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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미움의 사람이 사랑의 상태로 변하는 것이 부활입니다 (루카 24,1~53)/박민화님의 성경묵상
작성자장기순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03 조회수55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0년 9월 3일 금요일 루카복음24장
 
예수님이 수난 받으시고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신 다음에 부활하심은 그리스도 교회의 핵심 신앙이며
다른 어떤 종교에서도 수난 받고 죽으시고 부활한 사람이 없으며
유일하게 예수 그리스도님만이 부활하셨는데,
죽음은 죄의 결과로 오므로 예수님은 진리 자체이시며
죄가 없으신 유일한 하느님 아들님이심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육안으로 볼 때는
예수님이 수난 받고 죽으시고 묻히시고
3일 후에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님이시지만
차원을 달리해서 부활을 묵상할 때
교부들의 설명은 부활을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로 설명하시는데,
 
첫째 부활은 세례를 통하여
아담 하와로부터 유전되어 온 원죄의 사함을 받음으로써
우리들의 심령에 첫째 부활이 오며,
이 첫째 부활이 오는 사람이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에서 현재 이 세상에서 말씀화가 되어
사랑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 현재 부활의 삶을 체험하고 살아가며
현재 부활에 들어 있는 사람이
육신의 몸이 죽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성도들이
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몸인 신령체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며,
 
부활 생명에 참여한 사람들은 마음과 심령의 변화가 되어 
미움의 사람이 사랑의 사람으로,
시기 질투와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평화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며,
예수님처럼 아가페 사랑의 삶으로 살아가게 되며
사도들과 모든 성인들이 예수님의 열매로 성령의 열매로
현세에서부터 살아 가는 사람들이 믿음과 행위가 일치하는 사람들이며,
 
우리들 안에 말씀이 자리 잡고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님의 제자들이 되고 현세에서부터 부활의 삶을 체험하며,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제자들로 살아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님의 부활을 증거합시다.
 
 
부활하시다 (마태 28,1-8 ; 마르 16,1-8 ; 요한 20,1-10)
 
예수님께서 죽은 라자로를 소생 시키실 때
무덤을 막고 있는 큰 돌을 사람들을 시켜 옮기게 한 다음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나자로야, 나오너라!" 하는 하느님 말씀 때문에
죽은 라자로가 부활하여 살아 나오는데,
염포로 묶여 있던 띠를 풀어 주라고 말씀하셨는데
나자로가 염포로 묶여 있는 것은 율법에 매여 있다는 뜻인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생명의 말씀으로
라자로에게 새 생명을 주시고 율법에서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게 하여
자유의 몸으로 소생하게 하는 예화를 통하여
앞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을 미리 보여주는 예화인데,
 
공관복음인 마태 마르코 복음에서는
천사들이 예수님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치운 다음에
예수님 안에 계신 그리스도 하느님이 
예수님 자신을 부활하게 하는 것이며, 
 
요한 복음에서는 영의 복음이기 때문에
천사가 돌을 굴려내는 광경을 말하지 않고
이미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빈 무덤에 예수님이 입었던 옷이 잘 개켜져 있었음을 보여 주는데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매여 있지 않기 때문에
완전하게 부활하셨다는 것을 계시해 주시는 것입니다.
 
차원을 달리해서 우리들의 심령 안에 부활을 위해서는
우리들 마음을 막고 있는 큰 돌은 무엇일까?
때에 따라서는 분노, 미움, 시기 질투, 모든 욕심 등등일 수 있기 때문에
이 걸림돌 하나하나를 우리들 힘으로는 걸러낼 수 없지만
말씀을 읽고 말씀의 능력으로 묵상할 때 버리게 되며,
 
예수 그리스도님을 만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을 깨달아 다 버림으로써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님의 말씀이 잘 들어 올 수 있도록
굽은 길은 고르게, 언덕은 깎아 내리고 골짜기는 메워서
예수님께서 하신 생명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잘 들어와서
나를 살리는 레마 말씀이 될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합시다.
 
 
부활은 마음과 심령의 변화가 현재 부활이며
현재 부활을 살아 가면서 마지막 신령체 부활을 소망합시다. 
 
1 주간 첫날 새벽 일찍이 그 여자들은 준비한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2 그런데 그들이 보니 무덤에서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3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
4
여자들이 그 일로 당황하고 있는데, 눈부시게 차려입은 남자 둘이 그들에게 나타났다.
 
설명:
루카 복음에서는 빈 무덤에 천사 둘이 나타나고
마태 복음과 마르코 복음은 천사 한 사람이 나타나는데
마태 복음과 마르코 복음과 루카 복음에
천사의 숫자가 차이가 있는 것은
루카 복음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으로서
천사의 숫자를 관점으로 보았기 때문에 두 천사라고 말하며,
 
 
숫자의 상징적 의미는 2 는 나눔 심판 증인이란 뜻이 있으며.
창세기 7,3에서 노아 홍수 때
노아 방주에 일곱 쌍의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은 두 마리 또는 한 쌍이라고 나오는데
전승에 따라 야훼 전승에서는 정한 동물 일곱 쌍이라고 했고
사제 전승에서는 부정한 동물 두 마리라고 했는데,
 
히브리어에는 단수와 복수와 쌍수가 있는데
히브리원어 성경에는 쌍수로 되어 있기 때문에
천주교 새 번역에는 한 쌍으로 번역이 되어 있으며
이 1 이라는 숫자는 완전 숫자이기 때문에
야훼 전승에서는 7 이 완전 숫자이고,
사제 전승에서는 1 이 완전 숫자이므로
이 숫자에 대한 묵상을 함께 합시다.
 
