미심장합니다.

 

‘재상은 백성에겐 어버이와 같고 임금에게는 아내와 같다.

  원래 ’재(宰)‘는 고기를 나눠주는 사람,

 ‘상(相)‘은 ’눈과 같은 나무‘로

  길을 안내하는 지팡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재상은 백성을 잘 먹이고, 임금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하여 지팡이인 재상에게 판단력은 필수이다.’

 

이런 어진 재상 같은 목자가, 지도자가 참 목마른 시대입니다.

분도 성인 역시 분별력을 모든 덕의 어머니로 꼽습니다.

송나라의 명재상, 사마광의 어렸을 때 일화입니다.

‘물이 가득 찬 항아리 위에서 놀던 아이가

  물 항아리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어른들은 행여나 항아리가 깨질까봐 허둥대기만 했다.

  그때 어린 사마광이 주저없이 돌을 던져 항아리를 깨고 아이를 구했다.

  무엇이 중한지 바르고 빠른 판단은 가히 훗날의 명재상 감이었다.’

 

바로 이게 자비심에서 나온 분별의 지혜입니다.

어린 사마광은 아까운 항아리를 본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아이를 본 것이며 지체 없이 항아리를 깨어 아이를 살렸습니다.

새삼 자비는 분별의 잣대요,

자비심에서 나오는 지혜로운 분별임을 깨닫습니다.

복음의 예수님에게도 이점이 분명히 들어납니다.

착한 목자 예수님은 율법의 객관적, 획일적 잣대가 아닌

하느님 자비의 잣대로 모두를 처리하십니다.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는 당신 제자들에게

율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바리사이들에게

주님은 지체 없이 자비의 잣대를 들이댑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죄인은 제자들이 아닌 자비를 거스른 바리사이들임이 들어납니다.

안식일 법을 상대화 시키며

예수님 자신이 바로 유일한 분별의 잣대이심을 천명하십니다.

바로 예수성심의 자비심이 유일한 분별의 잣대라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자비로운 마음일 때 지혜로운 분별로

본인은 물론 이웃의 짐을 가볍게 합니다.

주님은 613개 조항의 율법의 무거운 짐을

사랑의 이중계명으로 압축하여

민초(民草)들의 짐을 가볍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획일적 하나의 잣대가 아닌

사람마다 다 다른 자비의 잣대를 적용하십니다.

사람마다 그 필요와 형편이 다 다르기에

그 사람에 맞는 자비의 잣대를 적용하십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도 율법의 획일적 잣대가 아닌

제자들의 배고픈 구체적 현실을 직시하여

자비의 잣대로 그 무죄함을 변호하십니다.

 

자비하신 주님이십니다.

병이 들어 죽게 된 히즈키야 임금의 기도가 참 간절하고 진실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하느님께 아뢰며 자신의 전부를 맡깁니다.

‘임의 자비하심 너그러우시니, 주여 내 기도를 들어주소서.

  그 사랑 지극하시니 나를 굽어 살피소서.’

아침 성무일도의 시편 구절이 생각납니다.

 

“아, 주님 제가 당신 앞에서 성실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걸어왔고,

  당신 보시기에 좋은 일을 해 온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히즈키야는 슬피 통곡했다 합니다.

히즈키야의 삶과 기도에 감동하신

자비하신 하느님의 응답으로 수명이 연장되는 히즈키야 임금입니다.

새삼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이라,

사람의 생명은 하느님께 달렸음을 깨닫습니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자,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

 

여기서 하느님과 히즈키야 임금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 예언자 이사야,

정말 백성들에게는 어버이 같고 임금에게는 아내와 같은 명재상 같습니다.

오늘도 자비하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어

자비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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