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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연중 제18주일 2010년 8월 1일).
작성자강점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30 조회수591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제18주일  2010년 8월 1일  


루가 12, 13-21.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유산으로 인한 형제간의 시비를 해결해달라고 예수님에게 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거절하십니다. 그리고 그 기회에 예수님은 재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탐욕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과 더불어 이야기 하나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부자가 큰 창고를 지어 재산을 많이 쌓아두고, 이제 걱정할 것이 없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말이 어리석다고 지적하십니다. 그는 재산만 있으면, 사는 데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였지만, 그것으로 인간 생명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재물은 우리에게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있으면 여러 가지로 편리하고 사람들로부터도 대우를 받습니다. 물질적으로 편하게 살 수 있고 재물로써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재물을 좋아합니다. 인간은 한 가지에 마음을 빼앗기면, 다른 것을 소홀히 합니다. 젊은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소홀히 합니다. 권력에 맛들인 사람은 그것을 얻고 보존하기 위해 자존심도 버리고, 가까운 사람을 배신하기도 합니다. 재물을 탐하는 사람은 자기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과도 소원한 관계를 가집니다. 사랑도, 권력도, 재물도 다 좋은 것이지만, 우리는 그런 것 중 하나를 삶의 보람이라고 단정하면, 많은 사람들을 외면하고 그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구약성서는 오래 사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사람들의 존경과 재물을 누리는 것을 선하신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오복(五福)에서, 명대로 살다가 편하게 죽는다는 항목 하나가 빠진 사복(四福)을 하느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시편에 보면 “야훼는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23,1)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의지하는 사람이 풍요로움을 누린다는 말입니다. 또 다른 시편은 “맹수들은 먹이 찾아 배고플지 모르나, 야훼를 찾는 사람은 온갖 복을 받아 부족함이 없다.”(34,10)고도 말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복을 받아 곤경에 처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고래로부터 인류는 복을 얻기 위해 신에게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재물을 보는 시선은 구약성서의 것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원리가 된 나라입니다. 하느님은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는 분입니다. 그 하느님이 우리 삶의 원리이면, 우리도 이웃을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는 일을 실천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분이 하시는 일을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쳐주고, 마귀 들렸다는 정신병자나 간질 환자를 고쳐주면서, 그것이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일에 심취하여 그것을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라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려면,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마르 10,21)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하느님의 일을 알아보고 실천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나라를 “밭에 숨겨진 보물”, “장사꾼이 발견한 값진 진주”에다 비유하셨습니다.(마태 13,44-46). 그것에 심취한 사람은 그것을 얻기 위해 가졌던 것을 모두 팔아버린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지 못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재물을 얻기 위해 하느님에게 빌지도 않고, 재물을 얻었다고 그것을 하느님의 축복이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루가복음서는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루가 6,20)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 “부유한 사람은 불행하다.”(6,24)고도 말합니다. 이웃을 돌보지 않고 재물만을 섬기는 사람은 불행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무소유(無所有)의 경지를 이상으로 제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 중에도 재산을 상당히 가졌던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을 초대하였던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은 상당한 재력을 가진 인물들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무덤을 제공한 사람도 부자이면서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마태오복음서는 “아리마태아 출신인 한 부자, 그 이름은 요셉이고 그 역시 예수의 제자였다.”(27,57)고 말합니다.


복음서는 재물이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장애물이라서 버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재물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루가복음서에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16,19-31). 라자로는 부자의 집 문간에 누워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부자와 라자로 사이에 있는 빈부(貧富)의 차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가 부각시키는 것은 라자로가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도 배를 채우지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불행이라는 것입니다.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와 나누는 데에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시는 하느님의 일이 있고, 그런 실천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친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시선으로 자기의 재물과 자기의 이웃을 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면 갖지 못한 이웃을 위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보입니다. 하느님까지 동원하여 재물을 위한 자기의 소원을 성취하겠다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은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에게 인색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시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데에 인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베풂은 하느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바울로 사도는 우리가 이웃에게 베풀면, “그 너그러움이...많은 이에게 하느님께 대한 감사를 불러일으키는”(2고린 9,11)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이 우리의 실천을 통해 나타나는 데에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우리가 누리는 것을 은혜롭게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다른 자녀들인 우리의 형제자매들도 그분의 은혜로우심을 체험하도록 우리가 가진 것을 그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삶을 요약하여 의례(儀禮)로 남긴 미사는 예수님의 삶이 ‘내어주고 쏟는’ 나눔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미사에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모시는 우리는 내어주고 쏟으신 그분의 몸짓과 그분의 생명에 참여하여 은혜로우신 하느님이 우리의 실천 안에 나타나게 합니다. ◆

 

                                   서 공석 신부님의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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