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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철학자가 꾸란의 말씀을 무시하였다---<마스나위> 중에서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11 조회수415 추천수3 반대(0) 신고
어느 날 한 사람이 꾸란에서 “물이 땅에 스며드는 것을 내가 막았다. 나는 땅 속 깊이 물을 숨기고 샘을 말려 사막처럼 만들겠다. 나 외에 누가 샘에서 물이 솟아나게 할 수 있겠는가? 은총과 위엄 면에서 나와 견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하는 구절을 읽고 있었다.
그 때 한 철학자가 지나가다가 이 암송을 듣게 되자
“그래서 땅을 깊이 파서 물을 얻지 않는가? 사람들이 삽과 도끼를 이용하여 우물을 발견하면 땅 속에서 물을 끌어 올리지 않는가?”하고 말했다.
그날 밤 그는 사자같이 생긴 사람이 와서 주먹으로 때려서 그를 눈멀게 하려고 하면서 말했다.
“만약 네 말이 사실이라면 이 빛의 샘인 눈이 너를 인도하여 빛을 파게 할 것이다!”
철학자는 깜짝 놀라서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그의 눈이 멀게 되면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관대한 분이시므로 시력을 되찾으려면 용서를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용서를 구하는 것조차도 우리 손에 달려 있지 않다.
공부를 많이 했다거나 수행(修行)을 열심히 했다고 해서 깨달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느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그의 행동 때문에 바로 회개하지 못하고 그의 마음은 점점 더 돌처럼 완고하게 되었다. 돌 안에서는 회개의 씨앗이 자랄 수가 없는 법이다.
 
산을 비옥한 땅으로 바꾸려면 어디서 예언자 쇼아이브(Shoaib)를 만나고 진심 어린 그의 기도를 들을 수 있을까?(무슬림에서는 쇼아이브를 모세의 장인 이트로(Jethro)로 알고 있다)
아브라함은 그의 확고한 믿음 때문에 불가능하게 보였던 것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한 콥트(Copt) 족이 무함마드에게 도움을 청하자 돌 밭을 비옥한 땅으로 바꾸어 주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믿음을 거부한 사람에게는 금을 구리로 바꾸고 평화를 전쟁으로 바꾸어 낙담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비옥한 땅을 불모의 땅으로 바꾸어 불행을 안겨주었다.
모든 사람이 하느님 앞에 꿇어 엎드리는 것은 아니며 간절히 은총을 바란다고 다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똑똑히 알아라!
회개하면 구원을 받게 된다.”고 생각하며 쉽게 죄를 짓지 말아라!
회개하려면 물과 불이 필요하다(물로 세례를 받아야 하고 하느님을 만나야 한다).
먼저 먹구름과 번개를 만나야 한다(심한 고통을 겪고 수난을 받고 박해를 받아야 한다).
과일이 익으려면 물과 많은 빛이 필요하다. 과일들도 먹구름과 번개를 만나고서야 과일 구실을 할 수 있게 된다. 눈물을 흘려보지도 않고 또 네 마음에 밝은 빛도 없이 어떻게 너의 분노의 불길을 끌 수 있겠는가? 하느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자랄 수 있겠는가?
어떻게 순수한 샘물이 흐를 수 있겠는가?
화단(花壇)이 풀에게 어떻게 느끼느냐고 물을 수 있겠는가?
재스민 나무가 어떻게 보라색을 띨 수 있겠는가?
플러타너스 나무가 손바닥을 펴서 어떻게 기도할 수 있겠는가?
다른 나무들이 술 취한 사람처럼 어떻게 기대고 흔들릴 수 있겠는가?
하느님께서 역사(役事)하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꽃잎이 떨어질 수 있겠는가?
어떻게 새빨간 튤립이 그렇게 선명한 색깔을 보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장미는 그렇게 단단히 닫혀 있는 지갑에서 금을 빼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소쩍새가 장미 냄새를 그렇게 잘 맡을 수 있겠는가?
진리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처럼 비둘기도 ‘구구구’하며 우는데 이는 ‘어디에, 어디에’라는 뜻이다(페르시아어의 ‘koo koo’는 비둘기 울음 소리도 되지만 ‘where’라는 뜻도 있다. 루미는 ‘하느님, 어디에 계십니까?’하고 들리는 것 같았다. 마치 우리나라의 시골에서는 소쩍새가 울 때 ‘어찌 살꼬, 어찌 살꼬’하고 우는 것처럼 들리는 것과 같다).
어떻게 황새가 ‘라크 라크’하고 울면서 내 친구들을 부를 수 있겠는가?
(아랍어 ‘lak’는 황새의 울음소리도 되지만 ‘is yours/thine’의 뜻도 갖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모든 것은 ‘하늘나라와 하느님은 너희의 것이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마음에 있는 비밀을 어떻게 땅이 보여줄 수 있겠는가?
하늘이 없으면 어떻게 과수원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모든 신기한 탈바꿈들을 누가 만들었겠는가?
바로 가장 고귀하고 가장 자비심이 않으신 분이 역사(役事)하신 것이다.
이 모든 기적들은 하느님께로 갔다가 다시 부활한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다.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지만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은 기쁨에 가득 차 돌아온다는 것이 그 증거이다. 신비주의자들은 태어나면서 하느님께 ‘유일 신’이라는 것을 고백할 때 주님을 뵐 수 있었고 그 즉시 황홀경에 빠졌다. 하느님께서는 포도주를 마셔보셨기 때문에 그 냄새를 아신다. 마셔보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진리를 말씀하실 수가 있겠는가? 외국에서 오는 지혜도 본래는 무슬림의 지혜였으므로 진리를 피하지 말고 그 지혜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지혜는 안내자처럼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보여줄 것이다.
