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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8-29 조회수868 추천수15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22 주일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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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세계적인 명문대학교 옥스퍼드 대학교에 13살의 어린 나이에 입학하며 '천재'로 불리던 수피아 유소프( 당시 23세. 영국)가 성매매 여성으로 전락했다는 소식이 영국언론에 의해 보도되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소녀는 파키스탄인 아버지와 말레이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14개월 만에 알파벳을 깨치고, 3살 때 영어로 읽고 쓰는 능력을 갖춘 뛰어난 머리의 소유자. 이후 그녀는 ‘수학신동’으로 불리며 1997년 13세의 나이에 영국 명문 옥스퍼드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하지만 입학 후 2년 뒤 그녀는 가출하여 인터넷 카페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발견됩니다. 12일 만에 발견된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기를 강하게 거부하며 “아버지로부터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 받는 생지옥 같은 생활을 했다”는 발언을 남겨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성장하게 됩니다.

그녀는 이후 잠시 건설회사 직원으로 일하다가 옥스퍼드대학교에 같이 다닌 인연으로 당시 수습 변호사로 일하던 조나단 마샬과 결혼하지만, 그녀의 결혼은 13개월밖에 지속되지 못했고 이혼에 이르게 됩니다. 이혼후 유소프는 가족과 연락을 끊고 살았으며 최근 언론에 의해 맨체스터 인근 샐퍼드에서 시간당 130파운드(약 25만원)를 받는 매춘부로 일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영국의 언론들은 천재소녀였던 그녀의 몰락 이유에 대해서 아버지를 꼽았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3남매를 모두 명문대학교에 조기 입학시킬 만큼 비상한 교육법의 소유자였고, 자신의 교육법을 ‘학습가속화 기법’이라고 부르며 이 방법을 자녀들 학습에 유입시켰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녀의 아버지는 두 명의 10대 소녀에게 수학 학습방법을 가르쳐준다는 이유로 끌어들여 성추행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하였습니다.

유수프는 매춘을 위해 인터넷 상에 누드 사진과 함께 “매우 아름다운 몸매다. 32D사이즈의 가슴과 5피트 5인치의 키”라고 소개하는 문구를 실었습니다.

 

만약 유수프의 아버지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많은 어머니들이 그에게 자녀들을 맡겼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육열 세계 1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에도 이와 같은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코헬렛 12장 1절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젊은 날에 너희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오늘 예수님께서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은 것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우리 죽는 날에만 해당되지만은 않습니다. 바로 지금 하느님을 먼저 찾을 줄 모르고 세상에서 첫째가 되려고만 한다면, 꼴찌가 되어버리는 현실이 바로 우리 자신들에게 일어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거주하시며 조각과 그림의 작품 활동을 하시는 한 유명한 할머니 자매님을 만났습니다.

현재도 아르헨티나를 대표할 정도로 유명한 예술가이심에도 불구하고 매우 수수한 옷차림과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모습을 지니신 분이셨습니다.

그 분의 작품 주제는 나눔과 통합, 혹은 팽창과 수축이라고 하셨습니다.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이런 자연 안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주제를 어떻게 잡으셨는지 알지 못하지만, 나름대로 신학적으로 나눔과 통합, 팽창과 수축은 삼위일체를 비롯하여 그 모습을 지니는 세상의 모든 존재 안에 존재하는 신의 모습이라 잘난 척을 해드렸습니다.

즉,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한 분이시면서도 세 분으로 나누어지고 팽창하며, 사랑은 서로 하나가 되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이 세 분이 서로 수축하며 다시 하나가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분은 바로 당신이 표현하려고 하시는 것이 그런 것이었다고 기뻐하셨습니다. 그 분은 예술을 하시면서도 모든 것 안에 숨어계신 하느님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작품을 만들 때, 잘 될 때는 마음을 비우고 할 때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려는 의도를 지니고 할 때는 잘 되지 않던 것이, 마음을 비우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려고 할 때는 만족스런 작품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저도 강론이나 강의를 할 때도 마찬가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분의 예술이나 저의 강론은 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하느님이 아닌 내 자신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숨어있을 때는 만족스런 예술작품이나 강론이 되지 못합니다.

즉, 하느님은 나를 통해 사람들에게 증거되기를 원하시지만 항상 그 안에 나 자신을 드러내려는 중간자의 교만함이 온전한 표현의 예술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이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을 비우시는 것처럼, 저는 강론 때마다,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 할 수 있도록 짧은 기도를 바칩니다. 그러면 실패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무대공포증이 싹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듯 나를 드러내려면 그것이 방해가 되어 꼴찌가 되고, 나를 버리고 주님을 드러내려고 한다면 모든 것이 잘 되어 첫째가 되는 것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오늘 복음에서 식사를 초대하고 초대받는 것에서도 나타난다고 비유로 말씀해주십니다.

누구를 식사에 초대한다든지 식사에 초대받을 때도 순수한 의도가 아닌 인정받고 싶고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교만한 의도들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유명한 사람을 초대하여 식사를 하고 그것을 큰 자랑으로 삼고 살기도 하고, 또 유명한 사람에게 식사 초대를 받아 좋은 자리에 앉았던 것을 큰 자랑으로 삼고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을 초대할 때, 가장 보잘 것 없는 이를 초대하고, 초대를 받았을 때도 가장 밑자리에 앉으라고 권고하십니다. 어떤 행위이건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는 행위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함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가리는 사람에겐 어떠한 영광도 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식하고 인정받으려하는 모습은 어쩌면 자신 안에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다고 말한다면 그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 밑에 두고 사랑하는 사람을 높이고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그리스도께서 드러내셨습니다. 그 분은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셨기에 아버지를 높이시고 자신을 죽이셨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내가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면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만 잊지 않으면 됩니다. 사랑은 겸손이라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게 됩니다. 그 사랑을 받는 것이 곧 높아지는 것이고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 내 안에 사는 이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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