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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6주일/농민주일/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17 조회수414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제16주일] [농민 주일] 루카 10,38-42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신다. 제자들도 함께 갔으니 식구가 많았다. 언니 마르타는 음식 준비와 제자들의 심부름으로 분주한 반면에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에게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며,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고 말씀하신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오늘 예수님께 자신의 처지를 비통하게 여기고 동생 마리아를 일러바친 것일까? 마르타를 통해서 위선을 본다. 그 위에 방탕한 동생을 둔 큰 아들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마르타는 좋은 마음으로 준비해 놓고도 제 스스로 자기 몫을 나쁜 것으로 만들었다. 아무도 마르타가 하는 일이 나쁜 몫이라고 하지 않았는데 제 스스로 자기 일을 구차하게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속에 불만을 키우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였다. 큰 아들도 부모님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도 동생이 자기 몫으로 돌아올 유산을 달라고 한 것은 천하에 둘도 없는 몹쓸 짓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리고 자기는 동생처럼 그렇게 못된 놈이 아니라는 사실에 크게 안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이 나가서 제 멋대로 인생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지지 시작했다. 제 스스로 부모 모시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선택해 놓고도 아버지가 자기를 종처럼 부려먹는다고 비꼬인 생각을 키워나갔다. 두 사람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착해야 되고, 나는 열심 해야 되고, 나는 존경받아야 되고, 나는 훌륭해야 되고, 나는 능력 있어야 되고, 나는 멋진 사람이라야 되고, 이건 자신감 있는 사람이 가지는 태도가 아니라,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진 사람이 가지는 태도다. 자신감 있는 사람, 즉, 자기를 잘 아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를 과장하지도 않고 비하시키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이고 보태거나 빼지 않는다. 마르타는 동생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는 바람에 자기 스스로 자기 몫을 나쁘게 만들었다.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한 만큼 마르타 자신도 좋은 몫을 택했다. 우리도 예수님이 마리아만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마르타를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께서 세상 모든 사람을 똑 같이 만들지 않으시고 남녀, 유색인종, 천재와 둔재로 만드신 것은 뜻이 있어 하신 것일 게다. 서로 비교하며 헐뜯고 만신창이가 되도록 싸우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마르타 처럼, 제 스스로 남과 비교하며 마치 자기만이 가장 좋은 몫을 택한 것처럼, 최고인 척, 착한 척, 거룩한 척, 기타 등등. 위선 부리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자. ........... ☆ ..... ☆ ..... ☆ ............ 묵상 길잡이 : 공의회 이전의 교회는 오로지 기도생활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요즘엔 반대로 오로지 활동이 전부인 양 생각하는 것 같다. 기도 없는 활동 그것은 자기과시로 흐르기 마련이다. 활동과 기도의 조화 그것이 신앙생활의 이상이다. 1. 귀나 좀 빌립시다. 신자 가정을 방문하여 함께 기도를 하고 나서는, 대강의 집안 이야기를 듣는다. “큰아들은 지금 군에 가있고 둘째 아들은 객지에서 대학 다니고, 막내는 재수하고 있습니다.” 말씨가 이곳 사람 같지는 않은데 고향은 어디며, 집안은 언제부터 교회에 다니게 되었는지 등등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주인아주머니는 차(茶)나 음식준비에 온통 정신 이 팔려 물어보는 말에는 건성으로 대답을 하거나 번번이 질문의 핵심을 놓치고 엉뚱한 이야기를 해서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제발 귀나 좀 빌려주었으면 하는 때가 많은 것이다. 오늘 예수님을 손님으로 모신 마르타와 마리아 자매는 대조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데 전념하였다. 혼자 음식준비에 정신없이 동동거리던 언니 마르타는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 동생 마리아를 꾸짖어달라고 예수님께 청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마리아가 “필요한 좋은 몫을 택했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반갑고, 그분을 위하는 마음이야 마르타나 마리아나 마찬가지겠지만, 예수님을 더욱 기쁘게 한 사람은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마리아였던 것이다.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2. ‘바쁘다, 바빠 병’을 치료해야 한다. 우리에게 일반적으로 널리 만연된 큰 병이 있다면, 그것은 ‘바쁘게 사는 것’이 바로 ‘알차게 사는 것’이라는 착각이다. 그리고 “요즘 바빠서 죽을 지경이다.”라는 푸념을 자랑처럼 늘어놓는 사람들도 많다. 바쁘게 정신없이 사는 사람치고 자신이 어디를 향해, 어디쯤 가고 있는지를 알며 음미(吟味)된 삶을 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않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라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듣는다. 그러나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또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바쁘게 하다 보면 뭐가 되어도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일을 하게 되니 늘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것이다. 바쁘게 해치우는 일은 언제나 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고 불량품이 많게 마련이다. 국제 기능 올림픽에서 늘 제패하면서도 불량품을 많이 내는 기업 풍토는 바로 바쁘게 대충 해치우는 행동관습 때문이 아닐까? 우리나라는 경부고속도로를 닦으면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빠른 시일 안에 완공을 했다. 그러나 그 고속도로를 보수하는 데 처음 시공비의 몇 배가 더 들어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3. 말씀을 듣지 않고, 말씀을 사는 길은 없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이야기를 단순히 기도와 활동의 양자택일로 대비시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그 말씀을 알아듣고자 침묵중에 묵상하는 시간 없이는 그 말씀을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본당 사목을 하다 보면 가끔 신자들이 와서“신부님, 다시는 그 사람과 함께 일하지 않을 겁니다. 무조건 명령만 하고, 얼마나 기분 나쁘게 무시 하는지 모릅니다.”하고 말하며 함께 일한 간부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 함께 본당활동을 하면서 그저 세속적인 정신으로 자기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며 일방적으로 명령만 하는 신심단체 간부들은 일을 하는 과정 에서 많은 신자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게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일이 없이 지내는 ‘잘난 사람들’일 때가 많다. 조용히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성령의 은총이 스며든다. 성령의 은총은 그 마음을 부서지고 낮춰진 마음이 되게 해주신다. 은총으로 부서지고 낮춰진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을 과시하거나 명령하는 자세를 취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주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이 많지 못하다는 데 있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말씀을 그 마음에 모시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기보다는, 세속적으로 스스로‘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봉사를 한답시고 설치고 다니는 데 문제가 있다. 이들은 세속적인 정신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군림하는 자세로 활동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를 건설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체를 망가뜨리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예수님께서 왜 마리아가 좋은 몫을 택했다고 말씀하시는지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옥석(玉石)을 가려내는 기준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 강론/ -마산교구 유 영봉 몬시뇰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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