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백인대장의 믿음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10-09-12 조회수837 추천수1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24주간 월요일- 백인대장의 믿음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목록으로 돌아갑니다.

 

제가 아는 한 자매님이 이러한 고민을 저에게 보내왔습니다.

“신부님,

제가 상담할 일이 또 생겼네요.

 

이번 태풍 곤파스로 우리 아파트 나무가 다수 뽑혀나갔는데요, 경비아저씨 말씀으로는 우리 아파트에 나무가 너무 많고 너무 무성하게 자라서 저층에서는 나무를 베어달라는 민원이 계속 들어왔었는데 고층에 사는 주민들과 타협이 안 돼 베어내질 못하고 있었대요.

 

그런데 이번에 단 한시간만에 하느님께서 일을 깨끗하게 해결해 주셨어요.

제가 이 이야기를 듣고 남편과 아이들한테 전능하신 하느님의 힘이 느껴진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럼 과수원에 다 떨어뜨린 과일들을 어떡할 것이며 죽은 사람들은 어떡할 거냐고 협공을 해오는 거예요. 이럴 때 제가 뭐라고 답하면 좋죠?

 

그냥 하느님의 천사인 바람이 한 일인데 심술궂은 천사도 있었나보다고 했더니 머리 컸다고 먹히지도 않고 비웃음만 샀어요.

완전 환자라나 뭐라나...

 

사실 제 신앙생활이 환자수준은 아닌데 그런 말은 하는 게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전 아직도 정말 신기해요... ”

 

이런 고민은 비단 이 자매만이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만나면 반드시 발생하게 되어있는 상황입니다.

믿는 사람은 모든 것에서 하느님을 보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직접 보아도 알아보지도 못합니다.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겐 예수님은 그저 사람의 아들이지 하느님의 아들은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보지도 못한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 고백하고, 축성된 빵과 포도주가 그 분의 살과 피로 보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믿음을 갖게 해 달라고 기적을 요구하곤 합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요구하는 세대를 사악한 세대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기적이나 표징을 보지 않고서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백인대장은 예수님의 소문만 듣고 사람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자신의 종을 고쳐달라고 청합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시는 기적도, 어쩌면 예수님을 본 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믿는 유다인도 아니었고 다신을 섬기는 로마인이었습니다. 이방인이면서 보지도 않고 소문만 듣고도 그 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이스라엘에서도 본 적이 없다고 하십니다.

믿음은 어떤 종교의 사람이냐에 상관없이 어린이처럼 깨끗한 마음에 하느님께서 넣어주시는 은총입니다. 깨끗한 마음만 있으면 성령님이 들어오시고 믿음을 선물로 만들어주십니다. 따라서 이교도의 백인대장도 하느님을 섬기는 유다인들보다 더 믿음이 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백인대장과 같이 믿음이 강한 사람은 더 이상 표징이 필요 없습니다. 굳이 예수님께서 오셔서 아픈 사람에게 손을 대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때, 침을 바르시거나, 안수를 주시거나, 흙을 바르는 등의 행위를 하시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런 행위를 보아야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것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백인대장은 그런 행위조차도 필요 없다고 하며 멀리서도 명령만 하시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에게는 더 이상 유다인들이 요구하던 표징이나 기적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이미 모든 것 안에서 그 분을 볼 수 있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낙엽 하나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 안에 하느님의 섭리가 작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무가 부러지는 태풍 안에서도 하느님의 섭리를 보고, 또 어떤 사람은 보지 못합니다. 이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보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것이고, 보지 못하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태풍 속에서도 사람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예수님의 죽음은 세상에서 패배한 죽음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은 구원이고 생명입니다.

누가 죽고 농사를 망치는 것 안에도 하느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그분의 섭리는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악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죽음은 수많은 새로운 생명을 싹틔우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당신의 죽음으로 더 많은 사람 안에 태어나시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믿음을 지닌 사람의 시선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그저 의사까지 되어서 결혼도 못하고 힘들게 살다가 젊어서 요절한 사람 외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죽음은 악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기쁘게 돌아가셨습니다. 믿는 사람에겐 모든 악도 선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고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은 악도 선으로 이끄시는 분이라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은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안수를 받고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갔고 그 때서야 모든 것을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만약 내 주위 사람들이 하느님을 보지 못한다면 마치 아나니야가 바오로에게 안수를 해 준 것처럼 내가 지닌 성령님을 전해 주어야합니다. 함께 모든 것 안에서 같은 하느님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리고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본다면 그 믿음을 갖게 해 주신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 그대를 향한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