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기복신앙을 믿는 것은 길을 잃었다는 증거이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19 조회수579 추천수4 반대(0) 신고
어떤 종교를 믿든 기복신앙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기복신앙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만 하고 하느님께 자신을 맡기려고 하지 않는다. 즉 ‘하느님의 뜻’ 대로가 아니라 ‘자기의 뜻’대로만 살려고 하면서 그만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어둠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두움을 만나면 빛이 되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더 우울해지는 것 같다.
어두움은 블랙홀처럼 모든 빛을 흡수해버린다. 그리스도께서도 죽으심으로써 어둠을 이기셨다. 어둠은 정말로 무서운 것 같다. 어두움에 있는 사람이 좀처럼 어두움에서 빠져 나오기 어려운 것은 이 때문이리라. 마귀의 소굴에 빠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많은 목자들은 어디로 가고 길 잃은 양들만 우글거리고 있는가? 
 
『수행의 길(Way of the Ascetics)』은 거룩한 교부(敎父)들의 가르침을 토대로 하여 수사(修士) 및 수녀들뿐 아니라 평신도까지 스스로 정진하면서 진정으로 하느님께 다가서기 위한 지침을 주로 담고 있다. 저자인 티토 콜리안데르(Tito Colliander, 1904-1989)는 핀란드 출신의 문학가로 인생의 전반기에 주로 문학과 예술을 공부하고 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2차 세계대전을 통하여 많은 회의와 절망을 경험한 뒤 40대 후반에 동방정교(東方正敎)에 기초한 신학을 다시 공부하여 많은 신학적 저술 작품을 남겼는데 『수행의 길』도 이들 중 하나이다.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고 금욕에 가까운 생활과 마음 자세를 통하여 하느님께 다가서는 방법을 동방정교회의 여러 교부들의 가르침에 기초하여 서술하고 있다. 설령 우리가 『수행의 길』에서 가르치는 엄격한 지침들을 모두 따르지는 못하더라도 가능한 자주 읽으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지침서로서는 참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부정과 복종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자기부정의 핵심은 육(肉)의 행복이나 영(靈)의 행복에 집착하지 않으면 저절로 우리들에게 평화가 찾아온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하느님께로 다가서기 힘든 것은 자신의 의지로 무엇을 이루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되고, 이러한 의지를 하느님께 위탁하지 않으면 하느님께 다가서는 데 오히려 장애물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앞 부분을 전재한다
 
《네가 만일 네 영혼을 구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하면, 잠에서 깨어나 십자 성호를 긋고 이렇게 말하여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믿음은 생각을 많이 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 생기므로
우리는 숱한 말과 잡다한 사색(思索)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서 비로소 하느님을 알 수 있게 된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려면 창문을 열어야 하고, 살갗을 태우려면 밖에 나가 햇볕을 쪼여야 하듯, 믿음을 성취하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기에, 거룩한 교부들은 편히 앉아 기다리기만 해서는 도무지 뜻하는 곳에 이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돌아온 둘째 아들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그는 거기를 “떠나”, 제 아버지 집으로 “발 길”을 돌렸다.(루카15:20)
너는 세속에 빠져, 무거운 마음 때문에 심란하기조차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더 지체해서는 안 된다.
아브라함이 길을 떠날 때 나이 일흔 다섯이었다는 이야기는 까닭 없이 써 있는 게 아니며, 가장 나중에 와서 일하고도 가장 먼저 온 사람과 똑같은 품삯을 받은 일꾼의 이야기도 괜히 하신 이야기가 아니다.
아직은 너무 일러 여유가 있다고 생각지 말아라. 산불은 늦으면 끄지 못하는 법이다.
너는 네 영혼이 불에 타 시커먼 숯덩이로 폐허가 되는 것을 볼 셈이냐?
거룩한 세례를 받을 때, 너는 네 영혼의 원수를 맞아 눈에 보이지 않는 싸움에 나설 것을 명령 받았으니, 지금 곧 결행하여라. 너는 너무 오랫동안 빈둥거리다가 냉담과 나태로 허약해졌으며, 너무도 많은 시간을 쓸데없이 허비해 버렸다. 따라서 너는 악습(惡習)으로 흉하게 된 네 모습으로부터 세례 때 이미 온전히 정화(淨化)되었기 때문에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므로 박차고 일어나라. 지체하지 말고 지금 즉시 결행하여라. “오늘밤부터는”, “내일은 꼭”, “다음에,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만 끝내고” 하면서 네 목표를 미루지 말아라.
그러는 틈새로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 끼어드는 법이다.
지금 이 순간 네가 굳게 결심하는 바로 지금,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새 생명의 길을 향해 네 옛 자아(自我)를 떨쳐버리고 즉각 새 삶을 시작했던 그 행동을 다시금 보여라.
그러므로 겁내지 말고 일어나, ‘주님, 저를 도우시어 지금 곧 시작하게 하소서.’하고 기도해야 한다. 네게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도움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서 속히 네 목표를 향하여 가고, 뒤를 돌아보지 말아라. 우리는 롯의 아내에게서 경고의 실례(實例)를 보았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지 않았던가?
네 옛 인간성을 벗어버리고, 하찮은 쓰레기들을 내버려라.
아브라함처럼 너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니,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창세기 12:1)
그 땅을 향하여, 지금부터 너는 네 모든 주의를 집중시켜야만 하리라.
 
