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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화이트 밸런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30 조회수365 추천수6 반대(0) 신고
 
 
 
 

화이트 밸런스 - 윤경재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마태13,54-58)

 

얼마 전에 제가 다니는 본당에서 조명 교체 공사를 완료하였습니다. 본당이 지어진지 20 여년이 지나다보니 천정에 달린 전등이 수명이 다해 몇 개가 꺼졌는데도 천정이 워낙 높아 전등 하나 가는데도 경비가 엄청나 쉽게 갈지 못했습니다. 등 하나 값보다 인건비가 더 드는 형편이어서 한꺼번에 몰아서 갈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요즘 에너지도 40 퍼센트 이상 절약되고 정부에서 보조도 해준다는 LED 등으로 교체하였습니다. 덕분에 본당 내 밝기가 전보다 훨씬 밝아졌습니다. 밝기도 하지만 눈부시지 않아 시야는 전보다 부드러웠습니다. LED 전등 회사에서 자랑하는 대로 본당 안이 더욱 따뜻한 느낌이 돌았습니다. 주임 신부님과 교우들은 큰 돈 들인 보람이 있다며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본당 행사가 있어서 사진을 찍어보니 사진의 톤이 노란 색으로 나왔습니다. 여성들이 머리에 쓴 흰 미사보가 약간 노리끼리하게 보였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미리 ‘화이트 밸런스’ 조정을 하고 찍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입니다.

사람의 눈은 조명이 아무리 변했어도 흰색은 흰색으로 인식하는 보정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진기라는 기계는 그렇지 못합니다. 반사되는 빛을 받아 영상을 맺을 때 물체의 빛이 내는 파장을 보정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노란 빛이 나는 조명 아래서는 흰색 옷을 입었어도 노란색 파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노란색 옷처럼 표현할 뿐입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을 때는 이런 사진기의 특성을 이해하고 미리 조정했어야 했습니다. 조명 등불의 파장에 맞추어 흰색이 흰색으로 표현되도록 조정하고 찍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탓에 귀한 사진을 망쳤습니다. 이렇게 사진을 찍을 때 미리 색 조정하는 기능을 ‘화이트 밸런스’라고 부릅니다.

늘 복음에서 나사렛 사람들은 새롭게 변한 예수님의 빛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옛날 눈으로 예수님의 빛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익숙하다는 생각으로 화이트 밸런스 조정을 제대로 맞추지 않고 사진을 찍은 어리석음을 범한 것입니다. 잔뜩 기대를 걸고 사진 현상을 했지만, 결과는 창피만 당한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나중에라도 실수를 자책했지만, 그러나 나사렛 사람들은 그 뒤에도 진리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눈을 보정하려는 시도를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지금 복음서 속 나사렛 사람들이 범한 어리석음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게는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라고 하신 말씀을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진기에 화이트 밸런스 기능을 미리 설정해 놓은 제작사 덕분인 것처럼 선배들이 실수한 덕분입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났다고 자랑할 일이 하나도 아닙니다. 

기적은 기적을 깨닫고 볼 줄 아는 사람에게 더 의미 있게 다가오는 법입니다. 빵을 배불리 먹은 기적을 체험했어도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먹으라는 더 깊은 단계로 이끌음에는 많은 제자가 걸려 넘어졌습니다. 심지어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주님께서 베푸신 기적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났고 또 다른 기적으로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마태오 저자는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라고 ‘많이’ 라는 부사를 강조합니다. 기적이 단발성으로 끝났다는 지적입니다. 몇몇 병자를 치유하셨지만, 기적이 기적을 낳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혹시 지금 우리도 매일 미사 중에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먹으면서도 열두 광주리를 가득 채우는 기적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저는 성당 조명이 바뀌고 난 요즈음 흰색 계통의 옷을 입고 성당에 들어가기가 겁납니다. 밝고 부드러운 톤의 LED 등불 아래서는 옷이 약간만 더러워도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왜 그리도 때가 낀 허물이 눈에 확 뜨이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자주 옷을 갈아입고 세탁하게 됩니다. 저만 그런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눈에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본당 조명이 바뀐 덕분에 평소에 깨닫지 못한 제 허물을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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