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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필요한 것은 기도 뿐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17 조회수782 추천수1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16 주일 - 필요한 것은 기도 뿐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 중 가장 크고 감사한 것 한 가지를 들라고 하면, 바로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의 비유’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기만 한다면 저절로 많은 열매를 맺게 된다는 단순한 진리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만 붙어있기만 한다면 저절로 많은 열매가 맺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기도’인 것입니다.

 

한국 전쟁 때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단행하여 커다란 효과를 보았습니다. 북한군이 부산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하였을 때 연합군은 밑에서부터 다시 밀고 올라오는 방법이 아니라 허리를 자르는 전술을 폈습니다. 허리를 자른다는 뜻은 적군의 보급로를 차단한다는 뜻인데 전쟁에서 보급을 받지 못하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먹을 것도 없고 총알도 없는데 무엇으로 전쟁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곧 투항하거나 산으로 숨어들어갔고 그래서 쉽게 다시 남한지역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시편 127장에 이런 표현이 나옵니다.

“행복하여라, 제 화살 통을 그들(화살)로 가득 채운 사람! 성문에서 원수들과 말할 때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라.”(5절)

화살 통에 화살이 가득 있다면 누구와 맞서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화살 통이 비어있다면 적들 앞에서 두려움에 떨어야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적들은 마귀, 육신, 세상입니다. 이 적들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쓸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적들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일입니다. 보급로란 우리의 관심입니다. 우리가 세상 것에 관심을 가지면 그것들은 우리를 유혹하여 죄에 빠뜨릴 것이고, 우리가 천상 것에 관심을 기울이면 그것들의 보급로가 끊어집니다. 즉, 우리들이 기도하는 시간은 곧 그들의 보급로가 끊어지는 시간인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느님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고 화살 통을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지 않게 되면 보급이 차단되어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적들에게 패하게 되고 맙니다.

고해성사를 주면 이런 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냉담을 오래 한 사람들은 그 오랜 세월동안 무슨 죄를 지었는지 잘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그저, “7년 동안 냉담하였습니다. 이상입니다.” 이렇게 고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들에게 질문을 하여 죄를 고백하게 도와줍니다. “냉담 하는 동안 더 많이 교만(마귀)하여지고, 육체적인 욕망에 치우치게 되고, 돈과 세상 것들에 집착하게 되었죠? 그래서 사랑이 사라지고 미워하는 사람도 생겼었죠?” 라는 식으로 물어보면 어떻게 알았냐는 듯이 수긍을 합니다. 하느님과의 보급로가 차단되었으니 그들과의 싸움에 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칭찬하시고 필요한 것은 당신과 머무는 것, 그것 하나뿐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해야 할 것은 그분과 진정으로 머물러야만 기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웰즈(H. G. Wells)라는 작가는 ‘대주교의 죽음’이라는 단편을 썼습니다. 한 대주교는 매일 하는 것과 같이 그 날도 성당에 들어가 일상적인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 아버지!...” 라고 예전과 다름없이 기도를 시작했는데 이번엔 정말 하늘에서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냐, 무슨 일이냐?” 그 대주교는 뜻 밖에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온 것을 듣고 그만 심장마비가 걸려 죽고 맙니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기도하느냐보다는 ‘그분의 존재를 정말 느끼고 있는가?’입니다. 그분의 존재를 느낀다면 그 때부터 모든 것이 기도가 됩니다.

한 노인이 있었는데 그는 매일 저녁이 되면 기도하러 성당에 왔다가 기도는 하지 않고 바로 나가곤 하였습니다. 단 10초도 성당에서 기도하지 않는 노인을 보고 본당신부는 믿음이 약한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노인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알고 보니 병원에 입원하여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병자성사를 주기 위해서 병원으로 갔는데 의사는 희망이 없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본당신부가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본 것은 천사와 같이 행복해하는 노인의 얼굴이었습니다. 본당신부가 노인에게 그렇게 기쁜 이유를 묻자, “저는 매일 성당에서 ‘예수님!’ 한 번만 부르고 나왔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기도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가지 못하니까 이제는 예수님께서 하루에 한 번 씩 저를 찾아와 제 이름을 불러주고 가십니다.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많은 기도를 했지만 입으로만 했던 대주교와 짧은 기도이지만 현존을 믿으며 한 기도와는 이렇게 큰 차이를 보이는 것입니다.

