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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왕자처럼 살고 싶습니까?” - 9.1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12 조회수432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2.9.12 연중 제24주일

탈출32,7-11.13-14 티모1,12-17 루카15,1-32

 

 

 

 

 

“왕자처럼 살고 싶습니까?”

 

 

 

그저께부터 때늦은 장 마비가,

하느님의 눈물 같은 비가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믿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축제입니다.

 

“주님께 감사하라, 그 좋으신 분은 영원도 하시어라, 그 사랑이여.

  이 날이 주께서 마련하신 날, 이 날을 기뻐하자, 춤들을 추자.”

 

바로 오늘 주께서 마련하신 이 날,

기뻐 춤추는 마음으로 주일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알렐루야, 주께서 지어낸 만물들아, 주님을 찬미하라. 알렐루야.”

 

주님을 찬미하라고 지음 받은 모든 피조물들이요

끊임없는 하느님 찬미를 통해

어둠의 세력은 흔적 없이 사라져

깨끗해지고 거룩해지는 사람들을 비롯한 온갖 피조물들입니다.

사탄의 세력을 추방하는 데 하느님 찬미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습니다.

 

오늘 강론은 이렇게 하느님 자랑으로 시작합니다.

 

어제 저녁 식사 때 수확된 배를 처음 먹어 봤습니다.

처음 배를 보는 순간,

하느님 기적의 산물처럼 반갑고, 놀랍고, 고마웠습니다.

마음은 반가움, 놀라움, 고마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부지런히, 소리 없이, 꾸준히 일한

배나무와 우리 수사님들과 최고의 농부이신 하느님이었습니다.

잦은 비에 태풍으로 시련도 많았고 햇볕 든 날도 많지 않았는데

마침내 때가 되니 보기 좋은 열매로 나타난 것입니다.

 

험하고 힘든 세상살이,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꾸준히 기도하고 일하여

믿음의 열매, 사랑의 열매, 희망을 열매를 냈을 때

하느님의 반응도 바로 반가움, 놀라움, 고마움일 것이며,

바로 이 미사에 참석한 우리를 대하는 하느님의 마음도 그러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죄인인 우리를 끊임없이 찾으십니다.

잃었던 양을 찾고 기뻐하는 목자

그대로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기쁨을 상징합니다.

잃었던 은전 한 닢을 찾고 기뻐하는 어떤 부인 역시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기쁨을 상징합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바로 이게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기쁨입니다.

이렇게 착하고 단순한 우리 하느님이십니다.

또 하염없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아들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자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며 기쁨에 넘쳐 환호하는 모습 역시

하느님의 마음, 하느님의 기쁨을 상징합니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바로 이게 우리의 진면목입니다.

하느님을 떠날 때 거지같은 방랑생활이지만,

하느님께 돌아올 때 왕자와 같은 존엄하고 품위 있는 삶입니다.

왕자로 태어나 거지처럼 막 살아가는 이들 얼마나 많습니까?

바로 여기 하느님의 슬픔이 있습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은 우리를 당신 은총으로 단장해 주시어

왕자와 같은 거룩하고 존엄한 품위의 자녀들로 회복해 주십니다.

하느님 자랑이 길었지만 이렇게 시작해야 오늘 강론이 성립됩니다.

 

“왕자처럼 살고 싶습니까?”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하십시오.

 

이래야 언제 어디서든 왕자처럼 존엄하고 품위 있는 삶입니다.

정말 살기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서로간의 수평적 소통의 관계만으론 너무 부족합니다.

하느님과 수직적 소통의 기도가 절대적이요 이래야 비로소 영성입니다.

영성, 지성, 감성이 균형 잡힐 때 온전한 인간입니다.

영성은 하느님 향한 방향을, 눈을 상징합니다.

기도하지 않아 하느님과의 접촉을 잃어 영성이 어두워지면

곧 지성도 감성도 어두워져 변질되고 타락합니다.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은 하느님과의 생명줄입니다.

 

오늘 1독서 탈출기의 모세는 말 그대로 기도의 사람입니다.

늘 생명줄 기도로 하느님과 연결되어 살았던 분입니다.

기도로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살아있다고 하여도 참 빈약한 존재의 삶입니다.

