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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도, 주님의 기도>(마태 6,5-15)(2)
작성자배동민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30 조회수397 추천수19 반대(0) 신고
 

6,5-15 기도

기도에 관한 가르침은 유다인의 신심실천을 설명하는 세 가지 가르침 가운데 가장 깁니다. 문학적으로 산상 설교 가운데서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마태 5―7의 서언을 참조할 것.). 이 가르침은 기도하는 형태에 관한 서언(마태 6,5-8), 주님의 기도(마태 6,9-13), 용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결론(마태 6,14-15)으로 짜여 있습니다.

마태오는 그리스도교 기도에 관한 교리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루카의 교리교육과 비슷합니다(루카 11,1-11). 그러나 청중이 다릅니다. 마태오 복음서 저자와 루카 복음서 저자 모두 자기네 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루카는 기도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는 공동체를 위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오는 기도할 줄 아는 공동체에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마태오의 공동체도 새로운 모양으로 기도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마태 6,5.7). 루카는 이방인 청중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방인은 기도하는 습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마태오 공동체에는 어려서부터 날마다 세 차례 기도하는 법을 배운 유다인들이 있었습니다.

5-8: 주님의 기도를 소개하는 가르침은 그리스도교 기도의 독창성을 강조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유다인이나 이방인이 바치던 가도와를 사뭇 달랐습니다. 기도는, 다른 종교 실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리사이들에게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자랑거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기도가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를 드리는 행위가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영예와 특권을 얻는 수단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방인들 역시 기도를 순전히 외적인 어떤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태오는 그리스도인들더러 기도의 종교적인 의미를 되찾으라고 초대합니다. 기도하는 목적에서 벗어나는 의도를 말끔히 벗어버리라고 권고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바치는 기도는 아버지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이어야 합니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마태 6,5)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자기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기도하신 모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도 방식은 주님의 기도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9-13: 복음서 안에는 주님의 기도가 두 차례 나옵니다. 루카 11,2-4에 나오는 주님의 기도는 짧습니다. 루카는 자기 공동체가 바치던 기도를 모아놓았습니다. 두 경우에 모두, 그 기도의 소박하고 직접적인 내용은 당시의 기다란 기도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하느님께 기울여야 할 신뢰심과 친밀감을 매우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 부분(마태 6,9-10)에서는, 처음부터 기도를 바치는 사람더러 하느님을 바라보라고 초대합니다(“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 둘째 부분(마태 6,11-13)에서는 제자들이 처한 상황 및 그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으로 눈을 돌립니다(일용할 양식… 우리 잘못… 유혹에 빠지지 않게.). 이제 주님의 기도에 나오는 기원과 청원을 하나하나 좀 더 길게 살펴봅시다.

“우리 아버지.” 예수께서는 우리더러 하느님을 당신처럼 친밀감과 신뢰심을 가지고 모시라고 가르치십니다. 유다인의 기도를 특징짓는 구구한 소개나 설명이 없이, 하느님을 직접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십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호칭은 주님의 기도 전체를 하느님을 깊이 신뢰하는 분위기 속에다 들여놓습니다. 그 호칭은 나머지 모든 청원 앞에서도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마태오는 “하늘에 계신”이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와 그렇듯 친밀하고 가까이 계시는 하느님이 바로 전능하신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밝힙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소서.”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빛나게 하는 일,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기도를 바치는 깊은 동기가 됩니다. 모든 사람이 아버지의 영광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거룩하심(=이름)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광은 사랑의 광채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더러, 자기 영광을 찾지 말고, 무엇보다 먼저 하느님의 거룩하심과 영광을 기원하고 드러내라고 초대하십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소서.” 이 기원은 주님의 기도 전체에서 핵심입니다. 모든 기도에 영감을 불어넣어야 할 가장 큰 열망을 나타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오는 일은 예수님의 설교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해방과 자유,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아끼고 위해주는 형제애, 모든 사람을 섬기는 마음을 현존하게 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아직까지는 씨앗과 같습니다(마태 4,17 해설을 참조할 것.).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나라가 어서 오기를 기원하라고 초대하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하느님의 나라가 어서 빨리 오도록 열망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온 인류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신 한 가정이 되는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원하는 것이 기도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오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기원을 덧붙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오기를 열망하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열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기도는 하느님이 우리의 뜻을 이루어주시기를 바라는 데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살라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데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치고, 그에 따르는 갖가지 십자가를 지는 데 있습니다.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밥, 음식,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옷, 거처, 등)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오늘 필요한 것을 주시라는 청원입니다. 쌓아 두려고 청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려면, 함께 살려면 아버지의 도우심이 절실합니다.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아버지의 소유입니다. 아버지께서만이 그 주인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은 쌓아두지 말고 골고루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소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의식주 이상으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용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함께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았습니다. 우리는 아버지께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아버지께 충성을 바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늘 아버지께 용서를 간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도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너그럽게 용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세 번째 것은 자포자기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는 일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당신 설교에서 말씀하시는 커다란 유혹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혹을 벗어나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초대하십니다(마태 26,41). 가장 큰 유혹은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을 포기하라는 유혹입니다.

주님의 기도는 그리스도교 기도의 본보기입니다.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치시는 학교와 같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가 말한 대로, 우리는 주님의 기도 안에서 복음 전체가 요약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창문을 통해서 보듯이 주님의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 설교의 핵심을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설교 역시 주님의 기도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게 해 줍니다. 그와 동시에, 주님의 기도라는 학교는 살길, 함께 사는 길을 가르치는 학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이 주님의 기도 안에 표현된 열망을 반영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가 오기를 진심으로 열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4-15: 마지막 설명에서, 마태오는 주님의 기도 둘째 부분의 첫째 청원을 다시 취합니다. 서로 용서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마태오 복음서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용서는 공동체 삶에서 기본입니다(마태 5,21-26과 마태 18,21-35에 대한 묵상을 참조할 것.). 형제자매인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하느님께 용서를 청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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