마태 복음과 마르코 복음에서는 예수님 부활에 관점을 두고
천사의 숫자에 대해서는 관점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숫자에 차이가 있는 것은
복음사가들이 보는 관점에 따라 숫자가 다르다고
설명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으로 숙이자 두 남자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찾고 있느냐?
 
설명:
남자는 헬라어로 '아네르' 인데
이 아네르는 '안드로포스'(사람)인데
창세기 1,26에
하느님께서 우리와 같은 사람을 만들자고 할 때
이 사람을 말하며 아담 하와가 원죄를 짓기 전 사람을 말하며
원죄를 지은 다음에는 하이마싸르크(피와 살)
인간을 살과 피로 말히며,
 
 
원어에는 원죄를 짓기 전 사람들을
'아네르' 또는' 안드로포스'라 하고
원죄를 지은 다음 모든 인류를 살과 피로 원문에는 표시 되어 있지만
우리말 번역에는 사람으로 표기가 되어 있으므로
성경을 묵상할 때 참고 되었으면 합니다.
 
천사도 육안으로 볼 때는 하늘을 날으는 천사로 보지만
차원을 달리해서 보면 요한복음 차원에서는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님이 '호로고스 '즉 말씀이시기 때문에
말씀이 하느님이시고
말씀을 전하는 사도들과 성인들이 천사 역할을 하며,
 
 
구약에서는 말씀을 전하는 예언자들이 천사 역할을 하며
오늘날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도하는 성도들이
천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6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되살아나셨다. 그분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 기억해 보아라.
7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8 그러자 여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었다.
9
그리고 무덤에서 돌아와 열한 제자와 그 밖의 모든 이에게 이 일을 다 알렸다.
 
설명:
무덤도 육안으로 볼 때는 공동 묘지가 무덤이지만
차원을 달리해서 영차원으로 볼 때는
우리들 심령 안에 하느님이 계셔야 되기 때문에
우리들 몸이 육신 장막이며 무덤인데,
예수님 몸은 예수님 안에 그리스도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 몸은 성전이고
우리들의 몸도 성령이 거처하면 성령이 계시는 거룩한 성전이 되나,
 
말씀과 성령이 우리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면
육신의 장막이 되고 회칠하는 무덤이 되며
장사하는 성전이 되기 때문에
우리 심령을 말씀으로 죄사함을 받고 깨끗하게 하여
성령이 거처하는 성전이 되어야 하며
하느님이 거처하는 감실이 될 수 있도록
말씀 읽고 묵상합시다. 아멘.
10 그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다. 그들과 함께 있던 다른 여자들도 사도들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였다.
11 사도들에게는 그 이야기가 헛소리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사도들은 그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12 그러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서 몸을 굽혀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아마포만 놓여 있었다. 그는 일어난 일을 속으로 놀라워하며 돌아갔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마르 16,12-13
)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평화'란 뜻인데
예루살렘에는 하느님이 계신 성전이며
신약에서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계신 곳인데,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라는 시골 마을로 가는 것은
하느님이 계신 영에서 육인 세상으로 가는 것을 말하며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니까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고 실망해서 예수님이 계신 곳을 떠나
세상을 향하여 엠마오라는 고을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께서 나타나
"구약 성경에서 메시아는 고난 받고 죽으시고 부활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가슴이 뜨거워져,
 
 
예수님께서 더 가실려고 하는데
이제 해가 저물었으니 여관에서 묵고 가자고 말을 해서
예수님께서 여관에서 빵을 떼어 주실 때 
두 제자들이 빵을 먹고 눈이 밝아져 영안이 열려서
예수님을 알아 봤을 때,
예수님께서는 사라지셨지만
빵으로 성체로 두 제자들 마음 안에 오셨기 때문에
세상을 향하여 가던 두 제자는
다시 사도들이 계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엠마오로 가던 도중에 주님을 보았다고 증거하게 되며,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영에 있을 뿐만 아니라
세상인 육에 있을 때도
항상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이심을
이 예화를 통하여 말씀해 주시며
 
우리들의 삶에서도 우리들 마음이 
말씀과 교회와 기도로부터 멀리하고 세상 일에 집중할 때도
주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해 주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이심을 믿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시다.
 
우리들도 이 세상에 살아 가면서 이 세상 일에서 출애급하여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처럼 영안이 열리기 위해서는
신,구약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할 뿐만 아니라
미사 때 성체를 모심으로서 영안이 밝아져
주님을 보고 만나고 느낄 수 있도록
주님께 자비의 기도를 바칩시다.
 