당신 백성들에게 분노를 터뜨리려는 하느님께

애원의 기도를 바치는 모세는

그대로 하느님과 백성들을 잇는 생명줄이 되어버립니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모세의 간곡한 애원과 설득의 기도에 감동하신 주님은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아버지를 감동시킨 작은 아들의 고백은

그대로 세리의 기도를 연상시키는 겸손한 기도였습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기도는 생명의 소통이자 은총의 통로입니다.

끊임없는 기도만이 본래의 존엄한 품위의 인간으로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회개하십시오.

 

이래야 언제 어디서든 왕자처럼 존엄하고 품위 있는 삶입니다.

세상에 하느님께 돌아가는 회개에서 제외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의 제자리는 하느님입니다.

우리 분도 수도승들의 정주 서원은

늘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회개의 삶을 뜻합니다.

제자리를 잃었기에, 떠나 버렸기에 불안한 것입니다.

회개는 우리의 영원한 제자리인 우리 삶의 중심이신

하느님 안에 뿌리내리는 정주를 뜻합니다.

아버지를 떠나 거지처럼 살다가

아버지께 돌아와 내 삶의 제자리에서

왕자처럼 살아가는 게 바로 회개입니다.

하느님의 유일한 기쁨은 회개로 잃었던 자녀들을 되찾았을 때입니다.

하느님의 눈 길은 늘 당신을 떠나 방황하는 자녀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 하느님 자비의 눈길에 닿았을 때 회개의 촉발입니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극한 상황 속에서 하느님 은총에 의한 철저한 회개로

구원의 서광이 비쳐온 작은 아들입니다.

주님은 회개하는 이들의 과거는 불문에 붙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의 확신에 넘치는 말씀은

그대로 하느님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바로 이게 하느님의 기쁨입니다.

하느님께는 회개하는 한 사람으로 인한 기쁨이

온 우주를 얻는 것보다 큽니다.

왕자인 신분을 잊고 거지처럼 산 작은 아들도 문제지만

아버지의 집에서 종처럼 산 큰 아들 역시 회개의 대상입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자유로운 자녀로가 아닌

의무로, 종처럼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경종이 되는 큰 아들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가장 멀리 있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몰랐던 큰 아들이었습니다.

큰 아들의 야박한 타박과 원망에 진정으로 호소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그대로 자비하신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결코 강요할 수 없는 은총의 회개이지만,

아마 이 간곡한 아버지의 말에

큰 아들은 회개하고 기쁨의 잔치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하십시오.

 

이래야 언제 어디서든 왕자처럼 존엄하고 품위 있는 삶입니다.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의 열매가 바로 감사의 열매입니다.

회개로 깨끗해진 마음은 온통 감사로 가득 찹니다.

감사했던 일들 헤아려 보십시오.

무궁무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찬미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미이듯,

그래서 감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가

운명을 바꾸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감사 쪽으로 향하게 하지만

악마는 불평과 원망 쪽으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찬미와 감사의 긍정적 낙관적 인생관을 택할 때 행복이지만,

불평과 원망의 부정적 비관적 인생관을 택할 때 불행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다음 말씀 잘 기억하실 것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오늘 2독서 말씀은 온통 사도 바오로의 감사의 고백입니다.

감사하는 사람보다 아름답고 호감이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며

이런 사도 바오로는 참 호감이 갑니다.

반대로 불평과 원망의 사람은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나를 굳세게 해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분께서는 나를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시어 나에게 직무를 맡기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우리 주님의 은총이 넘쳐흘렀습니다.

  …나는 첫째가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한량없는 자비를 베푸시는 주님께

늘 감사를 드리는 사도 바오로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왕자처럼 자유롭게 잘 살고 싶습니까?

 

자유롭게 잘 살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소망일 것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하십시오.

끊임없이 하느님께 회개하십시오.

끊임없이 하느님께 감사하십시오.

중심에 하느님이 계십니다.

몇 번의 기도가, 몇 번의 회개가, 몇 번의 감사가 아니라

평생, 매일, 죽을 때 까지 기도하고 회개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습관화하고 제 2 천성으로 만들어

명실 공히 기도의 사람, 회개의 사람, 감사의 사람이 되어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께 회개하여 돌아 온 우리 모두를 위해

성대한 미사잔치를 베풀어 주십니다.

영원한 임금이시며, 불사불멸하시고, 눈에 보이지 않으시며,

한 분이신 하느님께 영예와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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