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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7-31 조회수680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7월 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This man is John the Baptist.
He has been raised from the dead;
that is why mighty powers are at work in him.
(Mt.14.2) 
 
 
제1독서 예레미야 26,11-16.24
복음 마태오 14,1-12
 
 
저의 부끄러운 과거의 한 조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건강한 남자라면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인 군대에 저 역시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군대 생활의 시작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지요. 저를 괴롭히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한 고참 선임병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선임병이 제게 자신의 수건을 빨아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냄새나는 수건을 들고 세면장으로 가면서 문득 앙갚음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수건으로 냄새나는 변기를 깨끗이 닦았지요. 그리고 다시 깨끗이 빨아서 선임병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저로써는 최고의 복수를 했다는 생각에 통쾌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선임병이 “너 이거 깨끗이 빨은 거야? 그런데 왜 이상한 냄새가 나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라고, 깨끗이 세탁을 했다고 말은 했지만 제 속마음이 얼마나 불안했었는지 모릅니다. 죄 짓고 못 산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다시는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또 누군가가 자신의 앞길을 가로 막을 때, 우리들 대부분은 공격적이고 교묘한 속임수를 쓰며 화를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자신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꼴이 되어 버릴 뿐입니다.

사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공격적인 태도나 성급한 행동으로 일관하는 사람은 스스로 힘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몸집이 작은 강아지를 보세요. 이 작은 강아지는 쉴 새 없이 짖어댑니다. 자신의 힘이 없기 때문에 소리로 쫓아내는 것이지요. 그러나 몸집이 큰 개는 자기가 가진 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주 짖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와 헤로디아 그리고 헤로디아의 딸 모두는 작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체면을 지키려는 이유만으로 세례자 요한을 죽이는 공격적이고 성급한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연 마음이 편했을까요? 아마 죽을 때까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죽어서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나쁜 영주로, 나쁜 여인으로, 나쁜 딸로 기억되어 우리들 가운데 회자되고 있습니다.

한 순간의 만족이 이렇게 자신에게 커다란 불이익을 가져올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추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후회하지 않을 행동이 아니라, 계속해서 후회할 수밖에 없는 한 순간의 만족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는 순간이 아닌 영원을 지향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으면서 주님과 함께 참 행복의 길에 설 수 있습니다.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이외수).



 

원하는 것을 얻는 법(김영희, ‘20대, 세계 무대에 너를 세워라’ 중에서)

독일의 대학은 박사과정만 마치는 데도 10년 정도 걸린다. 보통 문리대 학생들은 주 전공 외에 최소 2개 이상의 부전공을 선택해야만 한다. 나 역시 전공인 교육학 외에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철학을 공부했다.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는 라틴어까지 해야 했으니, 공부 분량이 만만치 않았다. 사람들은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했느냐고 묻지만, 내가 믿는 건 ‘머리 좋은 사람보다 노력하는 사람이 낫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특별한 공부 비법 같은 건 없다. 공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쾰른 대학 예비과정부터 박사과정을 마치기까지 10년 동안 하루 4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었다. 무조건 양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리고 수없이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는 ‘박사가 된 다음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매달렸다.

‘죽을 각오로, 정말 독하게 한번 해 보자!’ 박사 논문을 쓸 때는 전투 같은 생활을 했다. 당시는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아 320쪽에 달하는 논문을 타자기로 한 자 한 자 쳤다. 한 자라도 오타가 생기면 그 페이지는 처음부터 다시 쳐야 했다. 그나마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으며 매달릴 때는 나았다. 마지막엔 물만 마시며 타자기와 씨름했다. 논문을 제출하고 돌아와 거울을 들여다보니 눈이 퉁퉁 부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대로 자리에 누워 며칠을 꼼짝없이 앓았다. 열이 나는 몸보다 가슴속의 벅찬 성취감이 더 뜨거웠다. 혹자는 나를 ‘강한 사람’이라 말하고, 어떤 이는 ‘지독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 나는 반문한다.

“그 정도로 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원하는 걸 이룰 수 있겠어요?”
 
 
 
 
 
Sundial Drea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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