13
바로 그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설명:
히브리어로 엠마우스와 임마누엘은 같은 어원이며
임마누엘은 임마는 '함께 하다' 는 뜻이고,
엘은 '엘로힘' 하느님을 말하며'
엠마우스'는 '함께 하다' 는 뜻인데
'엠마오' 라는 고을의 뜻도
하느님께서 현존하는, 나타나시는 고을 이라는 뜻입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설명:
예수님께서는 이웃 사랑은
상대방의 입장으로 가 주는 것이 이웃 사랑이며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 주고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라고 하셨으며
한 쪽 뺨을 때리면 다른 쪽 뺨도 대주라고 하셨으며,
 
 
예수님께서 이 두 제자를 위하여 더 가 주고 싶었지만
이 두 제자가
날이 저물었으니 여관에 묵자고 해서 그 집에 들어 가신 것은 
예수님께서 이웃 사랑을 하시는 것이며
우리들도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 주는 것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물론 육적으로 윤리 도덕에 맞지 않는 일을 따라 하는 것은 아니며
좋은 일은 복음 말씀을 주어
주님께로 인도하는 복음 선포를 말하며
하느님 일과 세상 일이 있는데
하느님 일을 위해서 희생이 따르더라도
상대방 입장으로 가 주는 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설명:
예수님께서 길을 가는 중에
말씀의 전례에서 말씀의 잔치로 제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시고
이제 식탁에서 성찬의 전례에서 성찬의 잔치로
사도들을 영의 양식을 먹이시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이루어지며,
 
오늘날 교회에서 미사 때도 같은 내용이 반복되기 때문에
말씀의 잔치와 성찬의 잔치에 참여하여
영혼의 양식인 생명의 말씀으로 충만해질 수 있도록
미사 참여하기 전에 복음 말씀을 읽고 묵상합시다.
 
 
미사 때 기쁨이 없다고 하면
기쁨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합시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설명:
예수님께서 사라지신 것은
말씀으로 빵으로 두 제자들 심령 안에 들어 왔음을 말하며
이 증거로 실망하여 육의 세상인 엠마오로 향했던 두 제자가
다시 주님과 사도단들이 계시는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다고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설명:
마음이 뜨겁게 타오른 것은
복음 말씀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마음이 뜨거워진 것이며
율법 하에 있을 때는 무섭고 차가워지는 것인데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심판 받는다고 하기 때문에 무서워지며,
 
 
예수님께서는 뜨겁거나 차거나 해야지
미지근하면 벹어 버리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뜨거운 것은 복음에 있을 때를 말하며
차가운 것은 율법에 있을 때를 말하며
미지근한 것은 복음인 영과 율법인 육을 섞어 놨을 때는
하느님께서 벹어 버리겠다는 뜻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사명을 부여하시다 
 
36 그들이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에 서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유령을 보는 줄로 생각하였다.
3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왜 놀라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여러 가지 의혹이 이느냐?
39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40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셨다.
41 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여기에 먹을 것이 좀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리자,
43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말한 것처럼, 나에 관하여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한다.”
4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
46 이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47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원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
48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
49 그리고 보라,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성령)을 내가 너희에게 보내 주겠다. 그러니 너희는 높은 데에서 오는 힘을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어라.”

승천하시다 (마르 16,19-20 ; 사도 1,9-11
)
 
루카 복음에서는 끝날 무렵에 예수님 승천을 말씀하시지만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 승천부터 성경이 시작하는데
우리들도 예수님의 부활 승천에 참여하여
사랑의 사람으로 부활의 삶을, 사랑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들 마음을 죽이고 비워야 이웃 사랑을 하게 되며,
 
 
예수님의 삶을 우리들 삶에서 살아가므로써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하고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느님께 자비를 구합시다.
 
구약에 있는 모세 오경과 구원 역사서와
시편과 예언서 있는 구약 성경 말씀이 예수님께 이루어지고 완성이 되어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셨으며
신약에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님께서 하신 말씀이
즉 신약 27권에 있는 말씀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면
우리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며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예를 들면
박 이레네오가 성이 그리스도로 바꿔 그리스도 이레네오가 되며
서양식으로는 이레네오 그리스도가 되며
이런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며
한자로는 기독교인이라고 하며 성도들이 되며
가해는 마태복음을 읽고 나해는 마르코 복음을 읽고
다해는  루카복음을 읽고 요한복음을 읽으며
요한복음은 영의 복음이므로
가해나 나해나 다해나 공동으로 전례에 따라 봉독하게 되며
 
신앙생활 3년만 하게 되면
4복음서의 말씀을 다 읽고 먹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 승천에 참여하여
예수님을 닮은 성도들로 살아 가면서
하느님께 감사 찬미 찬양을 드립시다. 아멘.
 
50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베타니아 근처까지 데리고 나가신 다음, 손을 드시어 그들에게 강복하셨다.
51 이렇게 강복하시며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
52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53 그리고 줄곧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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