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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원의 문" - 8.2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23 조회수418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8.22 연중 제21주일

이사66,18-21 히브12,5-7.11-13 루카13,22-30

 

 

 

 

 

"구원의 문"

 

 

 

제가 면담 중 삶에 자신 없어 하는 분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잘 살고 못 살고는 차후 문제이고

  험하고 힘든 세상 끝까지 견뎌 살아내면 그 자체가 구원입니다.”

 

삶은 지상명령입니다.

이유 없이 무조건 살아내야 하기에 삶은 순종이라 말하기도 합니다.

며칠 전 묵상 중

이런 삶의 고백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좋다.”

“모두가 감사하다.”

“모두가 은총이다.”

 

결론하여 모두가 하느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매일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살아갈 때,

매일 첫 미사이자 마지막 미사처럼 봉헌할 때

저절로 위와 같은 고백이 나올 것입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매일이 좋은 날이요,

‘일일시신일(日日是新日)’ 매일이 새날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구원은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믿음입니다.

 

하느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십니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구원의 문입니다.

하느님은 차별 없이 모두에게 공평하십니다.

바로 세례 받아 미사에 참석하여 모두가 구원의 성체를 받아 모시듯

모두에게 열려있는 구원의 문입니다.

주님은 ‘나는 문이다.’라 하지 않습니까.

벽이 없이 동서남북 활짝 열려있는 구원의 문이신 주님이십니다.

끊임없이 구원의 문 활짝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리시는 주님입니다.

모든 사람의 구원은 하느님의 유일한 소원이자 기쁨입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을 선포하는 이사야 예언자요 예수님이십니다.

 

“나는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모으러 오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보리라.”

 

모두에게 활짝 열려있는 하느님의 구원입니다.

말씀대로 실현되어 우리 모두는 이 거룩한 미사에서 주님의 영광을 봅니다.

 

“나는 그들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을…

  나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내 영광을 본적도 없는

  먼 섬들에 보내리니 그들은 민족들에게 나의 영광을 알리리라.”

 

주님의 영광을 혼자 누리지 말고

주님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그 영광을 알리라는

복음 선포를 명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 역시 모든 이들의 구원이 성취된 그날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 사람들이 와,

  하느님 나라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이다.

  보라,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는 이들이 있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동서남북 사방 모든 이들에게 활짝 열려있는 하느님 구원의 문이요,

구원 받았다 교만으로 방심하는 이들을 분발케 하고,

구원 받지 못했다 자신 없어 하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바로 오늘 지금 여기가 구원의 때요 구원의 자리입니다.

모두가 좋고, 모두가 감사하고, 모두가 은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 때 주님의 구원체험입니다.

 

 

구원의 문은 좁은 문입니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구원의 문이 구원의 보편성을 뜻한다면

구원의 좁은 문은 구원의 특수성을 뜻합니다.

똑같은 구원의 좁은 문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 다른 그 고유의 좁은 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그 십자가가 다 다르듯 그가 통과해야 할 좁은 문도 다 다릅니다.

좋다 나쁘다, 작다 크다, 결코 비교할 수 없는 그 고유의 좁은 문들입니다.

 

십자가 수난 없이 부활의 영광 없듯이

시련과 고난의 좁은 문 없이 구원도 없습니다.

시련과 고난의 단련을 통해 깊어지는 삶이요 통과하는 좁은 문입니다.

자연의 이치도 이를 입증합니다.

화창한 봄, 꽃폈다하여 배열매가 아니라

여름 뙤약볕, 폭풍우의 온갖 시련을 통과했을 때

가을의 탐스러운 배 열매들입니다.

믿음도, 희망도, 사랑도 시련과 고난의 연단과정을 통해

거품은 걷히고 정화되어 순수한 진짜 믿음, 희망, 사랑만 남게 됩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래서 ‘불림 받은 사람은 많지만 선택된 사람은 적다.’ 하는 것입니다.

좁은 문 통과에는 등수도 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와 비교할 것도, 누구를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자기 페이스대로 좁은 문 넘어 주님만을 바라보며

시련을 잘 극복하고 완주하여 좁은 문 통과하면 구원입니다.

 

히브리서 말씀도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여겨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아버지에게서 훈육을 받지 않는 아들이 어디 있습니까?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이런저런 삶의 시련 후의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가

참 평화, 참 의로움의 열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평생 영적 훈련병입니다.

온갖 삶의 시련의 좁은 문을 통과할 때 구원이요,

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은

이런 시련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믿음을 주십니다.

 

 

마냥 열려있는 구원의 좁은 문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

꽃 필 때가 있으면 열매의 때가 있고

탄생의 때가 있으면 죽음의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를 알아 깨어 사는 게 지혜입니다.

구원의 좁은 문 역시 열려있을 때가 있으면 닫힐 때가 있습니다.

죽음의 때를 아무도 모르듯 좁은 문이 닫힐 때 역시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오늘 지금 여기서,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일생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막연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 빠진 무의미한 시련이요 고통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느님을 까맣게 잊고 자기 탐욕 따라 살다가

스스로 자초하여 겪는 시련과 고통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믿다가,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다가 겪는 시련과 고통만이

구원의 좁은 문 통과에 도움이 됩니다.

주님과 함께 외적 교회생활에, 수도생활에 충실했다 해도

주님과 코드를 맞추어 살지 않으면,

주님을 만나 알지 못하면 구원은 장담 못합니다.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닫힌 문을 열어 달라며 애원하는 이들에 대해

다음 주님의 냉엄한 말씀입니다.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

 

주님을 몰랐기에 불의를 일삼은 삶이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했지만 주님과 전혀 무관한

나만의 불의를 일삼은 삶이었습니다.

주님과 완전 불통의 내길(my way)만을,

좁은 문이 아닌 넓은 문을 추구했던 자업자득의 결과입니다.

하느님의 의를 실천하며 시련의 좁은 문을 통과할 때 구원이요,

이들에게 축복을 선언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진정 주님을 사랑할 때,

주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시련의 좁은 문도 너끈히 통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좋다, 모두가 감사하다, 모두가 은총이다, 고백할 수 있습니다.

밖에서야 좁은 문이지만 안에서는 하느님 감미의 넓은 문입니다.

분도 성인은 그의 규칙에서 이 경지를 다음처럼 고백합니다.

 

“수도생활과 신앙에 나아감에 따라 마음이 넓어지고

  말할 수 없는 사랑의 감미로써

  하느님의 계명들의 길을 달리게 될 것이다.”(RB머리49).

 

주님은 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하여

하느님 나라 미사잔치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축복을 주십니다.

 

“주님께 아뢰옵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16,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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