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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간단한 물음에 어떻게 받아들일까 [겸덕]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28 조회수407 추천수4 반대(0) 신고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십니다
 
<1 코린토서 1, 30>
 
 
 
물 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누구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까
 
우리에게 지혜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지혜는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
 
 
이 간단한 물음에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성경은 진정 어려운 말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복잡하게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단순한 영혼에는 이중성이 없습니다
 
복잡한 여러 신학적인 학설에 머리를 두고 지성의 영성을 얻으려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현존은 가려집니다. 하느님께 시선을 둔 '작은 자'가 아니라, 인간에게 시선을 두고 있는 '큰 자'가 되면 하느님의 신비는 가려지게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단순하고도 순수하게 볼 수 없으며, 복잡한 세상 지식으로 하느님의 마음(말씀)을 알려고 하는 일은 인간적인 어리석은 시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세속에 빠져 젖어 있는 인성(자아)로서는 성인들의 영성을 '진실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인들께서는 단순한 삶으로 살으셨습니다. 거기에서 깊은 영성이 나옵니다. 세속에 물든 자아(인성)는 단순한 것에 오히려 헤메이게 됩니다. 세속에 물든 자아는 단순한 것에 오히려 헤메이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 안에 오시어 사람을 성화(거룩) 시키심을 부인하고 그리스도가 아닌 인간(인성)을 통해 거룩해 지려는 인간 인성의 교만함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심을 진정으로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진정한 겸덕은 영혼의 눈을 돌려 그 초점을 자기 자신(인간적 인성)으로부터 떠나게 하는데 있습니다. '작은 영혼'으로 우리 영혼의 눈은 하느님께로 향하고 하느님의 사랑에 전적으로 의지(의탁)해야 합니다.
 
주님이신 예수님께 나아가기 위해 우선적으로 하여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인간)이 작아져야 합니다.
 
 
 
 

단순함이란

분리 되기 이전의 상태이다

그러나 분리 되어

하나의 연결점을 찾아

분리된 것을 합쳐 보려고 하는데서

더 복잡해 진다

 

 

하느님의 말씀과 행적의 이해는 인간의 세밀한 추론에 있지 않고 '진리(말씀)'에 대한 겸손한 믿음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전적인 믿음을 통해서만 그 이해가 가능해 진다는 의미이다. 아버지께서 사랑의 자비를 베푸신다는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당신께 가까이 오는 영혼들에게는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에게 약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사랑' (선하신 뜻)을 전적으로 믿는 것이 순수한 '작은 자' 이다. 하느님을 사랑할 능력은 미약하지만 성령께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열망하게 하심으로써 우리 영혼을 일깨워 주시는 것은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아버지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읽고 듣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세상의 중심'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자기가 구축시킨 세상의 온갖 생각(개념의 시스템)들이 자기 내면의 마음에 가득 채워져서 '하느님의 말씀'을 '있는' 말씀 그대로 볼 수 없다는 설명이다. 단순하고도 순수하게 깨끗이 정화된 아기의 마음으로만 '아버지의 말씀'을 올바로 보게 되어지는 것이다. ( 자기를 비워야 진리의 성령께서 머무르신다 )

아기 예수 데레사 성녀는 자기 자신이 작고 가련한 존재임을 깨달아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사랑이 커질수록 더욱 더 작고 미약한 사람 (작은 자)이 되려고 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데레사는 자기 영혼의 약점을 극복한 영혼들의 전형이 되었는데 이는 하느님께서 그녀의 영혼으로부터 발산된 사랑을 받으시겠다는 바람을 성녀의 마음 안에 심어 주셨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 영혼을 소유하고자 하신다는 것을 순수한 믿음으로 인정할 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의 미약하고 허약함을 변화시키시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뜻과 생각과 온갖 ''인간의 진리(인간의 계명)''으로 만든 개념(철학적 의심)들에서 빠져 나와야만 자신의 마음 안을 비울 수 있게 된다. 성모님의 마음도 티없이 깨끗하셨기 때문에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시길 바랍니다'' 하고 응답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성경 말씀은 단순하게 바라보면 명확하다. 단지 사람 자신이 단순한 길을 걸어가지 못할 때에 성경 말씀은 복잡해 지고 난해한 의문(질문) 속으로만 점점 빠져드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분석하고자 하여 분석되어져 그같은 연구 지식이 믿음으로 더 커지는게 아니라 풍랑을 만나서 오히려 ''의혹의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다른 종교에서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하게 되고 혼합(혼동)의 무질서 안에서 물음 속에 갇힌 자신은 그렇게 존재해 갈 뿐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흔들림없이 믿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신덕(믿음)으로 하느님과 우리 영혼 사이의 친교가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 조건이다. 데레사의 영혼은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 라고 아주 자연스럽게 불렀다. 성녀의 모든 영성생활의 토대는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며 이 믿음을 근간으로 삼아 ''겸손한 사랑''을 극기로 행함으로써 기쁨의 원천이 되었다.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데레사 성녀의 순수하고 진실한 믿음의 생애는 하느님께 사랑으로 그 은혜를 갚겠다는 단순하고도 청정한 열망으로 응답하였다. 성녀는 아기 처럼 자기 자신의 속마음을 이렇게 열어 보였다. "영혼이 어두운 밤과 시련 중에 있을 때에 ''아버지''를 부르며 하느님(말씀)을 섬기는 것은 정말 감미로운 일입니다" 시련을 통해 성녀의 믿음은 더욱 순수해 지고 단순해 졌다. 단순해짐으로써 다른 많은 이들이 단순함에서 벗어나 복잡한 길에서 흔들리고 있을 때에도 성녀는 잔잔하게 정진해 갔던 것이다. 

성경의 말씀에서 믿음이란 아버지께서 베푸시는 사랑에 대해 순진하고 확고한 신뢰성으로 그 마음의 주시(응시)함을 말한다. 인간이 자기 자만심(자기 뜻, 공명심)을 내세우는 한, 자비하신 아버지의 사랑 곧,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과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분석하고 연구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 속에 나타나 있는 ''아버지의 사랑''을 믿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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