너희는 은총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인자하신 얼굴을 하고 계시는 어떤 사람을 꿈꾸고 있다.
“단 한 번만 이 은총의 징표를 보기만 해도 너희의 꿈은 실현될 것이다. 그리하여 내일 한 사람이 너희에게 올 것이다. 그는 말을 타고 한결 같은 발걸음으로 다가 올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에게 오게 되면 두 사람은 포옹을 할 것이다. 다른 징표는 너희 가까이 오면 그의 두 팔을 십자가 모양을 한 채 그가 웃음지을 것이라는 것이다.
다음 날에 너희가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하느님께서 즈카르야에게 명하셨다.
“사흘 동안 너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너는 이 말을 명심해야 한다! 사흘 밤낮으로 침묵하면 사람들 중의 별인 요한이 태어날 것이다. 침묵이 지옥까지 전해져야 하기 때문에 아무에게도 한 마디도 하지 말라. 이런 사실을 전혀 말하지 않도록 하여라!
마음 속에 간직하고 숨겨라!”
너희는 그 다음에는 다른 표징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수 백 개의 표징을 더 갖고 있으므로 이들 표징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징표들은 너희가 하느님께 지위와 힘을 간청하면 하느님께서 주신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너희는 곧 잠자지 않고 밤새 울고 난 다음 새벽에는 무척 배고픔을 느낄 것이다. 너희의 낮은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에 어둠으로 바뀔 것이다. 그런 다음 너희 목이 가느다랗게 되기 시작할 것이다.
순종하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들처럼 너희가 원치 않던 것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는 건강과 잠을 잃게 될 것이다. 머리카락처럼 가늘어진 너희의 머리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향처럼 오랫동안 불 속에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헬멧처럼 칼날 앞에 머리를 숙일 것이다!” 그들은 무기력하게 그리고 궁상맞게 행동하면서 영원히 슬퍼할 것이다.
 
이러한 꿈을 꾸고 난 아침에 희망을 통하여 다음 날에는 승리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너희는 좌우를 살피면서 “어제 밤부터 이러한 징표는 과연 어디에서 왔을까?”하고 궁금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뭇잎처럼 떨면서 “아, 징표를 보지 못한다면 오늘도 그냥 덧없이 지나가버릴 것이다!”하고 말할 것이다. 너희는 송아지를 잃고 절망하고 있는 사람처럼 온 세상을 쥐 잡듯이 찾아 헤맬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너희에게 물을 것이다. “왜 이리저리 쫓아다니느냐? 누구를 잃었느냐?
언제 잃었느냐?”
그러면 너희가 대답할 것이다.
“모든 일이 잘 되어 가지만 아무도 나에게서 놀라운 소식을 듣지 못할 것이다. 만약 내가 당신에게 말하면 어렵게 나에게 찾아온 징표가 사라져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징표가 사라진다면 내가 죽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너희가 모든 말 탄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 되면 그들은 너희에게 “야, 이 미친 바보야! 그렇게 뚫어지게 보지 말아라. 멀리 보아라!”하고 외칠 것이다. 그러면 너희는 “훌륭한 분이시여, 저는 친구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친구를 찾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제발 당신의 가장 고귀한 행운이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제발 이제 저를 용서하시어 이 불쌍한 연인에게 자비를 베푸소서!”하고 말할 것이다. 너희가 열심히 찾으면 보람이 있을 것이다. 노력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러면 갑자기 말을 탄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이 거룩한 사람은 너희 가까이 와서 너희의 지혜와 감정을 잃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은 “진짜가 아니야!”하고 말할 것이다. 그 무지한 사람들이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것과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을 어떻게 알겠는가? 기적은 기적을 알아보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기적이 보이겠느냐? 목마른 물고기가 물을 만나듯 하느님의 기적이 일어날 때마다 이를 보는 사람들의 영혼은 어김없이 되살아났다.
이러한 기적들이 꾸란에 기록되어 있고 이 기적들에 따라 우리들이 인도되었다.(꾸란 10:1)
예언자가 일으킨 기적은 깨달은 사람들만이 알 수가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믿기 어려운 것인데도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함을 용서하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 누가 모든 원자들을 셀 수 있겠는가? 부질 없는 짓이다. 특히 사랑에 빠졌을 때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그런데 공원 안에 있는 수많은 잎들을 내가 어떻게 셀 수가 있겠는가? 새의 울음소리를 내가 어떻게 셀 수 있겠는가? 내가 비록 이러한 것들을 셀 수는 없지만 이러한 시험을 겪는 사람들을 인도하려고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목성의 행운과 토성의 불행을 어느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아무도 두 별의 위력을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목성의 행운과 토성의 불행은 사람들이 이득을 보게 하거나 손해를 보게 하는 등으로 설명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하여 주님의 섭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목성을 조상으로 가진 사람은 더 행복하게 느끼고 빛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토성을 조상으로 하고 있는 사람은 매사에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내가 그에게 토성의 불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는 가난하고 쓸모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불로 세례를 받는 것을 보시고 “너희들은 하느님을 찬양해야 할뿐더러 하느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희들이 열심히 나를 경배하고 믿지만 아직도 나를 제대로 모른다. 그리하여 너희는 환상에 빠져 환상 속에서 나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꾸란 33:41)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당신의 빛을 보내신 것이다.
겉으로만 하느님을 잊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하느님은 베를 짜는 사람이 아니다.”고 말할지 모르나
이는 하느님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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