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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있어 꽃이 핀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28 조회수943 추천수14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성녀 마르타 기념일 - 내가 있어 꽃이 핀다


 

오늘 묵상하는 중 제대 앞에 놓인 예쁜 화분을 보았습니다. 그 화분엔 꽃이 활짝 피어있었습니다. 아마도 수녀님께서 꽃이 핀 화분을 제대 앞에 옮겨 놓았나봅니다.

언뜻 생각하면 꽃은 내가 보아주지 않아도 자기 혼자 피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내가 보아주지 않아도 꽃이 필까요?

하느님은 인간 안에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셨습니다. 벌이 꽃이 아름다워서 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벌은 사실 우리가 보는 것과 전혀 다른 색을 봅니다. 그저 꿀이 있을 법한 모양의 식물을 찾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동물은 유일하게 인간밖에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느님께서 왜 꽃에게 아름다움을 넣어주셨을까요? 인간을 창조하시기 이전에 세상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듯이 인간에게 아름다움을 보여주시기 위해 창조하신 것입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인간을 위해 창조된 것이고 인간은 하느님을 위해 창조된 것입니다. 인간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며 행복해 할 수 있듯이 하느님은 인간을 보며 행복해하십니다.

세상에 이유 없이 창조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잡초 한 포기도 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보는 예쁜 꽃들은 바로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창조해 주시고 그 곳에 피어나도록 섭리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보고 즐길 내가 없었다면 내가 보는 아름다운 것들은 존재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선문답 같기도 하고 억지논리 같기도 하겠지만, ‘내가 있어 꽃이 핀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받을 사람이 없는데 은총을 주시지 않습니다. 투수가 공을 받아 줄 포수가 없으면 공을 던지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받아 줄 사람이 없는데도 은총을 준다면 그것은 낭비되는 것이고 하느님은 낭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꽃도 보아 줄 내가 있어 피듯이 모든 은총도 그것을 받아주는 이가 있어 오는 것입니다.

 

같을 맥락으로 성모님께서 없으셨다면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수 있으셨을까요? 그랬다면 굳이 성모님을 인간 구원을 위해 태초부터 준비시켜 놓으실 필요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을 능히 받을 넓고 깊고 깨끗한 마음을 지녔던 유일한 분이고 그래서 그 분께만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성모님은 인간 구원 사업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렇다면 성모님은 이 세상의 복덩어리입니다. 복을 받아 세상에 전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불교 집안에 들어오셔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대세를 주시고 가족을 영세시키고 한 아들을 주님께 봉헌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니 저희 집안에 저희 어머니가 복덩어리입니다. 그 분은 저희 집안에 들어오셨는데 혼자 오셨던 것이 아니라 그 품 안에 하느님을 품고 오셔서 온 가족에 그 하느님을 전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모님은 당신께서 받으신 하느님 자체인 그리스도를 세상에 전해 주셨습니다. 누구도 그만한 은총을 충만히 지닐 수 없었지만 오직 성모님께서 그 은총을 받으시어 세상에 전해주신 것입니다. 성모님께서 없으셨다면 성자께서는 온전한 방법으로는 세상에 태어나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러니 성모님은 이 세상에 구원을 전해 준 복덩어리였던 것입니다.

 

오늘 마르타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성녀 마르타는 가정주부의 주보성인입니다. 성녀 마르타는 부활한 라자로의 여동생이고 막달라 마리아라고 전해지는 마리아의 누이입니다. 그녀는 그 집안에 복덩어리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라자로가 다시 살아나는데 그녀의 믿음이 큰 역할을 하였고 아마도 동생 마리아의 회개를 위해서도 큰 역할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온 가족을 위해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잘 받아들이고 영접할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복음에서는 예수님 발치에만 앉아있는 마리아에게 일을 하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청했다가, 정작 필요한 것은 하나밖에 없는데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해 활동을 하였던 마르타 역시 성녀입니다. 모두가 예수님 곁에만 앉아 있다면 식사와 잠자리는 어떻게 대접할 수 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세손님을 잘 대접했기 때문에 사라에게서 이사악이 태어날 수 있었듯이, 마르타가 잘 영접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마리아가 그 분의 발치에서 그 분의 말씀을 들을 기회도 생겼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받아들이지 않는 집에는 들어가시지 않는 분입니다. 마르타가 잘 영접할 줄 알아, 온 집안에 복을 전해준 복덩어리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서 복덩어리가 될 수 있습니다. 꽃은 내가 없으면 피지 않듯이, 은총도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세상에 오지 않습니다. 내가 마음을 열고 넓히고 깨끗이 하여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만큼 이 세상에 은총을 전해주는 복덩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받아들인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비우는 겸손과 여성 고유의 모성이 없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르타 성녀를 통해 어머니와 같이 잘 받아들이고 품을 수 있는 바다와 같은 마음을 청하도록 합시다.

 

 

 

 

< 마리아를 통하여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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