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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늘나라의 자녀들" - 7.2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27 조회수387 추천수5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7.27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예레14,17ㄴ-22 마태13,36-43

 

 

 

 

 

 

"하늘나라의 자녀들"

 

 

 

말씀 묵상 중,

‘씨도둑은 못한다.’ ‘씨받을 사람이다.’ 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누군가는 ‘원판불변의 법칙’이란 말을 쓰며

변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가

‘유전이냐 환경이냐?’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입니다.

때로는 유전 쪽에 기울다가 환경 쪽에 기울기도 하며

성선설에 기울다가 성악설에 기울기도 합니다.

유전 쪽이라면 숙명론적이라 자유가 없고

환경 쪽 만이라 고집하기엔 엄연한 유전의 현실입니다.

이래서 가계 치유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와 미사를 드리는 이들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악습이나 악성을

전능하신 하느님의 도움으로 끊기 위한

눈물겨운 염원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열심한 어머니들의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와 노력으로

자식 대에서 이런 악습이나 악성을 끊는 경우도 종종 보곤 합니다.

하느님 은총에 의한 돌연변이 치유와 같다고 할까요.

불교로 말하면 업과 윤회의 사슬인데

이것을 전능하신 하느님의 은총으로 끊겠다는 시도입니다.

 

좋은 씨의 사람들과 나쁜 씨의 사람들은 애당초 결정된 것일까요?

초대교회 신자들의 고뇌가 오늘 복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원래 예수님의 비유에서는 하느님의 인내에 초점이 있었지만

비유의 해석에서는 심판에 초점이 있습니다.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들이고,

  가라지들은 악한 자의 자녀들이며,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악마다.

  그리고 수확 때는 세상 종말이고, 일꾼들은 천사들이다.”

 

말씀대로라면 결정론적이며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대책 없이 악하게 구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생각도 들 법합니다.

분명히 구분되는 밀과 가라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하늘나라의 자녀들과 악한 자의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판단은 끝까지 유보해야 하니

우리 영역을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어 주님은 마지막 심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자기 천사들을 보낼 터인데,

  그들은 그의 나라에서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질 것이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우리 모두의 삶을 뒤돌아보게 하는 주님의 충격 요법 표현입니다.

아마 세상에 악한 자의 자녀들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하늘나라의 자녀들로 살고 싶어 할 것입니다.

모두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입니다.

우리를 구원에로 초대하시는 충격요법의 표현으로 읽어야 합니다.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자녀들로 새로 태어난 우리들입니다.

과거의 업과 윤회의 비관론적 숙명의 사슬에서 해방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가라지가 아닌 밀로, 나쁜 씨가 아닌 좋은 씨로,

악한 자의 자녀들이 아닌 하늘나라의 자녀들로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이를 철두철미 믿고 살아야 합니다.

돌은 어디서도 돌이고 금은 어디서도 금입니다.

하늘나라의 자녀들은 어디서나 하늘나라의 자녀들입니다.

변절이나 변질, 변심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예언자들이, 성인성녀들이 그러했습니다.

칠흑 같이 어두운 참혹한 현장에서도 별처럼 빛나는 의인들,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바로 1독서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가 그 모범입니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아니 이미 지금 여기 어둠의 현장에서 해처럼 빛나는 예언자 예레미야요

곳곳에 빛을 발하며 살아가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다음 참상을 대하면 6.25사변이, 1980년 5월의 광주가 생각납니다.

 

“들에 나가면 칼에 맞아 죽은 자들뿐이요,

  성읍에 들어가면 굶주림으로 병든 자들뿐이다.

  정녕 예언자도, 사제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나라 안을 헤매고 있다.”

 

이런 극한 상황의 역경 속에서

하느님을 놓치지 않고 기도하는 예레미야입니다.

하느님을 볼 때는 회개와 희망이지만

하느님 없이 과거나 현실을 볼 때는 절망이요 원망이요 실망뿐입니다.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회복할 수 없도록 저희를 치셨습니까?

  평화를 바랐으나 좋은 일 하나 없고,

  회복할 때를 바랐으나 두려운 일뿐입니다.

  주님, 저희의 사악함과 조상들의 죄악을 인정합니다.

  참으로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둡니다.”

 

하느님만을 바라볼 때 희망이요

이런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볼 때

과거와 현재를 바라봐야 절망과 원망은 희망과 감사로 바뀝니다.

과거의 업에서 해방되어

하늘나라의 자녀들 되어 해처럼 빛나는 삶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늘나라의 자녀들 되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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