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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8월1일 야곱의 우물- 마태 14,1-12/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01 조회수308 추천수5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13군중 가운데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제 형더러 저에게 유산을 나누어 주라고 일러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관이나 중재인으로 세웠단 말이냐 ?” 15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16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17그래서 그는 속으로 ‘내가 수확한 것을 모아둘 데가 없으니 어떻게 하나 ?’ 하고 생각하였다.
18그러다가 말하였다. ‘이렇게 해야지.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내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두어야겠다. 19그리고 나 자신에게 말해야지. ′자, 네가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20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21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시작 기도
오소서, 성령님. 저희에게 참된 지혜를 가르쳐 주시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걷게 하소서.

독서
재산 문제와 죽음의 문제. 오늘 복음에서는 이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됩니다. 마치 두 가지를 저울에 올려놓고 그 무게를 달아보는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 유산을 나누어 받는 일에 개입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이것은 사실 잘못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율법과 관계된 문제라면 라삐에게 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물음을 재물에 대하여 가르치기 위한 기회로 삼으십니다. 유산 분배가 아니라 재물의 가치 자체에 대해 말씀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루카 12, 15)  재물 자체가 악하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창세기 첫 페이지부터 하느님께서 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드셨고 그것을 “보시니 좋았다.”라고 되풀이하여 말하는 성경은 (창세 1, 4. 10. 12 등) 창조의 근본적 선성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재물의 가치는 죽음 앞에서 상대화되며, 물질적 재물이 생명을, 더구나 영원한 생명을 확보하지는 못합니다. 이어서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예를 들거나 아니면 다른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이것은 우리의 경험으로도 자명한 것입니다. 갑작스런 죽음을 맞았을 때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이며 나에게 살날이 하루 밖에 남지 않았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 하는 생각은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재물의 가치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내몰아 갑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가족의 생활을 위해 많은 포기와 희생을 치르며 애써 일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언제나 가진 것이 부족하여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이들에게 오늘의 제1독서, 곧 인간의 모든 노고가 ‘헛되다.’ 는 코헬렛의 말은 (1, 2; 2, 23) 사치로 들릴 것입니다. 무엇인가 말씀 안에 걸림돌이 들어 있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현실감이 없다는, 예수님이 너무 우리의 사정을 몰라주시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가 언젠가 죽음을 맞을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 문제에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죽음이 있다는 사실, 이 세상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그 삶이 우리에게 행복하고 소중한 것이 되어야 함을 요구합니다. 끝없이 살 것이라면 우리의 삶은 더 절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유한한 삶이기에 이 짧은 삶이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의 말씀에 들어 있는 걸림돌은 복음의 마지막 구절에서 풀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 (루카 12, 21) 핵심은 우리를 진정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끝없이 살 것처럼 창고를 크게 짓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게’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을 가득 채워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행복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기준을 잘못 세워 하느님 앞에서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더 많이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성찰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 잠시 머무는 지상의 이 삶이 진정으로 행복했으면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 그 목적에 맞갖게, 하느님 뜻에 따라 나누임 없는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그것은 인간적이고 현세적인 삶에 대한 무관심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씨앗들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야 하듯, 우리의 삶도 육적이고 영적인 모든 의미에서 꽃을 피워야 합니다.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느님께서 주신 선하고 아름다운 씨앗들을 성실하게 가꾸어 당신께서 바라시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삶, 이것이 우리에게 죽음이 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의 모습일 것입니다. 어느 날 죽음이 올 때, 하느님 앞에서 충만한 삶을 위해 노력한 오늘의 삶이 후회 없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도
저희의 햇수는 칠십 년 근력이 좋으면 팔십 년. 그 가운데 자랑거리라 해도 고생과 고통이며 어느새 지나쳐 버리니, 저희는 나는 듯 사라집니다. 저희의 날수를 셀 줄 알도록 가르치소서. 저희가 슬기로운 마음을 얻으리이다. (시편 90, 10. 12)
안소근 수녀(성도미니코선교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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