거룩한 교부들의 한결같은 말씀은, 마음을 지킴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낮추는 일이라 하셨다. 지금 네가 벌이고 있는 이 싸움은 너무나 어려워서 네 자신의 인간적 능력만으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다. 가령 네가 네 자신의 능력에만 의존한다면 얼마 못 가 땅에 엎어져 더는 싸워볼 마음도 없어지고 말 게 되니, 오직 하느님께 의지하여라. 그러면 오로지 하느님만이 네가 바라는 승리를 주실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척 어렵겠지만 그것은 기어이 극복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앞으로 나아갈 가망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가령 자신이 모든 걸 안다고 굳게 믿고 모든 걸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하면서 아무런 가르침도 바라지 않는다면 그런 자가 어떻게 충고를 받아들이고 지도를 받겠으며 도움을 청할 수 있겠느냐? 그 같은 자의 두터운 벽을 뚫고 들어갈 빛은 애당초 없다.
불행하여라,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들 자신을 슬기롭다 여기는 자들!” 이사야 예언자는 이렇게 부르짖었고(이사야 5:21), 바오로 사도도 경고하시기를 “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하셨으니(로마 12:16), 하늘 나라는 철부지 같은 어린이들에게 계시되었고, 슬기롭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다.(마태오 11:25)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이 엄청나게도 완고한 마음을 비워내지 않으면 안 된다. 실로 이런 생각이 얼마나 우리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지는 눈치조차 채지 못할 만큼 깊게 뿌리 박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우리의 이기주의이며, 우리의 영혼과 육신마저도 구속하며, 부자유스럽게 하며, 실망시키고, 괴롭히는 자기중심주의와 자기애(自己愛)이다.
그러므로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네가 얼마나 자신의 기분대로만, 단지 네가 되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똑똑히 보아라. 네 자유는 자기애라는 포승 줄에 묶여 있으며, 그러한 너는 손발 묶인 송장 마냥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리저리 떠돌아다닌다.
지금 나는 마실 테다, 지금 일어나야지, 이제는 신문을 읽자 이렇게 말하며 너는 자아라는 고삐에 매여 이리저리 끌려 다니지만 곧 불만으로 몸이 달아 안달하다가 조그만 방해라도 받게 되면 곧 분통을 터뜨리고 만다.
만일 네가 네 의식을 깊게 세밀히 들여다본다면 그런 너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네게 반대하면 곧 불쾌해지는 네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비록 우리는 이렇게 노예로서 살고 있지만 주님의 성령이 계시는 곳에는 자유가 있다.(2코린토 3:17)
그 같은 에고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데 무슨 착한 일을 할 수 있겠느냐?
주님께서는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모든 것 위에 하느님을 받들어 사랑하라고 이르시지 않았느냐? 그럼에도 우리는 어떠하냐? 우리 마음은 그렇게 하는 대신에 언제나 자신의 건강과 행복과 안일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아니하냐?
그렇다. 네 자신에게서는 아무 선한 것도 나올 수 없음을 깨달아라.
간혹 어쩌다 네 안에서 사심(私心) 없는 기특한 생각이 나면, 그것은 네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선(善)의 샘에서 솟아 오른 것으로, 네게 은총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것은 생명을 주시는 분에게서 오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좋은 뜻을 실천할 수 있는 힘 또한 네 힘이 아니라 거룩한 삼위일체께서 네게 주신 능력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