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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18일 야곱의 우물 -루카10,38-42/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18 조회수341 추천수4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38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시작 기도
하느님, 아빠, 아버지. 두려움과 근심에 빠졌을 때, 당신 아드님 발치에 앉아 우리 인생에 ‘필요한 오직 한 가지’ 를 배울 수 있게 이끌어 주십시오.

독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여정 중에 있는 예수님을 어떤 마을에서 마르타라는 여인이 자기 집으로 “모셔 들입니다.” (38절) 마르타는 자캐오처럼 예수님을 기쁘게 자신의 집에 ‘맞아들이는’ 루카복음의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집에 맞아들인다는 것’은 그녀가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반면에 동생 마리아는 “주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39절) 라고 루카는 묘사합니다. ‘발치에 앉는다.’ 는 말은 예수님 시대에 스승과 제자 관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당시에 많은 유다인이 스승의 발치에 앉아 단지 가르침뿐 아니라 스승의 삶 자체를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 사막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구조적으로 볼 때, 마리아보다는 마르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마르타가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것으로 시작해, 마리아가 자신을 돕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마르타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마르타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자신의 문제에 빠져 예수님 말씀을 듣거나 그분을 바라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마르타를 어떻게 교육시키는지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먼저 두 번이나 마르타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두 차례나 부른다는 것은 깊은 뜻이 있습니다. “마르타, 마르타 ! 너는 많은 것을 걱정하고 거기에 방해를 받고 있구나.”  신약성경에서 ‘걱정’ 이란 단어는 날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배고픔, 굶주림과 다른 문제들에 대한 인간의 자연적인 반응을 가리킵니다. 걱정과 근심은 초대교회 신자들의 공통 주제였습니다.
마르타의 문제를 직접 지적한 후 이어서 예수님은 마리아가 “좋은 몫” (42절) 을 택했다고 칭찬하십니다. 걱정과 근심에 싸일 때 마리아는 허둥대거나 기적 같은 도움이 오기를 바라며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습니다. 대신에 마리아는 모든 문제를 안고,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분의 가르침을 귀 기울이기로 ‘선택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모든 문제를 예수님의 가르침에 비추어 식별하기로, 그리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섭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정한 것이지요. 이것이 예수님이 그녀가 ‘좋은 몫’ 을 택했다고 말씀하시는 이유입니다.

마리아와 마르타의 이야기는 산상설교에 나타나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잘 설명해 줍니다. 인간이 삶에 필요한 것을 보장받기 위해 ‘많은 것’을 걱정하는 태도는 필요한 ‘한 가지’ 것을 갈망하는 태도와 대조됩니다. 근심은 성경에서 하느님이 계시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당신 자녀들을 보호하시는 아버지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들의 새들을 먹이시고, 당신의 피조물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이 이야기의 초점은 마리아의 관상적 삶이 마르타의 활동적 삶보다 더욱 중요하고 가치가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루카의 문맥에서 보면 이 두 유다 여성의 이야기는 신앙 여정이 ‘받아들임’ 에서 ‘발치에 앉아 귀 기울이는 것’ 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 예수님을 믿는 것에서 그분의 가르침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것이 제자직의 여정이라는 것을 두 여성 제자를 통해 가르치고자 합니다.
마르타와 동생 마리아는 모두 유다인 여성입니다. 루카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주 유다인들에게 거부당하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데, 이 두 유다인 여성은 예수님을 믿는 이스라엘 안의 남아 있는 사람들, 예수님께만 희망을 거는 가난한 이들을 대표합니다. 여성들은 종종 고대사회에서 무시되었고, 남성과 동등한 교육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두 여성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선교 활동으로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 안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줍니다.

성찰
근심에 대한 해결책, 인생에 필요한 한 가지, 인생의 목적에 대한 답은 단지 그리스도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가르침을 들을 때만, 하느님 아버지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길 때만 해결됩니다. 오늘 복음은 루카복음의 문맥에서 보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느님 섭리에 온전히 내맡김’ 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합니다.

기도
주님, 누가 당신 천막에 머물 수 있습니까 ? 누가 당신의 거룩한 산에서 지낼 수 있습니까 ? 흠 없이 걸어가고 의로운 일을 하며 마음속으로 진실을 말하는 이라네.(시편 15, 1 – 2)
임숙희(로마 그레고리안대학교 성서영성 신학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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