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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웬수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롤하이저 신부님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30 조회수345 추천수6 반대(0) 신고
자신을 적대시하고 오해하고 반항하고 미워하는 사람 앞에서 어떻게 그 사람을 여전히 사랑하면서 태연한 척하고 희망을 말하고 너그럽게 대할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셨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게 위대한 인간상과 도덕적인 모범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보여줄 수 있는가?
오해하는 사람에게 태연한 척하면서 공감(共感)한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는가?
적대시하는 사람에게 여전히 따뜻하고 우아하게 대할 수 있는가?
원수가 당신을 죽이려고 하는데 그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겠는가?
 
불행하게도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본능은 이와 반대로 작용한다.
우리의 본능은 대개 자기 보호를 하려고 하며 피해망상적이기도 하며 자기 희생과 용서를 싫어한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갖는 정의심은 눈에는 눈으로, 미움에는 미움으로, 불신에는 불신으로 죽음에는 죽음으로 갚을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에도 여전히 사랑하려고 하고 화가 났을 때에도 사랑하려고 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자신을 적대시하고 오해하고 반항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때때로 우리의 반응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또는 다른 사람들의 이러한 적개심과 오해와 증오에 너무나 겁을 집어먹은 나머지 뒤로 물러서서 감정을 숨기고 만다. 정작 그러한 사람들 앞에서는 이를 테면 미움을 미움으로 갚는 등의 자신의 보호본능을 살리지 못한다. 내심으로는 계속하여 사랑을 말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만 경원(敬遠)하고 있으므로 아무 말도 못하게 된다. 때로는 이와 정반대로 반응할 때도 있다. 그러한 사람들 앞에서 돌처럼 무감각하게 되고 철면피가 되어 그들의 반감(反感)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들 좋을 대로 생각하게 내버려둔다. 그들은 더욱더 의기양양해진다. 무감각하게 되는 것은 우리들이 계속 바른 말을 하고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음 속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낀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때로는 이해할 수 없게 이런 무감각은 상대방을 깔보는 태도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에게 반감을 갖고 있거나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할 만큼 우리 자신이 넓은 마음을 갖고 있다고 믿을 때 이러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자신이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무지(無知)를 애처롭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 무지한 사람들이 불쌍해!
조금 더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동정과 관심을 위장한 우월감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대하시지는 않았다.
당신을 미워하고 죽게까지 한 사람들 앞에서 겁먹지도 않으셨으며 무감각하거나 우월감을 갖지도 않으셨다.대신에 내면 깊이 들어가셔서 그 내면에서 계속하여 따뜻한 마음과 사랑과 용서할 수 있는 힘을 발견하셨다. 그리하여 사형이 집행되는 순간에그들을 용서해주십시오. 그들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하고 기도하셨다.
 
칼 라너(Karl Rahner)사형 집행관들은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죄 없는 한 사람을 십자가형에 처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는 몰랐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셨습니다.”하고 말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사랑할 줄을 모른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여러 복음서에서는 최후의 만찬 시의 예수님의 심경을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하고 표현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아시고 당신께서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아시고,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으셨는가를 아셨기 때문에 당신을 미워하고 죽이려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용서하실 수가 있었던 것이다.결코 무관심하시거나 우월감에 젖어 계시지 않았다. 이런 넓고 깊은 마음에서 정열을 불사르고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얻으셨던 것이다.
우리도 같은 강력한 에너지의 샘을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자녀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으며 예수님처럼 용서할 수 있다. 사회나 교회에서는 이런 이해력과 용서할 수 있는 능력 외에는 더 필요한 것이 없다.
적(敵)과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하려면 자기 자신을 알고 구원의 의미를 알고 진정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실 남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은 부메랑이 되어 자기 자신을 갉아 먹게 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신자들 중에는 다른 신자가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느냐를 리트머스 시험지로 시험하려고 한다. 리트머스 시험지로 시험을 하기 전에 자신을 오해하고 있거나 반대하고 있거나 적대시하고 있거나 미워하거나 위협을 가하는 사람을 우월감을 갖지 않고 무관심하지 않고 무력함을 느끼지 않고 계속 사랑할 수 있는가를 자문(自問)해보아야 한다.
 
여태까지 사사로운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를 살펴보았지만 사실 박해만큼 억울한 것도 없을 것이다. 박해는 아무 죄도 없이 반감을 사고 따돌림을 당하고 천대를 받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빼앗기게 한다. 예수님께서 박해에 관하여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가 세상에 속한다면 세상은 너희를 자기 사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한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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