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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17 조회수857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7월 17일 연중 제15주간 토요일
 
 
  Behold, my servant whom I have chosen,
my beloved in whom I delight;

I shall place my Spirit upon him,
and he will proclaim justice to the Gentiles.
He will not contend or cry out,
nor will anyone hear his voice in the streets.
A bruised reed he will not break,
a smoldering wick he will not quench,
until he brings justice to victory.
And in his name the Gentiles will hope.
(Mt.12.18-21)
 
제1독서 미카 2,1-5
복음 마태오 12,14-21
 
짧지만 재미있는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제목이 ‘부자 아빠가 되는 법’인데요. 어떻습니까? 관심이 확 가지 않습니까? 그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첫째, 상속을 받아라.

둘째, 부자와 결혼해라.

셋째, 자식 이름을 ‘부자’로 지어라.

아주 간단한 방법들이지요? 그러나 이 방법으로 과연 진정한 부자가 될 수 있을까요? 만약 이렇게 된다면야 쉽게 부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진정한 부자라기보다는 부자인 척만 하다 끝나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늘 간단하고 편한 방법만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하는 척’만 하다 끝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이렇게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해 당신 뜻에 맞게 열심히 살아가기를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문제는 이러한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속 좁은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쉽게만 해결되길 바라는 자신의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면 주님께 불평을 던지고 원망을 하는 우리들이지요. 자기 뜻이 아니라 남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차별하시는 주님이라면서 거부하는 우리들이기도 합니다.

이 모습이 과거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을 거부했던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생각과 뜻에 반대되는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즉, 그들은 쉽고 편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올바른 척’만 했던 것이고, 주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오늘 복음에 나오듯이 어떻게 없앨까 모의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4살짜리 꼬마가 볼 일을 보고 난 뒤 엄마를 부르며 말했습니다.

“엄마 똥~~~”

그러자 엄마는 이제 습관을 고쳐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안 돼! 이제부터 혼자서 닦아야 돼!”라고 하셨지요. 이에 꼬마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럼……. 이제부터 똥은 셀프야?”

스스로 해야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스스로 할 것도 주님께 미루면서 불평불만만을 간직하고 살아갔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쉽고 편한 방법만을 찾지 맙시다. 그보다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을 찾아 나서고, 그 방법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들의 희망이며 참 기쁨이 되시는 주님을 진정으로 내 마음에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어 보이는 혼돈도 누군가 잘 들어 주면 맑은 시냇물 흐르듯 풀린다(마셜 로젠버그).





 

칭찬합시다(강봉중, ‘해피데이스’ 중에서)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한 친구는 진돗개 한 마리를 기른다. 그런데 그 개가 어찌나 영리한지, 수돗가에서 쌀을 씻다가 흩어진 쌀을 주워 먹는 새를 잡아서 물고 왔는데 죽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가끔 쥐를 잡어서는 마당에 놓고 친구가 출근할 때, “오! 착하구나. 쥐를 잡았구나. 퇴근할 때 맛있는 것 사다 줄게.”하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꼬리를 치고 좋아하며 그때서야 그것을 치운다고 한다.

한번은 쥐를 잡아서 마당에 놓고 있는 것을 너무 바빠서 칭찬을 하지 못하고 그냥 나온 적이 있었는데 다음 날 또 한 마리의 쥐를 잡아서 마루 앞 댓돌 위에 놓고 기다리고 있더란다. 그제야 어제 칭찬 못한 것을 깨닫고 ‘아이고, 우리 누렁이 또 쥐 잡았구나. 착하다. 어제는 깜빡하는 바람에 칭찬을 못해서 미안하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더니 꼬리를 수없이 흔들었다고 한다.

집에서 기르는 개도 이렇게 칭찬에 민감한데 사람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한 화가가 해바라기 그림을 봐달라는 어린이에게 “참, 잘 그렸구나. 다음에 훌륭한 화가가 되겠다.”는 말을 했더니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또 한 아이가 집 자랑을 하라는 글짓기 시간에 하도 자랑할 것이 없어서 유리창 너머 들어오는 햇살을 자랑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너무도 좋은 칭찬을 해주어서 그 아이는 그때부터 용기를 얻고 긍정적 자세를 갖게 되어 커서 유명한 사업가가 되었다는 외국의 이야기도 있다.

이처럼 작은 칭찬 한 마디 한 마디는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 만큼 큰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높다. 하지만 그 어떤 뒷받침보다도 부모님이나 주위 어른들이 자녀들의 구체적인 장점을 찾아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아이에게 가장 큰 교육이 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Belo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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