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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하는 자는 변한다고 했습니다. [허윤석신부님]
작성자이순정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23 조회수676 추천수7 반대(0) 신고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8-23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너희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내포한 뜻을 들어 보아라. 누구든지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간다.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곧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 마음 속에 뿌리가 내리지 않아 오래가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사람은 그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닥쳐오면 곧 넘어지고 만다.

또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억눌러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잘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사람은 백배 혹은 육십배 혹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봉독된 마태오복음의 비유의 중심은

 

자칫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느냐하는 업적주의에 관한 이야기이기 보다는

 

씨뿌리는 농부이신 하느님과 밭인 우리의 관계에 대한 것이 주제입니다.   

 

 

그러면 이 비유의 의미와 의도는 무엇일까요?

 

 

먼저 이 비유가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유익은

 

바로 각기 다른 수준의 신앙의 상태를 말하는 땅의 네가지의 경우

 

즉, 길바닥, 돌바닥, 가시덤불, 그리고 좋은 땅처럼. 우리자신의 삶의 순간에서 나의 영혼은 

 

 지금 어떤 토양과 영적 환경을 갖고 있는가를 진단하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이 초대의 최종 목적은

 

바로 밭의 주인인 씨뿌리는 이의 뜻에 맞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비유를 깊게 묵상해보면

 

이 네가지의 경우가 내 안의 삶에서 어느한 경우만이 아닌 모두 내재되어 있어

 

후퇴와 진보를 거듭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늘 좋은 땅만이었다 말할 수도, 늘 돌바닥이나 가시덤불이었다 말할 수 없는

 

나자신을 발견합니다.

 

 

 

저 역시 하느님의 말씀의 삶을 사는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고통의  십자가가 주어질 때면 주님의 은총의 씨앗을 열매맺지 못한 체,

 

많은 유혹과 저자신의 나약함 때문에 길바닥, 돌바닥, 그리고 가시덤불 처럼 살아온적도 있었습니다.

 

 

 

 또 어느 순간에는 정말 좋은 땅이 되어 은총의 열매를 맺는 순간도 경험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죽을 때 까지 우리는 늘 자신이 수십배의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기만를 다 바랄 것입니다.

 

 

또한 늘 길바닥과 돌바닥의 모습일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 네가지의 땅의 모습을 모두 내 안에 갖고 살아가면서

 

돌바닥, 가시덤불의 나에서 좀더 좋은 땅인 나 자신이 되고자 기도와 사랑의 실천으로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아직 끝나지 않는 길을 걷고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이 비유의 의도는 마태오복음의 특징인 교육적인 목적을 다분히 반영한다 하겠습니다.

 

 

즉 그 목적은 돌바닥에서 좋은 땅으로 변화하기 위한 교육적 목적을 말합니다.

 

 

 

"씨뿌리는 사람이 뿌린 씨는 바로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입니다."라고 마르코복음은 말합니다.

 

 

씨뿌리는 자인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길바닥, 돌바닥,

 

그리고 가시덤불인 상태인 데도 불구하고 그곳에 당신의 씨를 뿌리십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농부입니까?

 

 

진정 지혜로운 농부였다면 이미 잘 되어 있는 비옥한 땅에 씨를 뿌리고

 

그 씨앗을 낭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바로 사랑이시며,

 

늘 죄인을 기다려 주시는 탕자의 아버지,

 

그리고 99마리의 양을 떼어 놓고 1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는 착한 목자이십니다.

 

 

철부지 어린이와 같은 이들에게 당신의 나라를 계시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농업 기술은 이 세상의 지혜와는 너무나도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주님의 밭이 되었습니다.

 

 

콩심은 데 콩나고 팥심은 데 팥이 나듯이 우리의 밭에는 바로 하늘나라의 씨앗이 심어져 있습니다.

 

 

 

생활 속에서 정말 나 자신의 나약함과 외부적인 어려움인 가시덤불 때문에

 

돌바닥, 길바닥이라고 해서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실망하거나 죄책감을 느끼기 보다는 부족한 나이지만 척박한 이곳에

 

당신의 씨를 뿌려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우리의 하느님은 바로 우리의 나약함을 몰라주시지 않는 분이십니다는

 

필립비서의 말씀에 힘을 얻어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을 가꾸어 나아가야 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먼저 복음을 자주 읽고 묵상하며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바로 하늘나라의 씨앗을 설명하는 설명서이며

 

하늘나라의 열매를 가져다주는 살아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 내리는 눈이 하늘로 되돌아가지 아니 하고

 

땅을 흠뻑 적시어 싹이 돋아 자라게 하며 씨 뿌린 사람에게 씨앗과 먹을 양식을 내주듯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그 받은 사명을 이루어,

 

나의 뜻을 성취하지 아니하고는 그냥 나에게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제생활의 첫 발을 내딛는 제 자신은 참으로 부족합니다.

 

 

하지만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 지길 바랍니다."하고 순명하신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시고 저의 작은 말씀의 텃밭을 가꾸어 나가고자 합니다.

 

 

 

말하는 사제이기 전에 듣는 사제 행동하는 사제보다

 

함께 머무는 사제가 요청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착한 농부이신 주님의 밭으로서 긍지와 용기를 갖고 힘차게 생활합시다.

 

 

 

 가시밭에서 돌바닥에서 길바닥에서 좋은 토양으로 바뀌는 나자신이 되기 위해

 

깊은 성찰과 주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기도시간을 갖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는 변한다고 했습니다.

 

 

 

* 나는 변하고 있습니다.

 

 

 

이젠 시간이 흐른 탓인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들뜬 감정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습니다.

 

 

 

사랑이란

 

 

스러지고 마는 감정이 아니기에

 

이제 사랑의 노력을 할때입니다.

 

 

 

그대는 이말에 어떤 느낌을 받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런 단계에 와있다는 것을

 

몹시 기뻐합니다.

 

 

 

변하기 쉬운 감정의 물결이 잔잔해진 다음에

 

찾아오는

 

새로운 사랑, 화고한 사랑

 

 

그대를 향한 나의 사랑은

 

고통과 더불어 자라나고 더욱 다져집니다.

 

 

 

그대와 더불어

 

세상이 새롭게 열리고

 

 

우리가 함께 이야기를 나눈 모든 것들이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예전엔 그저 스쳐 지났던

 

길섭의 풀이나

 

굴러다니는 돌멩이까지도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는 듯합니다.

 

 

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그대을 통해 나타나고

 

 

 

나는 그대로  인해 변하고 있습니다.

 

 

 

좋은 토양으로 ......

 

 

 

그대를 사랑하다가.

 

 

 

2007년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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