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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15 조회수761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Blessed are you among women,
and blessed is the fruit of your womb. 
(Lk.1.42)
 
 
 
제1독서 요한 시시록 11,19ㄱ; 12,1-6ㄱ.10ㄱㄴ
제2독서 1코린토 15,20-27ㄱ
복음 루카 1,39-56
 
 
1914년 12월,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의 실험실이 화마로 인해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그날 밤, 에디슨은 평생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발명품들이 일대 장관을 이룬 불꽃 속으로 사그라지는 것을 담담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요. 훗날 에디슨의 아들 찰스는 그 순간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때 아버지는 이미 67세 노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눈앞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그냥 그대로 수용하는 분이셨어요.”

다음날 아침, 에디슨은 잿더미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어젯밤 화재도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아. 이것 봐. 내가 그동안 만들어 온 오류와 실수를 모조리 깨끗하게 태워 없애지 않았나.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디슨은 화재의 열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축음기 발명에 집념을 불태웠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에디슨과 같은 상황이 내게 주어진다면 어떠했을까요? 나의 모든 것이 다 없어지는 상황을 과연 수용할 수 있을까요? 그 심각한 상황 자체에 짓눌려 아무 것도 하지 못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그 상황을 오히려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 수용했기에 더욱 더 훌륭한 위인으로 기억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이렇게 최악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로인해 모든 이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분이시죠. 바로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모님이십니다. 열다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예수님 잉태소식을 듣게 되지요. 아직 남자를 모르는 상태인데 그것도 당시에는 처녀가 아기를 갖게 되면 돌에 맞아 죽어야만 하는 상황을 어떻게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기를 잉태했다고 사람들에게 말한들 과연 믿을까요? 신심 깊은 요셉 성인조차도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어 파혼을 결심하지 않았습니까? 따라서 예수님을 잉태했다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기에 수용하십니다. 바로 엘리사벳 성녀께서 말씀하셨듯이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굳게 믿으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께서 이끄신 그 모든 상황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시는 성모님이시기에, 오늘 우리가 기념하듯 하늘나라로 직접 불림을 받아 오르실 수 있었던 것(성모승천)입니다.

성모님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내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반성해보았으면 합니다. 주님께서 이끄신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적인 관점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때 그 어떠한 상황도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을 통해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는 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의 완전함보다 현명한 사람의 실수가 자신만의 규칙을 만든다(윌리엄 블레이크).




길이 보이지 않을 때(유관호, ‘씨앗 이야기’ 중에서)

갠지스강의 발원지 고묵에 갔다가 터버번(Taboban)에 올랐을 때였다. 현지인 친구의 도움으로 별 탈 없이 오를 수 있었는데 문제는 혼자 내려오는 길이었다. 타박타박 산 길을 내려가다 보니 길이 두 개로 갈라져 있었다. 한 길을 택해 한참을 가는데 길이 좁아지더니 모퉁이를 돌자 길이 사라졌다. 내려갈 때는 분명히 있을 것 같았는데, 다시 되돌아 나오려니 길이 가파르고 보이지 않았다. 졸지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디에선가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내가 있는 높이의 건너편 산 중턱쯤에 10여 명 정도의 트래킹 그룹이 일렬로 서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내가 갈 방향을 알려 주었다. “왼쪽으로, 세 걸음!”

‘왼쪽으로? 말도 안 돼.’ 그쪽은 낭떠러지였다.

내가 망설이자 몇 사람이 같이 외쳤다. “왼쪽으로 한 걸음!”

내가 그들을 믿고 용기를 내어 한 걸음을 옮기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결국 그들은 끈기 있게 나를 설득시켰고 덕분에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몇 발짝 돌아서면 보였을 그 길이 그 순간 내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대부분 문제에 깊숙이 빠져 있는 나에게는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살다가 길이 보이지 않으면 주저앉지 말고 고개를 돌려 주위를 한 번 볼 수 있는 용기를 내자고 다짐한다. 나를 위해 소리치는 그 말에 귀 기울여 보자고 말이다.
 
 
 
 
Ave M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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