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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19 조회수997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8월 19일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My friend, how is it that you came in here
without a wedding garment?'
(Mt.22.12)
 
 
 
제1독서 에제키엘 36,23-28
복음 마태오 22,1-14
 
고해성사를 주다보면 진한 감동을 주는 신자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죄를 고백하는데 무슨 감동을 줄까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회개는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같은 사람도 이러한 감정을 느끼는데,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시는 하느님의 눈에는 진실된 회개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예뻐 보이시겠습니까?

하지만 반대로 고해성사를 주다보면 짜증이 나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특히 “사는 게 다 죄지요.”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모든 죄를 여기에 묻어두려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리고 “저 같이 평범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얼마나 짓겠습니까?”라면서 스스로 의로운 사람인양 말할 때에는 왜 고해소에 들어오셨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로 희한한 것은 삶을 더욱 성실히 살고 정직하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일수록 죄 고백하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이러한 예를 통해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는 방에 더러운 쓰레기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그 쓰레기가 잘 보일까요? 안 보일까요? 반대로 방이 더럽고 정리정돈이 전혀 안 되어 있다면 쓰레기 하나 떨어진다고 한들 티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처럼 내 마음이 깨끗하고 잘 정리정돈 되어 있다면 그만큼 죄가 잘 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도 성실하게 잘 사는 것 같은데도, 고해소에 한 번 들어가면 그곳에서 오래 머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마음속에 있는 작은 쓰레기라도 치워버릴수록 더욱 더 주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의 비유말씀을 해주십니다. 혼인잔치에 초대한 임금에 대한 이야기이지요. 먼저 임금은 아들의 혼인잔치에 사람들을 초대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초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일 하기에만 바쁩니다. 밭에 나가고, 장사를 하러 가는 등 세상일에 신경 쓰면서 임금 초대를 무시해버리지요.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상으로 광범위하게 당신 나라로 부르시는 주님이신데, 우리는 그 초대에 얼마나 성실하게 응답하고 있었을까요? 그 초대보다 세상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러한 사람들을 향해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의 대상이 바로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잘 이해되지 않는 한 가지가 나옵니다. 아무나 불러놓고서는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쫓아낸다는 것입니다. 이 예복은 회개의 옷을 의미합니다. 이 사람은 주님의 은총을 즐기러만 왔을 뿐, 혼인잔치를 축하하지도 그리고 주인을 경배하지도 않았기에 회개의 예복을 입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쫓겨났던 것입니다.

주님의 잔치에 초대된 우리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초대에 기쁜 마음으로 응답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며, 그리고 잔치에 어울리는 회개의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단순히 잠깐 즐기려는 마음으로 그 잔치에 들어간다면, 또한 나중에 가면 되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아예 초대에 응하지 않으면 쫓겨날 수밖에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꼭 선택받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불행이 닥칠 때에는 그 불행을 뒤엎을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물어보라(에픽테토스).




대박과 쪽박의 차이(심현수, ‘꿈은 기회비용을 요구한다’ 중에서)

내 생애 첫 사업을 적자로 접을 수는 없었다. 나는 어떻게든 회생할 수 있는 기회를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시험장으로 다 들어간 상황이라 더 이상 교문 앞에는 사람들이 오가지 않았다.

나는 토익 시험을 치르는 교실로 들어가 연필을 팔 결심을 했다. 시험 시작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고 게다가 고객들이 한 곳에 모여 있기까지 하니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다. 교실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시선이 모두 나를 향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시험 감독관이 물었다. “연필 팔러 왔습니다.” “여기서 그러시면 안 돼요.” “아, 죄송합니다.”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나는 선생님에게 혼난 학생마냥 한마디도 못하고 교실 밖으로 나왔다.

잠시 뒤 사람들이 한두 명씩 운동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험 시작 직전에 짬을 이용해 담배를 피우러 나온 것이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외쳤다. “토익 만점자가 파는 연필입니다! 이 연필로 체크하면 찍어도 맞아 운수 대통합니다. 제가 파는 연필은 끝이 뭉툭해서 한번 쓱 내리그으면 0.01초도 안 걸립니다. 단돈 천 원! 선착순 열 분께는 따뜻한 커피까지 드립니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한 명, 두 명 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모조리 팔아버렸다. 교문 앞에서 오백 원에 판매하던 연필을 천 원이라는 두 배의 가격을 주고도 사람들은 행복해했다. 그들은 연필이 아닌, 연필이 전하는 가치에 돈을 지불한 것이다. 안 팔리는 물건은 없다. 팔지 못하는 판매자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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