 

단군신화를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곰은 곰처럼 버텨서 사람이 되었고 호랑이는 인내가 부족하여 동물로 남았습니다. 기도는 이와 같이 버티는 것입니다. 그 분 안에서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오래 버티면 완전히 존재가 변하고 버티지 못하면 동물의 본성 그대로 남게 됩니다. 하느님은 마치 환인처럼 동물을 사람으로 변화시켜 당신의 아들과 혼인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쑥과 마늘을 먹었던 것처럼 말씀과 성체를 영하면서 말입니다.

야곱이 정강이뼈까지 부러져가면서 하느님과 밤새 씨름을 하여 축복을 얻어 낼 수 있었던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밤새 그분과 함께 ‘버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십자가 밑에서 그 시간동안 꾸준히 있을 줄 아는 사람은 이미 높은 경지에 이른 신앙인”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군대에서 번개 맞은 사람 이야기인데, 행군을 하다가 총에 번개를 맞아서 앞뒤로 세 명이 동시에 기절했는데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몸에 전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민한 기계들, 컴퓨터, 핸드폰 등을 들고 다니면 쉽게 망가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종이를 잘라서 바닥에 놓고 손을 폈는데 다 딸려 올라오더란 것입니다. 번개 맞고 그 사람의 몸이 변한 것입니다. 기도는 이렇게 사람의 본성을 바꾸어놓습니다.

자석에 쇠붙이를 붙여놓았던 적이 있는데 시간이 지난 뒤에 그 쇠붙이를 떼어보니 그것도 자석이 되어버린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원리야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떤 에너지가 있는 것과 함께 붙어있으면 그 붙어있는 것의 성질도 그렇게 변하여 간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렇게 당신에게 붙어있는 사람을 당신과 같은 본성으로 바꾸어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밭에서 두 사람이 밭을 갈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내버려 둘 것이라고 하고 둘이 맷돌을 갈고 있다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내버려 둘 것이라 합니다(마태 24,40-41). 이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심판하실 때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에 따라서 심판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정말 필요한 것은 마르타처럼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처럼 그리스도께 붙어서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키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유일하게 한 가지 필요하다고 하시는 것은 당신과 붙어있어서 당신과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되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포도나무에 붙어있으면 포도열매를 맺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말라 죽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좋을 열매를 맺기 위해서 많은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포도나무에 붙어있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께 붙어있기 위해서는 우선 예수님께서 어떤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머무시는지 알아야합니다. 계약의 궤가 성모님을 의미한다는 것은 다 아실 것입니다. 그 계약의 궤 안에 무엇이 들어있었습니까? 맞습니다. 계명판과 만나가 들어있었던 항아리와 아론의 지팡이였습니다(히브 9,4). 이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 가지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계심을 상징합니다. 계명 판은 하느님의 말씀이 새겨진 것이고 바로 성경을 상징합니다.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양식으로 성체를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론의 지팡이는 사제직의 증거로서 교회를 상징합니다. 말씀을 열심히 읽고 묵상하면 그리스도와 머무는 것이요, 성체를 영하고 조배하는 것도 예수님과 머무는 것이며, 교회 안에 머물기만 하여도 예수님과 머무는 것입니다. 교회가 곧 그리스도이십니다. 토마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했던 것도 교회를 떠나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교회 안에 머물 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사는 이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를 거행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미사를 하는 것보다 좋은 기도는 없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와 만나는 것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르타, 마르타, 너는 많은 일에 다 마음을 쓰며 걱정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참 좋은 몫을 택했다. 그것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 나는 포도나무요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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