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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원한 파트너" - 8.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04 조회수414 추천수8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8.4 수요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1786-1859) 기념일

예레31,1-7 마태15,21-28

 

 

 

 

 

"영원한 파트너"

 

 

 

사람의 눈은 끊임없이 밖의 대상을 향합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어느 대상을 찾는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이 아담을 만들고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그 반려자인 짝을 만들어 아담 앞에 내 놓았을 때

아담의 환호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평생 보이는 파트너를 만난 아담의 환호입니다.

저의 집무실 벽에는 렘브란트의

‘회개하여 돌아온 작은 아들을 안고 있는 자비하신 아버지’의

그림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과 인간의 영원한 파트너 관계를 상징하는 그림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입니다.

하느님 없는 인간은 영원히 반쪽 인간일 뿐입니다.

다음 시편 절규는

바로 반쪽 인간이 그 영원한 파트너인 하느님을 찾는 절규입니다.

 

“하느님, 당신은 저의 하느님, 저는 당신을 찾습니다.

 

  제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합니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에서

 

  이 몸이 당신을 애타게 그립니다.”(시편63,1-2).

 

 

그렇습니다.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영원한 파트너 하느님을, 그리스도를 찾습니다.

영원한 파트너이신 하느님을, 그리스도를 만날 때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시선은 보이는 대상들을 넘어

끊임없이 영원하신 사랑의 그분을 향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가나안 부인은 직감적으로

영원한 파트너이신 주님을 알아채고

마음을 활짝 열고 집요하게 매달립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의 모범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말 그대로 간절하고 절실한 어머니의 기도입니다.

마귀 들린 딸이 없었다면

평생 영혼의 반려자 주님을 이렇게 찾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귀 들린 딸은 가나안 부인에겐 저주가 아니라

주님을 찾는 축복의 계기가 됐음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은 한 술 더 떠 저 여자를 돌려보내라고 아우성입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 되었을 뿐이다.”

 

참 냉정하신 주님이요 절망적 상황입니다.

이럴수록 기도의 끈을, 하느님 끈을 놓아선 안 됩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절대로 실망해선 안 됩니다.

여자는 재차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며 애원의 기도를 바칩니다.

땅까지 내려온 겸손입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상황이 간절하고 절실할수록 기도는 짧고 진실합니다.

참 겸손한 기도입니다.

재차 주님의 답변 역시 절망적이요 모욕적입니다.

 

“자녀들의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

 

자신을 강아지에 견주니 모욕의 극치입니다.

이에 좌절할 가나안 여인이 아닙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겸손한 자를 이길 자는 세상에 없습니다.

사막의 교부, 마카리오를 끊임없이 유혹하던 사탄이 나중에

‘나는 네가 하는 것을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네 겸손만은 도저히 따를 수 없다.’ 며 마카리오에 손들고

물러가는 모습이 생생합니다.

가나안 여자의 믿음에 감동하신 예수님의 지체 없는 치유 선언입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합니다.

땅바닥의 아래에서 겸손한 믿음으로 주님을 만난 가나안 여자입니다.

개방, 항구함, 겸손으로 특징지어 지는 믿음입니다.

새삼 삶의 깊이는 믿음의 깊이요 겸손의 깊이이며

이 깊이에서 만나는 주님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 당대에 이 가나안 여자처럼

참으로 깊이에서 주님을 만난 이들 극히 드물었을 것입니다.

겉으로야 똑같은 사람이지만

주님과의 내적 깊이의 관계는 천양지차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파트너이신 하느님을, 그리스도를 잃으면 다 잃는 것입니다.

 그 공허와 허무, 무의미의 짐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영원한 파트너인 그분과 사랑의 관계를 깊이 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모두입니다.

바로 1독서에서

예레미야가 우리의 영원한 파트너인 그분을 잘 묘사합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칼을 피해 살아남은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입었다.

  이스라엘이 제 안식처를 찾아 나섰을 때,

  주님께서 먼 곳에서 와 그에게 나타나셨다.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리하여 너에게 한결같이 자애를 베풀었다.”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한결같이 자애를 베푸시는 우리의 영원한 파트너인 하느님이십니다.

이런 하느님과의 관계가 참으로 깊었던

성 요한 마리 비안네 성인이셨습니다.

오늘 성 요한 마리 비안네 사제의 축일 미사에

그분이 즐겨 바치셨던 ‘사랑의 기도’를 소개합니다.

 

 

“저의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나이다.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오로지 하느님만 사랑하기를 바라나이다.

 

  한없이 좋으신 하느님, 하느님을 사랑하나이다.

 

  한 순간이라도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사느니보다

 

  하느님을 사랑하다 죽기를 바라나이다.

 

  저의 하느님, 하느님을 온전히 사랑하나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따스한 위로가 없기에 저는 지옥이 두렵나이다.

 

 

  저의 하느님, 순간순간마다 제 혀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어도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제 마음이 주님을 사랑한다 말하기를 바라나이다.

 

 

  하느님을 사랑하며 고통 받고

 

 

  고통 받으시는 하느님을 사랑하며

 

 

  어느 날 하느님을 사랑하다 죽는 은총을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느끼며 죽는 은총을 허락해 주소서.

 

 

  제 인생 막바지에 다가갈수록

 

 

  하느님을 향한 제 사랑을 더하고 채워 주소서.”

 

오늘도 우리의 영원한 파트너이신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와 하나 되기 위해 오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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