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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1주일 / 좁은 문 글 : 이기양 신부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21 조회수593 추천수7 반대(0) 신고



좁은 문


죽어서 연옥에 가게 된 자매가 사방을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곳에 본당 신부님이 계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뜻밖의 장소에서 신부님을 뵙게 되자 어찌나 반가웠든지 큰소리로 인사를 하였습니다.

  "아이고 신부님, 저는 신부님께서 계시던 본당의 신자였답니다.
그런데 이런 곳에 신부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혹시 잘 아는 신자 방문이라도 오셨습니까?"


  그러자 신부님이 황급히 자매의 말을 막으며 속삭이는 것이었습니다.

  "쉿! 조용히 하세요. 옆에 주교님께서 쉬고 계십니다."

  물론 웃자고 지어낸 이야기이지만 그 안에 중요한 메시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단지 우리가 신자라는 이유로, 또 신부라는 이유만으로는 천당에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직위보다는 복음적인 삶이 더 중요하다는 심오한 가르침이 짧은 이야기 안에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4)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루카 13,26)하고 인간적 친분을 내세워 들어가려고 애원하지만 집 주인은 야박하리만치 문을 닫아 버릴 것입니다.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루카 13,27). 아무리 성직자와 수도자들과 친분이 있어도 악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말씀하시지요.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루카 13,30).

  대단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지금 첫째인 사람들은 유다 백성들을 뜻합니다. 하느님께 뽑혀서 첫째가 된 그들도 하느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 꼴찌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한편 이 말씀은 이방인과 세리들, 그리고 창녀들도 비록 그 출발은 늦었지만 하느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따른다면 첫째가 될 수 있다는 인생역전의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의 성공 기준은 자녀 교육을 얼마나 잘 시켜서 어떻게 출세를 시켰으며, 재산은 얼마나 모았으며, 얼마나 사회적 직위가 높은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 조건을 갖추면 첫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요 행복한 집안으로 통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에서의 기준은 세상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마음에 들고 첫째로 꼽힐 사람의 기준은 마태오 복음 25장 '최후의 심판'에 잘 나와 있습니다. 바로 가장 가난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가난한 사람을 도왔으며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느냐'하는 것이 하느님 뜻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신자이면서도 하느님 말씀이 아니라 이 세상의 관점을 지향해서 살아가며 그것밖에 모른다면 그는 세상에서는 첫째였을지 몰라도 죽어서 하느님 심판을 받을 때 꼴찌로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다면 혹시라도 세상에서는 덜 성공한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하늘나라에서는 첫째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의 아주 구체적인 예가 루카 복음 16장 '부자와 나자로의 비유' 말씀에 잘 나와 있습니다. 매일 호화롭게 먹고 입고 마시며 잔치를 벌인 부자는 자신의 재산만 믿고 살다가 죽어서 지옥으로 떨어지고, 부자의 집 앞에서 땅에 떨어진 음식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며 개들이 종기를 핥던 거지 나자로는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다가 죽어서 천국에 들었습니다.

  세상의 기준과 하느님의 뜻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번번이 선택의 기로 앞에서 갈등합니다.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며, 힘없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함께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에서 첫째 되는 비결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료 : -서울 대 교구 이기양 신부-






좁은 문, 생명의 문 구원의 문


요즘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 대안교육에 대해
연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여러 대안학교를 비교 연구하던 중 특별한 한 학교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학교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 교육이념에 충실한 학교였습니다. 그리고 학생 개개인이 처한 상황과 적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학교였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높은 대학합격률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특별한 학교였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선생님들의 강한 소명의식과 끊임없는 헌신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학교를 소개하는 소책자를 읽다가 '직업선택의 십계'란 항목이 유난히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①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②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③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④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⑤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⑥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⑦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⑧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⑨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의심치 말고 가라.
⑩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한마디로 요약해서 '좁은 문'을 선택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권고하십니다. '왜 하필 좁은 문입니까? 예수님은 왜 우리를 좀 편하게 두지 않으십니까?'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가 좁은 문을 선택해야 하는 까닭은 그 문이 생명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넓은 문을 포기해야 하는 까닭은 그 문이 멸망의 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넓은 문은 누구나 꿈꾸던 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추종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넓은 길을 선택함과 동시에 넓은 예루살렘 성문을 당당하게 통과하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한평생 넓은 문이 아니라 좁은 문을 선택하셨습니다. 영예스런 문이 아니라 고통스런 문을 선택하셨습니다. 가파르고 좁고 험한 길인 십자가 길, 치욕과 죽음의 길인 십자가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평생 예수님 길은 좁은 문의 연속이었습니다. 좁은 문만이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문, 생명에 이르는 문, 생명을 구하는 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인생여정의 각 단계 앞에 놓인 많은 문을 통과할 때마다 우리는 문 크기에 절대 연연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문이 우리를 어떤 곳으로 이끄는가에 관심을 집중시켜야 하겠습니다.

문 크기나 외적 화려함에 절대로 현혹되지 마십시오. 문이 얼마나 비싼 문인지에 마음이 끌리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보다는 문의 종착점을 보십시오. 거기에 우리 삶의 최종목표이신 주님께서 계시는지를 보십시오.

우리가 끊임없이 넓은 문을 포기하고 좁은 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좁은 문은 주님께서 통과하신 문이며, 좁은 문 그 너머에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좁은 문은 비록 고달프고 자주 포기하고픈 문이지만 결국 그 문만이 영생의 문이며, 구원의 문이며, 부활의 문이며, 천국의 문입니다.

사실 너무도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이시기에 우리 앞에 펼쳐질 구원의 문은 넓기만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넓은 것은 아닙니다. 너무도 완고하고 자기주장이 강해서 예수님을 받아들일 여유가 조금도 없는 사람들, 과도한 욕심과 지나친 이기심으로 가득하여 터질 듯 한 영혼의 소유자들에게 구원의 문은 좁기만 합니다.

내 방식만이 최고라는 사람들, 자기주장을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관철시키려는 사람들, 언제나 사사건건 따지고 죽었다 깨어나도 용서하지 않는 사람들, 돈과 권력이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 영혼은 너무도 비대해진 나머지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것입니다.

반대로 매일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해 매순간 기꺼이 자신을 비워내는 사람들, 갖은 고통과 번민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과중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지만 매일 떨치고 기쁘게 일어서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문은 한없이 넓기만 합니다.

자료 : 평화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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